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의 기억들은 현재의 나에게 다채로운 공명을 울려 줄 때가 있다. 기억 속 그날은 중간고사 시험을 치고 맞이하는 첫 화학 시간이었다. 과학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화학은 생물이나 지구과학처럼 모조리 외워 삼켜야 하는 과목보다는 매력적이었다.
지휘봉과 화학 책, 출석부를 들고 화학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아담한 키에 흰색 와이셔츠, 짙은 넥타이와 회색 정장 바지를 자주 입었다. 선생님은 고리타분하고 자칫 따분하기 쉬운 화학이라는 과목을 더 따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렇지만 집중해서 듣기로 마음먹었다면 꽤 훌륭한 개념 설명을 할 줄 아는 분이었다.
선생님은 들어오시자마자, 낮은 저음으로 중간고사 시험지를 펼치라고 말했다. 명령하는 ‘그 목소리’는 교실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기 충분했다. 무작위로 출석 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1번 문제를 풀고 설명을 하라고 명령했다. 우리의 화학 평균이 낮았던 것일까. 선생님은 느닷없이 번호를 불렀고, 누구든 당첨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급작스럽게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우리들의 동공은 무겁게 흔들렸다.
중간고사 시험지에서 내가 틀린 번호는 4번 문제였다. '4번'만은 제발 피해 가기를 바랐다. 4번 문제가 점점 가까워지자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뛰기 시작했다. 콩닥콩닥 뛰던 심장은 급기야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불행한 예감은 늘 맞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4번 문제에 그대로 꽂아 박히며 내 출석번호가 불렸고, 나는 의자를 밀며 기운 없이 일어났다. 감옥으로 끌려가는 죄수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교탁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풀었더라... 생각을 해봐... 아니 풀 수 있는 사람이 나오게 해서 풀리도록 해야지..!!! 무작위로 불러내고 있냐고!... 천둥 같은 소리들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갑자기 칠판이 성큼성큼 움직이는 것 같더니 내 코앞에 딱 배수진을 쳤다. 옴짝달싹할 수 없었지만 뭔가 해야 될 것 같아 천천히 분필을 들었다. 애꿎은 분필 끝만 칠판에 꾹꾹 눌렀다.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은 이제 아우성조차 들리지 않고 조용해졌다. 진공 속을 유영하는 것 같았다. 옆으로는 선생님의 시선을 받으며, 등 뒤로는 아이들의 측은한 동정심을 느끼며 그렇게 마냥 서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선생님의 두 눈뿐이었다. 그 눈은 점점 커지면서 더욱 빛났다. 갑자기 나는 자리에서 붕 떠올랐다가 그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그 눈에 삼켜 버려진 것 같았다. 보다 못한 한 아이가 조그마한 쪽지에 문제를 풀었으리라. 선생님이 잠깐 안 보이는 사이, 그 쪽지는 앞으로 전해지고 전해져 칠판 앞, 숨죽여 오므라뜨리고 있는 내게 전달되었다. 나는 겨우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화학 선생님이 크게 야단을 친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질책이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하필 틀린 문제에 딱 재수 없게 걸렸다는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학창 시절, 여러 명이 보는 가운데 조금의 언짢은 이야기를 듣거나, 지적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일대일의 상황이라면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장소라면 나의 잘잘못을 떠나 수치스러움부터 몰려왔다. 그래서 더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했다. 특히, 준비물을 빠뜨려서 야단맞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책가방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는 강박증도 생겼다.
완벽함으로 덮으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상황을 통제하고 조종해야 하며 내 기준에서 모든 것이 흘러가야 하는 '완벽주의'는 수치심을 막기 위한 최상의 도구였다. 아무리 완벽함으로 무장한다지만 그날의 화학 시간처럼 갑자기 허를 찔려 속수무책이 되는 날도 있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도 화학 시간과 칠판 앞 내가 잊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완벽함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삶은 생각한 대로만 늘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쪽팔려'
말이라도 내뱉었다면 좀 나아졌을까? 돌아보면 인생은 쪽팔림의 연속이다. 쪽팔리면 좀 어떤가. 하나를 넘어서면 또 다른 쪽팔림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쪽팔린다는 어느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사람들이 여럿 지켜보는 가운데, 그것도 모자라 발가벗고 태어나니 생의 시작은 어차피 쪽팔림과 함께다. ‘쪽팔리면 쪽팔리는 대로 산다’는 유연함을 몇 꼬집 장착하면 삶이 더 즐거워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