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마음 하나
마음이 가는 대로
삶은 어떤 날은 수채화처럼 번지고, 어떤 날은
연필로 세게 눌러 그린 선처럼 뚜렷하게 남는다.
우리 안에는 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한 장의 그림’이 있다.
그것은 화폭이 아닌 마음에 그려진다.
이 글은, 그렇게 마음에 스민 한 시절의 감정과 추억을 따라간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한다.
“지금이라도 괜찮아, 늦은 건 없어.”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건넨,
이은화의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미술》.
책을 건넨 이는 평소에도 내게 예술적 감성이 있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예술의 길을 가지 못한 나를 안타까워하던 그가,
이제라도 그림을 그려보라 말하는 듯했다.
고맙고도 한편으론 의아했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 것도,
미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책장을 넘기다 문득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해받기 위함이 아닌 기록하기 위하여.”
그 순간, 나는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문장을 만났다고 느꼈다.
그 문장은 마치 내 안에 고요히 잠들어 있던 어떤 시간을 두드렸다.
마음속 어디쯤에서 응어리진 말들이,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J.M. 윌리엄 터너의 작품 《눈보라》에 대한 이야기다.
회색빛 구름이 잔뜩 머금고 있던 수분을 토해내듯,
그림은 세상으로부터 받은 야유와 시선을 그대로 마주하며
자신의 시각을 밀고 나간 터너의 고집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장면에서 나의 요즘을 떠올렸다.
“지금의 나는, 내 마음속 어떤 응어리를 그려내고 있는 중일까!”
글을 쓰는 지금이야말로, 그렇게 감정의 습기를 토해내듯
지나간 시간과 나를 붙잡아 기록하는 순간임을 돌이켜 본다.
내가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내 마음에 드는 색감, 원초적이고 밝은 것들이 좋다.
희망을 얘기하고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꽃을 그린 그림이면 더 좋다.
그들의 작품을 보며,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바로 이런 거였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림이라면 무조건 다 좋아한다.
어릴 땐 예술에 재능 있다는 소릴 듣기도 했다.
서예를 잘 썼고, 만들기, 그림 등 했다 하면 칭찬을 받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언젠가 예술가가 될 거라고 믿었지만,
나는 그 길과는 무관한 길을 걸었다.
누구도 내게 방향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생계를 위한 선택을 먼저 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이제는 아주 가끔 따라 그려보는 정도.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색을 칠하고, 덧칠하며
마음이 가는 대로 무언가를 남기려는 정도에 불과하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 채.
한 시절의 추억을 붙잡기 위한 나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나간 시간이 너무 아쉬워서,
그 마음을 조용히 꺼내어 그린 그림이 나의 그림이고, 글이다.
그러니까 나의 글은, 그림이 아니라
‘내 안의 잊힌 꿈’을 그리는 중이다.
나를 위해, 기억하기 위해,
살아낸 시간에게 “수고했다”라고 말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를 위해
‘쓰다 보면 뭐가 되겠지. 그리다 보면 뭐라도 남겠지!’하는 심정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에필로그
예술은 잘하는 것보다
‘진심을 남기는 일’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때로는 색을 고르고 덧칠하는 과정이
내 마음을 알아가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비록 그 길을 가지 못했을지라도,
그 꿈이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색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내 인생의 어느 조각을,
오늘도 조용히 기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