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남편이라, 아내를 아내라 하지 못하는 이유

by 읽는 인간

우리말에는 부부가 서로를 지칭하는 말로 ‘남편’과 ‘아내’라는 좋은 단어가 있다. 그런데 예전에는 연령대에 무관하게 배우자를 가리킬 때 이 말을 쓰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남편을 지칭할 때 ‘남편’이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주로 ‘바깥양반, 주인양반, 애들 아버지’와 같은 말을 썼다. 일본어로 남편을 ‘슈징’이라 하는데 한자로 ‘주인’이라고 쓴다. ‘주인양반’은 일본어에서 온 말로 의심된다.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는 '안사람, 집사람, 마누라, 애들 엄마' 등을 썼다.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이상한 표현들이다.

우리 세대에 와서는 남편을 가리켜 ‘신랑’이라고 하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신혼을 훌쩍 지나 꽤 나이가 든 후에도 남편보다는 신랑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애들 아빠’란 표현도 많이 썼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들어도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남편을 ‘우리 아저씨’라고 부르는 경우였는데, 한때는 동네 아줌마들 대부분이 남편을 그렇게 불렀다. 보통 결혼한 남자들을 칭할 때 쓰는 말이 아저씨였는데 그런 아저씨들 중에 자기 거라는 의미였나 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기 아내를 가리켜 ‘우리 아줌마’라고 하는 남자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와이프’였다. 아내를 가리켜 집사람, 애들 엄마와 함께 와이프도 곧잘 쓰이기 시작했다. ‘아내’라는 듣기 좋은 우리말을 두고 난데없이 외국어를 갖다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여전히 듣기 힘든 칭호였다.


이제는 젊은 여자들이 남편을 가리켜 '남편' 또는 '오빠'라고 한다. 미디어에서 보면 젊은 여성들뿐 아니라 꽤 나이가 든 여성들도 남편을 ‘오빠’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본래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혈연관계의 남성이나 학교나 모임의 남자 선배를 가리킬 때 쓰이던 말이 언제부턴가 남자 친구나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남편에 대해 말할 때 여성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당당히 배우자를 남편이라고 칭하고, 남성들도 이제 자신의 아내를 가리켜 담백하게 아내라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뭔가 먼 길을 돌아와 이제야 ‘남편’과 ‘아내’가 제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남편을 남편이라 칭하고, 아내를 아내라 칭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남편과 아내라는 말을 쓰는 일을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전 세대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가 뭔가 너무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혹은 내밀한 호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를 중간에 끼워 넣어 애들 엄마나 애들 아빠, 심지어 집을 끼워 넣어 집사람이나 바깥양반 등, 자신과 거리감이 있는 에두른 표현을 썼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한국인의 은근함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의뭉스러움이라 할까? 어쨌든 나는 남편과 아내라는 정확하고 담백한 말을 좋아한다. 당당하면서도 평등하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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