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두리e Jul 24. 2024

보도블록과 엄마

사소한 것들이 거창해지는 순간


변화는 하루아침에도 일어날 수 있지만, 언제고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  평범한 날들에 균열이 생긴 건 일본의 지랄맞은 보도블록 때문이다.


블록과 블록 사이에 높낮이가 달라 경계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인도에 깔린 보도블록들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20°경사를 이루기도 하며 횡단보도나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는 살짝 홈이 파인 곳도 간혹 있다. 특히, 일본은 인도와 도로의 경계를 짓는 턱의 높이가  5cm라서 자칫하면 발을 헛디딜 가능성이 커진다.


교토 여행에서 나는 발을 접질렸다.

'니시노토인'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하던 찰나 일어난 일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우리가 반드시 타야 할 '그 버스'가 오른쪽으로 유유히 달려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뛰고 싶었다. 평상시 나라면 다음 것을 타겠다고 쉽게 포기했을 텐데 말이다. '저 버스가 떠나기 전에 도착해야 해!' 선착순 달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목숨 걸고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내달렸다. 순간 나는 옆으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보도블록의 경계가 어긋나서 홈이 파여있었다.  보도블록들이 평평하게 깔려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평범한 날들의 연속선상이었다면 경계선의 미묘하고도 사소한 엇갈림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들이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날이면 지독히도 특별한 날이 되어버린다. 그것이 그날이었다. 편한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당한 일이라면 속수무책이다.


편의점에서 사 온 얼음을 비닐봉지로 감싸 밤새도록 냉찜질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떨리는 마음으로 오른발을 보니 새끼발가락부터 이어진 발의 오른쪽 측면이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전반적으로 퉁퉁 부어올라 발이 평평해졌달까.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나 걸으려고 했으나 도저히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침대 끝자락에 힘없이 걸터앉아 잠시 아픔을 달래고 있으려니,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떠올랐다. 고통이 엄습해 와 어찌할 줄 모를 때면 나는 늘 따뜻한 커피를 찾곤 했다. 지금도 커피를 들이키고 나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근처 4분 거리에 정형외과 병원이 있었지만, 내 걸음으로 15분이 걸렸다. 교토의 병원은 매우 좁았다. 오른쪽 새끼발가락 밑, 측면에 금이 갔다. 엑스레이 사진은 하얀색 실 같은 가느다란 그것을, 의사가 아닌 일반인인 내가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보여 주고 있었다. 반깁스는 해줄 수 없고 통증을 극도로 줄여주는  진통제를 주겠다는 것이 간호사와 내가 열심히 번역기를 돌리며 알아낸 처치 과정이었다. 진통제는 최고였다.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와 그다음 날 동네 정형외과에 가기까지 고통을 엄청이나 줄여주었다. 오른발을 완전히 마비시켜 놓았겠지. 나는 6주~8주 통깁스 진단을 받았고, 가급적, 절대, 발을 딛지 말고 양목 발을 짚고 다니라는 강력한 지시를 받았다. 얼떨떨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소리가 들린다. 엄마다! 엄마의 소리는 오늘따라 청량하. "아무것도 하지 마, 엄마"라는 내 말을 단번에 무시해 버린다. 납작한 무가 듬뿍 담금질을 하고 있는 소고깃국과 들깨가루가 자욱한 미역무침, 여름이면 늘 선물같이 손에 쥐여주는 자박한 물김치로 냉장고를 채워준다. 뒷베란다에 쌓아놓았던 빨랫감을 얼른 세탁기에 털어 넣는다. 엄마는 잠시 쉴 틈도 없이 이미 햇빛에 바짝 말라버린 빨랫감들을 차곡차곡 개키고 있다. 청소기로 집을 한번 쭈우욱 빨아들이고 나면  축축 늘어진 옷들을 종종걸음으로 베란다로 가지고 간다. 엄마가 지나간 자리는 반짝반짝 윤이 나고 엄마가 오는 순간은 집이 숨을 쉬는 것 같다. 딸이 깁스를 하자마자  행여나 싶어 달려와 준 우리 엄마.


엄마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항상 청량했던 건 아니다. 결혼하자마자 큰 아들을 임신했고 아이가 태어나고서도 계속 일을 했던 딸의 육아를 도와주느라 엄마는 우리 집으로 매일 출퇴근을 했다. 3년 뒤 둘째가 태어났고,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일주일에 두어 번으로 횟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혼자만의 시간을 원했다. 엄마는 오전 열 시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밀번호를 누르며 들어왔다. '삐삐삑'소리는 감옥 속 신음 소리 같았다. 아들들은 이미 스무 살의 문턱을 넘어갔고 이제 엄마는 지금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우리 집에 오는 날은 잘 없다. 내 다리가 초록색 똥깁스로 뒤덮여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이런 특별한 날들 말이다.


오십 대의 엄마도, 칠십 대의 엄마도 우리 집에만 오면 늘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 냉동실 한편에 비닐로 꼭꼭 싸둔 아이스크림들과  나무 식탁 위에 올려진 노란 '초코에몽' 우유 4개도 늘 같은 자리에 놓아두고 간다. 엄마의 사소한 흔적이지만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빨간 점처럼 그날따라 자꾸 눈에 띄었다. 반드시 기억 속에 담아두고 싶은 중요한 것들 거 마냥.

작가의 이전글 풍미가 어우러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