지켜낸 마음들/잊히지 않을 마음하나
살다 보면
정작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살아간다.
사랑이 욕심으로 변하고,
배려가 집착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의 삶과 관계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다듬고,
때로는 잃어버린 것을 애써 찾아가며
조용히 꽃처럼 마음을 피워내고 있다.
이 글은 그대가 지켜낸 마음들,
그리고 이제부터 더 지켜내고 싶은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다.
비가 흠뻑 내리고 난 오늘 아침,
세상은 말끔히 씻긴 듯 투명하다.
이런 날, 전남 보성의 녹차밭이 생각난다.
양산 하나 들고 어제의 마음을 조용히 접은 채,
그저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날.
초록이 끝도 없이 펼쳐진 그 길 위에서
걸음마다 마음이 한 겹씩 벗겨져 사라졌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내 안의 근심과 욕심을 바람에 털어내며
나는 참 오랜만에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
“녹차밭이 다 그게 그거지 뭐. 뭐 볼 게 있다고.”
옆사람의 말이 조금은 서운했지만,
이내 그는 내 앞에서 말을 잃었다.
정갈한 초록의 물결에 그도 마음을 빼앗긴 듯,
먼저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야… 이런 데가 다 있네.
당신이 왜 그렇게 오자고 했는지 이제 알겠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웃었고,
자연은 억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푸른 능선을 따라 잔잔히 흐르는 바람,
녹차밭 골을 타고 흐르는 감탄의 소리들,
나는 말없이 그 속에서 묻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지켜왔을까.’
욕심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려왔지만,
사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
가진 것을 지키고, 불리고,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더 행복할 거라 믿었다.
그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욕심을 지켜내느라
더 본질적인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는 것.
어제까지 나는 그것이 삶이고, 사랑이라 믿었다.
하지만 오늘, 이 녹차밭에서
나는 그 믿음이 아닌, 마음을 다시 배우고 있다.
사랑은
짐이 아니라 쉼이어야 한다는 것.
나를 옥죄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동안 너무 많은 걸 붙잡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이제야 자신에게 확신이 든다는 아들을 향한 기대,
상사와의 갈등으로 퇴사를 고민하는 딸을 위한 걱정,
그렇게 가족을 위한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놓지 못했다.
그러나 사랑은
가만히 바라보는 일이고,
때로는 말없이 기다려주는 일이며,
한 걸음 물러서 주는 용기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배운다.
녹차밭의 잎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오랜 손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햇살이 너무 뜨거운 날도,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도,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조용히 다듬어졌고
지금은 제 자리에 피어있다.
사랑도, 마음도 그런가 보다.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
무조건 잘해주기보다는,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의 가지부터
하나씩 쳐내야 할 때도 있다.
욕심을 버리고 나면
비로소 그 자리에
한 송이 사랑이 피어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결국,
무언가를 더 갖기 위한 욕심이 아니라
비바람을 견디며 피워낸
한 송이 마음이 아닐까.
꽃처럼,
누군가에게 향기가 되어주는 마음.
그 마음 하나 지켜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 살아낸 것일지 모른다.
에필로그: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건 성취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 지켜낸 마음들이다.
한 사람을 향한 기다림,
끝내 꺾이지 않았던 다정함,
그리고 스스로에게조차 숨기지 않았던 진심.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이다.
나는 얼마나 가졌는가? 가 아니라
나는 어떤 마음을 지켜냈는가?
그 답은 언젠가,
당신이 서 있는 어느 푸른 녹차밭에서
조용히 피어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