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시오랑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에밀 시오랑.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작가이다. 나에게 이 책을 권한 아들에 따르면 문체가 간결하고 우아하다고 평가받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란다. 무엇보다 우아하다는 문체가 궁금해서 곧바로 읽기 시작했지만 번역서인지라 문체가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고 날카롭고 예민하고 강렬한 글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나는‘서사중독’이어서 본래 책을 읽을 때 문체 따위보다 내용이 중요하고, 영화를 볼 때에도 미장센이나 촬영기법, 음악 등에는 관심도 안목도 없다. 무엇보다 잘 짜인 스토리와 작품 고유의 분위기와 적확한 대사에 매료될 뿐이다. 시오랑이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출간한 이 에세이는 첫 페이지부터 절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 속에 내던져진 채, 절대적인 고독과 허무 속에서 작가는 절규하고 있었다. 몇 개의 소챕터를 읽은 후 작가의 프로필에서 그의 생몰연도를 확인해 보았다. 절망이 일찌감치 그를 삼켜버렸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 예상과 달리 그는 1911년에 태어나 1995년 84세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거의 직업도 갖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절망과 고독 속에서도 죽을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로 하여금 사선을 넘지 않도록 붙잡아 준 힘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피 흘리는 듯한 그의 우울한 독백을 끝까지 읽어 보아야 했다.
그의 글은 시종일관 우울했다. 역사와 문화를 초월해서 우울했고, 과연 ‘폐허의 철학자, 절망의 대가’라 불릴 만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가면서 처음에는 그 어두움에 압도되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삶에 대한 어떤 기대도 희망도 없이 끝없이 토로하는 그의 절망과 허무 어디에도 냉소는 없었다. 고통에서 발을 빼고 거리를 두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냉정함도, 그것을 관조하려는 오만함도 없었다. 오히려 그 속에는 늘 혼란스러운 열정이 빛나고 있었다. 어떤 고통도 그의 안에 타오르는 처절한 열정의 불꽃을 꺼뜨릴 수는 없었던 듯하다. 그의 절망은 무기력하지 않았고 그의 허무는 치열했다. 그는 자신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삶을 혐오하는 것 못지않게 죽음을 혐오하기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말과는 달리 나는 어쩐지 그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삶의 무의미함을 긍정하고, 절망과 연대하고 화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평생 죽음과 허무의 독배를 앞에 두고도 내면적 열정의 불꽃 속에서 삶을 끝까지 소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는 책 속에서 “천진난만함이야말로 유일한 구원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열정이야말로 시오랑을 절망의 바다에 침몰하지 않도록 구원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열정에 사로잡혀 허무의 심연 속에서도 끝까지 혈투를 벌여야 했던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시오랑의 다른 저서로는 <패자들의 애독서>, <독설의 팡세>, <존재의 유혹>, <해체의 개설>, <태어난다는 것의 불편함에 대하여>, <고백과 저주> 등이 있다. 1987년 <고백과 저주>를 끝으로 절필했다. 23세에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를 쓴 이후 그의 생각과 글이 어떻게 변하고 발전했을지 궁금하다. 작품의 제목들을 보건대 그다지 희망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을 듯하다. 출간된 순서대로 다 읽어 보고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그 우울함에 매몰될까 두렵기도 하다. 우선 그의 마지막 작품부터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5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에 그의 글이 얼마나 더 아름답고 치열하고 성숙해졌을지 기대된다. 내일은 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