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견디는 연습

– 고장 난 휴대폰이 가르쳐 준 것들

by 마음키퍼

나는 지금, 고장 난 휴대폰을 눈앞에 두고 있다.

평소라면 바로 수리하거나 새 폰을 샀을 텐데, 이번엔 망설이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손끝으로 세계를 여는 삶에 익숙했던 내가,

그 익숙함의 부재 앞에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처음엔 단순한 고장이었다.

4개월 전부터 휴대폰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고,

잦은 충격으로 메인보드가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Z플립. 접었다 펴는 그 기능이 이 폰의 매력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펴놓은 채’ 일반폰처럼 쓰는 수밖에 없었다.

26만 원이라는 수리비 앞에서, 새 폰을 살까 고민도 했지만

나는 이 고장 난 폰을 조금 더 써보기로 했다.

익숙한 물건에 대한 애착일까.

아니면 갑작스러운 이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내가 얼마나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버텨보기’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며칠 전, 또 한 번의 충격에 화면에 하얀 선이 생기고

터치가 멈추거나, 화면이 스스로 움직이는 현상까지 나타나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불안함이 밀려왔다.


‘이러다 정말 모든 기능이 멈추면 어떡하지?’


기계치인 내가 이 많은 데이터를 백업하고

설정에 이전까지 할 수 있을까?

두려움에 급히 대리점을 찾았다.

하지만 사장님은 말했다.


“며칠만 기다리면 신모델 출시로 할인 들어갈 거예요.”

그 말에 어쩐지 안심이 됐다.

‘며칠은 더 버틸 수 있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다시 고장 난 폰을 들고 대리점을 나섰다.

언제 터질지 모를 수류탄을 손에 든 느낌이었지만,

그 감수도 이제는 나름 익숙해졌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 뭐 있어?’ 하며 그냥 새 폰으로 갈아탔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며칠의 불편함으로 몇만 원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고,

그 며칠을 살아내기 위해 온갖 조심과 배려를 실천하고 있다.

전화할 일이 있을 땐 최대한 줄이고,

가까운 지인에게는 “폰 상태가 안 좋아요”라는

문자를 미리 보내는 선대응까지 한다.

외출할 땐 휴대폰을 아예 두고 나가는 날도 생겼다.

고장 날까 봐, 더 나빠질까 봐.

그때마다 마음이 묘하게 허전하다.

기댈 곳이 사라진 느낌.

포켓에 늘 있던,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던 그것이

손에서 사라지자 생기는 ‘공허함’은

생각보다 깊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허전함이 며칠을 지나면서

작은 평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화면을 열지 않고도 하루가 시작되고,

메시지 소리를 기다리지 않아도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휴대폰 없이 걷는 산책길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다시 보게 됐고,

바람 소리, 새소리, 길가의 꽃 같은 것에서

오래 잊고 지냈던 감각들이 조금씩 돌아왔다.

이전엔 항상 세상과 연결된 상태였기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감정들에 귀 기울일 틈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멈춰진 기계로 인해 생겨난 틈에서,

나는 나 자신의 고요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휴대폰 괜찮아?”

내 안부보다 휴대폰을 먼저 묻는 말에 웃음이 났다.

“응. 아직은 쓸만해. 대신 조심조심해서 쓰고 있어.”

언니는 말했다.

“그래, 휴대폰 잘 모셔라.”

그 말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정말 나는 지금, 기계 하나를 조심조심 ‘모시고’ 있는 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문득 든 생각이

‘지금 내가 폰 하나를 통해 나 자신을 실험하고 있구나!’였다.

내 애착에 이별하는 연습,

불편함을 견디는 인내심,

그리고 휴대폰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나의 가능성까지.

예상치 못한 고장 하나가

내 삶의 속도와 리듬을 바꾸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은 때로 더 깊고, 더 진짜라는 것이다.

에필로그 :

우리는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연결되고,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세계.

하지만 그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의지할 무언가’를 찾는

불안한 인간일 뿐이다.

내 작은 폰 하나가 고장 나자

일상이 흔들리고, 마음이 요동쳤다.

하지만 그 틈 사이에서

나는 불편함 속에 숨어 있던 자유를 발견했다.

조금 느리고, 조금 불편하지만

그 안에 진짜 내가 있었다.

기계가 꺼지자, 나 자신이 켜졌다.

나는 지금, 연결의 끈을 잠시 놓은 대신

내 삶의 감각을 다시 붙잡고 있다.




*사진: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