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의 어두운 심연을 엿보다

엘레나 페란테 <잃어버린 사랑 >

by 읽는 인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레다는 두 딸을 멀리 캐나다로 떠나보내고 섭섭하기보다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는 자신이 살짝 민망하다. 그녀의 생활에는 전에 없이 생기가 돌고 마음은 여유롭고 평온하다. 외모에서조차 불안과 피로와 세월의 흔적이 지워진 듯 젊어 보인다. 25년 만에 딸들을 걱정하고 보살피는 의무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을 돌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학기가 끝나고 그녀는 바닷가로 혼자 휴가를 떠난다. 거기서 수영을 하고 햇볕을 즐기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책을 읽고 강의 준비를 하며 해방감을 만끽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니나라는 젊은 엄마와 그녀의 어린 딸 엘레나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스무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고개를 들고 엄마를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아이를 안듯이 품에 인형을 꼭 안고 있었다. 모녀는 이 세상에 오직 자기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젊은 여인은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어머니로서 뭔가 특별한 면이 있었다. 오직 딸만 바라보고 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모녀를 주시하던 레나는 우연히 엘레나가 떨어뜨린 인형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이에게 돌려주지 않고 숨겨둔다. 애착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는 온종일 엄마에게 매달려 울고 떼를 쓰다 병이 나고 그런 딸을 달래느라 니나는 점점 지쳐 가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엘레나와 함께 여행을 온 가족들은 물론 해변의 많은 사람들이 엘레나의 인형을 찾느라 연일 소동을 벌이지만 레나는 인형을 돌려주지 않고 그런 자신을 그녀조차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며칠 후 엘레나의 고모인 로사리아와 레다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아이들이 네 살, 여섯 살일 때 레다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집을 떠난다. 당시 레다와 남편은 둘 다 대학에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를 하는 중이었고 두 딸의 양육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누구보다 자기 통제력이 강한 그녀는 언제나 준비된 완벽한 엄마로 아이들 곁에 있어 주고 싶었지만 자아실현과 모성애 사이에서 분열하고 소진되어 간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과 자제력을 잃은 그녀는 딸들의 끝없는 요구에 스스로도 놀랄만큼 폭력적인 모습을 표출하기도 한다.


"나는 결국 딸들의 고통의 근원이자 배출구였다."


자유를 갈망하던 그녀는 결국 딸들을 떠나고, 자신을 구속하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충만한 삶을 즐긴다.


“그렇게 잘 지냈으면서 왜 돌아갔어?”라는 니나의 질문에 레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창조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딸들과 견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야.”


삼 년이 지난 후 레다는 그토록 갈망했던 학문적 성취와 안정된 교수의 지위를 뒤로 하고 아이들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두 딸을 명민하고 매력적인 훌륭한 여성으로 키워 냈지만 자신이 과거에 아이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번듯한 성인이 된 딸들은 엄마를 귀찮아하고, 뭔가 요구하거나 불평할 일이 있을 때만 그녀를 찾는다.


완벽하고 평온하고 충만해 보이는 니나 모녀의 관계가 그녀의 죄책감을 일깨우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레다는 열등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녀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으로 어두운 심연을 엿보고 싶은 충동으로, 인형을 숨기고 니나를 곤경에 빠뜨린 것이다.


모성애는 당연하고 보편적이지도, 어떤 시련도 이겨낼 만큼 강인하고 숭고하지도 않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 모성도 불완전하고 나약하고 흔들리고 혼란스럽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좋은 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이에서 방황한다. 우리 모두 인생을 배우기도 전에 인생을 살아야 하듯이, 별다른 준비 없이 시작한 엄마 노릇에 압도당하고 허덕인다. 그리고 레다가 그랬듯이 원망하고 불평하던 자신의 엄마를 답습한다.


고뇌하고 갈등하고 균열하고, 그래서 인간적인 레다의 모성이, 역시 어두운 심연을 품고 있는 나의 모성에게 위로를 건넨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엄마 놀이를 하고 있는 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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