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는 교무실의 중간쯤이었다. 모든 선생님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위치였던 셈이다. 아침부터 정보과 선생님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함께 모여 회의를 하다가 정보과 전용 교실로 가는가 싶더니 다시 교무실로 와서 교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아침부터 학교 홈페이지에 또 뭔가 올려져있나 보네. 아이들이 또 장난을 쳤구먼"
옆자리 국어 선생님은 흔한 광경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음악 선생님에 대한 놀림성 게재글인가. 며칠 전에도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하지만, 음악 선생님은 아이들과 학부모의 항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교감 선생님에게로 걸어가는 정보부장 선생님의 빠른 걸음걸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쿵쿵거리고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설핏 설핏 들리는 단어의 조각들을 이어보니, 그것은 바로 '내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내 이름으로 동영상을 게시했다. 물론 아름답고 의미 있는 영상을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 음란 동영상물이었다.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장난을 친 것일까. 2000년대 초반 무렵, 나는 남자 중학교에 근무했다. 시내에 있는 가장 큰 중학교이긴 했지만 그리 번화한 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들 대부분이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과정 중 중요한 계산 단원이라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에 수업시간마다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에서 결과가 좋지 않은 아이들을 점심시간에 불러 모아 다시 재시험을 쳤다. 그런 상황이 2주 가까이 반복되고 있었다. 재시험에 불려 다니던 아이일까. 하긴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들에게는 학교에 있는 시간 중 가장 아끼는 시간이 체육 시간과 점심시간일 테다. 아이들의 노여움이 미루어 짐작되었다. 그 시간을 내가 뺏었으니 화가 나서 그런 것일까? 보복 심리가 발동해 한 번 당해보라는 마음으로 저지른 짓일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나는 공개적으로 저격당하는 기분이었다. 나 자신이 한없이 오그라들었고, 교무실 선생님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수치스러웠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교실 문을 열었다. 교실 전체를 둘러보는데 순간 아이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눈과 코가 없고 입만 잔뜩 있다. 입꼬리들이 하나같이 한쪽만 씰룩거리며 올라가 있다. 저 얼굴들 중 한 명이 분명 동영상을 올렸을 것이다. 아니다. 모두 모여서 키득키득 웃으며 마우스를 클릭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굴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했던 일인데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식은땀이 등의 패인 골을 훑고 지나갔다. 가슴이 두근두근, 터져버릴 것 같다. 답답했다. 굴욕감이 느껴졌다. 가소로워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기분이 너무 싫다. 나는 교탁 밑으로 숨어 버리고 싶었다.
'수치스럽다'는 표현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살면서 수치심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치심도 기쁨이나 슬픔처럼 흔한 감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당하는 이 감정은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뒤통수를 친다.
수치심(羞恥心)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수'와 '치'의 두 단어는 모두 '부끄러워하다'의 뜻이며 사전적 뜻은 '타인을 볼 낯이 없음, 본인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함'의 감정이다. 수치심에도 정도가 있겠지만 그 교실의 나는 한없이 위축되었다. 꽤 오랫동안 아이들을 보는 게 두려워 심리적 골방에 갇혀 있었고, 나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로 전락해 버려 삶의 의욕까지 잃을 정도였다. 그 사건은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던 모든 시간을 기억하기 싫은 과거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나는 그때로 돌아가 지난했던 '수치심'과 맞서고자 한다. 수치심은 사실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 내 주관적 판단에 대한 반응이다. '그건 수치스러운 거야'라는 생각이 그런 반응을 낸다. 판단을 걷어내고 본다면, 그 동영상 사건은 그냥 일어난 일이다. 어쩌면 홈페이지를 장식하는 무례한 방법으로 문제를 도출한 미성숙 청소년이 원인이리라. 판단을 모두 쓸어낸 곳에 있는 맑은 상황을 봐야 한다. 나는 타인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 낸 적이 없다. 판단을 배제하고 나면 맑은 내가 있고, 상처 입고 떨었던 내가 있었다. 수치심의 과거는 내가 키운 허깨비였다.
교실에도 있지 못하고, 교무실에도 있지 못했던 그날의 내게로 가 본다. 양호실에 누워 이불을 꽁꽁 싸매고 미동도 하지 못했던 내게로 가 본다. 수치심은 오로지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두꺼운 사슬을 끊어낼 힘도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