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

마음이 고요히 머물다

by 마음키퍼

어쩌면 진짜 사랑은,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순간에 도착하는지도 모른다.

말 대신 따뜻한 눈빛 하나, 조용히 함께하는 식사 한 끼 속에도 마음이 고요히 머무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쌓이면, 나는 안다.

아, 이 사람이구나.




나는 식사할 때 대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아니, 어쩌면 말없는 시간을 어색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정적을 깨우려 애쓰는 내 모습은 마치 어릴 적 식탁 위에 놓인 텅 빈 접시를 채우고 싶어 조바심 내던 아이 같았다. 말이 끊기면 나까지 사라질까 봐, 침묵이 나를 외롭게 만들까 봐,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말이 정리되지도 않은 채 튀어나왔다.


그러다 자주, 스스로를 궁색하게 만들었다. 어설픈 이야기로 어색함을 지우려다 되레 어색해지고, 말이 헛돌고, 뒷맛은 쓰기만 했다. 지나고 나면 “아,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 하루가 어지러웠다. 그 반복은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관계는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르다.


조용히 밥을 먹고, 말없이 눈을 마주치고, 그런 시간이 이상하리만치 편안하다. 어색한 기색도 없고, 채워야 한다는 압박도 없다. 마음이 느긋하고, 속이 고요하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문득, 샤스타데이지가 떠올랐다.


지난 초여름, 평창 청옥산 백 마지기에서 본 그 수많은 데이지들. 하얗게 피어오른 꽃잎들이 말을 걸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환했다. 나란히 있으면서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고, 바람이 스치면 그냥 함께 흔들렸다.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이 사람과 있을 때 나는, 그냥 그렇게 있어도 좋다.


이 사람은 잦은 대화 속에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같은 말을 자주 건넨다. 처음엔 그 말들이 너무 쉽게 느껴져 “진짜야?”라고 속으로 물었지만, 지금은 안다. 그 표현들이 이 사람의 삶이고, 성향이고,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도 변했다.

예전 같으면 차마 꺼내지 못했을 말들, 망설이다 삼켰을 감정들을 이제는 말한다.


“축하해요.”

“고마워요.”

“너무 좋아요.”

“미안해요.”


이렇다 보니 내 마음이 요즘, 참 말랑해졌다.


그런 내가 신기하다.


감정의 숲을 홀로 헤매던 날들이 있었다. 위축되고, 두렵고, 버림받을까 조마조마하던 시간들. 그 숲을 지나올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이 나를 그대로 봐주었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고,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이 사람은 때론 착한 천사 같고, 때론 귀여운 악마 같다.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 넘어갈 법한 것도 꼭 짚는다.

그 솔직함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감사하다.

모난 내 마음을 부드럽게 다듬어준 손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적마저 사랑스럽다.


조용히 흐르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바라본다.

말이 없어도 괜찮고,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은 대화보다 중요한 것.

바로 함께 있다는 사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믿음,

그리고 이런 사람 하나 곁에 있다는 축복.

나는 지금, 삶이 나에게 건넨 가장 조용한 축하를 받고 있는 중이다.

참 고맙고, 참 다행이다.


에필로그

진짜 사랑은 어떤 순간에도 나를 덜어내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자란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 있는 그 순간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