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미련 사이

마음도 비우고 옷장도 비우고

by 읽는 인간

아침 방송에 출연한 수납전문가는 2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무조건 버리라고 조언한다. 저 사람은 어쩌다 저런 전문가 타이틀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자신의 전문성에 대해 어떠한 이견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확신에 차있다. 수납 잘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원이나 자격증이라도 있는 걸까? 저 사람 집에는 정말 필요한 물건만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을까? 공부 못하는 학생처럼 강의 내용은 흘려듣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


옷장이나 신발장을 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옷장은 셔츠 한 장도 더 걸 수 없을 정도로 뭔지 모를 옷들로 가득 차있다. 신발장도 마찬가지다.

막상 외출할 때 신발장을 열어 보면 이거다 싶은 신발은 하나도 없는데 현관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신발장은 신발 매장의 진열대처럼 빈 공간이 없다. 옷이나 신발이 많다는 사실이 불편한 게 아니라 그중에 대부분이 최근 몇 년 동안 한 번도 외출을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이쯤 되면 나도 저장강박증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가끔 큰맘 먹고 옷이나 신발을 솎아내어 버리기도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꽉 들어차곤 한다. 설마 저 안에서 번식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버리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유행이 지났지만 몇 번 안 입어서 너무 멀쩡하고 비싼 옷이라서, 혹시 십 년 안에 다시 유행이 돌아올까 봐서 못 버린다. 어깨나 허리가 끼거나 조여서 불편한 옷은 체중을 2킬로 정도만 빼면 입을 수 있을까 봐 못 버린다. 몇 년 동안 로퍼나 운동화만 신으면서도 하이힐은 예뻐서 못 버린다. 사놓고 마음에 안 들어서 입지 않거나 신지 않는 것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못 버린다. 이 경우가 가장 뼈아프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금언을 언제쯤 체화할 수 있을까?


내가 입지 않는 옷과 신발을 버리지 못하고 불편한 동거를 감수하는 이유는, 대충 요약해서 말하자면 욕심과 미련 때문이란 얘기가 되겠다. 욕심과 미련을 버려야 쓸데없는 많은 것들과 이별할 수 있을 텐데. 유행 지나 어떻게 코디해도 연륜이 묻어 나는 옷, 앞으로 현관 밖을 밟아 볼 가능성이 희박한 신발, 해묵은 갈등, 욕구불만, 불화, 불안, 질투, 열등감 등등.


일은 봄맞이 옷장 정리를 해야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옷과 신발의 삼분의 일만 버려볼까? 그리고 마음속을 잘 살펴서 오래된 욕심과 유통기한 지난 미련도 함께 갖다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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