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혹은 웰 다잉

영화 <룸 넥스트 도어>

by 읽는 인간

“나는 좋은 죽음을 맞을 자격이 있어”

말기암 환자인 마사는 실험적인 면역요법 치료가 실패로 끝나자 친구 잉그리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삶의 마지막이 무자비한 암과 고통에 휘둘리는 치욕을 원치 않는다. 종군 기자로 세상의 온갖 전쟁터를 누비며 죽음과 파괴를 증언하는 일상이 그녀의 선택이었듯이, 자신의 죽음도 스스로 준비하고 선택하기를 원한다. 이미 떠날 준비가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불필요한 고통과 싸운단 말인가?

마사는 떠나는 것이 힘들지 않도록 익숙하거나 행복한 추억이 있는 곳을 피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지막 나날을 보내기로 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마지막 날들을 그저 평화와 고요 속에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녀가 떠나는 순간에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음의 공포를 늘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정확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마지막 날까지 함께 있어달라는 마사의 요청을 잉그리드가 수락하고,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위치한 멋진 집을 얻어 마사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두 사람은 추억을 공유하고 숲으로 산책을 나가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서점 나들이를 즐긴다. 그렇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친구와 함께 마사의 마지막 날들은 우정과 이해와 고요한 평화로 충만해진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날, 잉그리드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한 사이, 마사는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햇빛 아래 누워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아름답고 평화롭고 존엄한 죽음이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쓸쓸한 교회 마당에도.

온 우주를 지나 아스라이 내린다.

그들의 최후 종말처럼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제임스 조이스 <죽은 사람들> 中에서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 건강수명은 72.5세이다. 인류의 오랜 꿈이었던 무병장수에서 장수의 꿈은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무병과는 거리가 먼 유병장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를 견인한 것은 다름 아닌 의료기술의 발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 침대에 누워 길게는 몇 년씩 고통을 겪다 죽음을 맞는다.


치매로 고생하시던 시어머니가 얼마 전 장염으로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중 폐렴에 걸려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열흘 가까이 완전 금식 상태로 호흡기와 링거와 소변줄에 의지한 채 마지막까지 고통에 허덕이셨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셨을 때, 나는 어머니가 고통에서 해방되셨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늘 밝고 긍정적이셨던 어머니의 마지막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의료 기술에 내 삶의 마지막을 맡기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마사처럼,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엄하고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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