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매운맛

김치 한 젓가락

by 마음키퍼

"매움은 순간, 배움은 평생"

순수한 마음으로 한 젓가락 집은 김치 한 점. 혀가 얼얼하고 정신이 혼미한 순간, 나는 인생의 진실을 마주했다.



사람은 가끔, 너무도 평범한 날에 뜻밖의 고통을 마주한다. 그것이 김치 한 조각일 줄은 몰랐지만, 그런 날이 나를 가르친다. 삶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에게 물어온다.


‘지금, 너는 괜찮은가?’


인터넷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는 실비김치.

입에 넣는 순간, 나는 죽을 뻔했다.

그러니까, 배추겉절이처럼 생긴 그 빨간 유혹을 무심코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순간 입 안이 화끈 타올랐다. 매운 게 아니라, 뜨거운 게 아니라, 아예 폭력적이었다.

입천장은 불타고, 혀는 얼얼하다 못해 무감각해지고, 목구멍은 고춧가루로 곡예를 부리는 듯했다. 또 위장은... 위장은 마치 검붉게 타는 화로를 통째로 삼킨 것처럼 뜨겁게 반응했다. 벌컥벌컥 물을 삼켜 입안을 헹궈내도 소용이 없었다. 몸속 장기 하나하나가 “SOS!”를 외치며 ‘쏴’하게 타고 내려갔다. 급기야 위기탈출을 시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몸은 이미 제어가 안되고 있었다. 식은땀이 쏟아졌고, 이마에서부터 등줄기까지 땀이 타고 내려갔다.


‘아, 이대로 죽는 건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아들은 단지 “인터넷에서 유명하다고 해서요.”라며 시킨 거였지만, 나는 그 순간 이 놈의 자식을 어떻게 키웠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 소파에 쓰러졌고, 숨을 헐떡이며 배를 움켜쥐고 신음했다. 화를 낼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매운맛과 고통이 만든 현실감 없는 시간 속에서, 생의 마지막 장면을 예상하고 있는 나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건 캅사이신을 넘은 독이다!’

‘도대체 이런 걸 김치라고 팔아도 되는 건가?’


억울하고 분했다. 물도 안 듣고, 찬 공기도 소용이 없었다. 냉장고 문을 생각해 낼 여유조차 없었는데,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알로에겔’이었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장건강을 위해 오래전 사두었던 알로에가 있었다는 기억이 간신히 뇌리에 스쳤다.

기어서 냉장고로 갔다. 어지럽고, 환각이 오는 것 같았고, 죽음의 문턱이 저만치서 손짓하는 것 같았다.

겨우겨우 냉장고 문을 열었고, 거기 남아 있던 알로에겔을 있는 힘껏 들이켰다.

그 차고 점성 있는 젤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나는 들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살았어.”


그 알로에가 위장을 감싸며 “내가 왔다”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정말이다. 뜨거운 지옥불 같던 뱃속에 시원한 비가 내리는 것처럼,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가 지나가고, 생명의 기운이 돌아오는 그 순간.

살았다는 게,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 다시금 느꼈다.

잠시 후,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김치 어땠어요?”


그 질문에 나는 폭발했다.

키우면서 안 해본 욕을 다 쏟아 낸 것 같다.


“이딴 걸 왜 사냐?”, “엄마 죽을 뻔했잖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김치는 음식에 매운맛을 느끼고 싶을 때 아주 조금씩 곁들여 먹는 게 정석이란다.

어쩐지, 겉절이처럼 한입 가득 먹었다가는 지옥을 맛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며.

그제야 나는, 무지를 탓했다. 그리고 배웠다.

‘인생도 실비 김치처럼, 적당히, 천천히, 조심스럽게 배워가야 한다’는 것을.


지금도 그 김치는 냉장고에 보관 중이다. 성질 같아선 바로 버리고 싶었는데 맛이라도 보고 싶다는 아들의 애원에 못 이겨 버리지 못했지만, 다시는 입에 대진 않는다.

그 새빨간 김치 하나가 나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명확하다.

세상엔 매운맛처럼 강렬한 순간들이 있고, 그 앞에서 무턱대고 덤볐다간,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삶은, 때때로 우리를 아주 뜨겁게 시험에 들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지를 깨닫는다. 뜨거운 매운맛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것, 그것은 사랑이고, 기억이고, 몸의 기억이다. 이젠 조금 더 조심하고, 조금 더 느리게 살아야겠다.

그날의 김치는 내게 말했다.


"인생은 때때로 너무 맵지만, 그 한 입이 지나가면 웃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고."


이 이야기는 웃기고 황당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무언가를 과신하고, 얼마나 자주 경고 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하지만 누구나 뜨거운 인생의 순간을 한 번쯤은 겪는다. 그 순간, 우리를 지켜주는 건 누군가의 위로나, 냉장고 속에 남겨둔 ‘작은 기억’ 일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경험이 위로이자, 작은 경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