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나는 어느 쪽일까

아들에게 난

by 테두리e

올림포스의 주인 제우스, 그와 사촌뻘인 이아페토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프로메테우스(먼저 생각하는 자)', 둘째는 '에피메테우스(나중 생각하는 자)'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앞질러 생각하고 앞일을 미리 방비할 줄 아는 신이었고, 에피메테우스는 일이 틀어진 뒤에야 깨닫고 손을 쓰는 신이었다.

제우스의 독재에 염증을 느낀 프로메테우스는 짐승보다는 우월하되 신보다는 열등하여 아래로는 짐승을 다스리고 위로는 신을 섬길 줄 아는 인간을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영역인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고 흙으로 인간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불을 훔쳐간 프로메테우스에게 노발대발한 제우스의 의견을 들어보자


프로메테우스야 ! 너는 인간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인간은 장차 저희의 부실한 믿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대신 우리 신들이 세운 질서를 비방할 것이며, 저희가 바뀌는 대신 신들을 바꾸어놓으려고 할 것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것보다 훔친 불을 준 대상이 '인간'이라는 것에 화를 낸다. 불을 잘 다루는 것은 인간에게 미덕이 될지 모르지만 그 미덕에 바탕을 두지 않는 곳에 불을 사용하게 되면 신의 세상을 위협하려는 존재로 부상할 것을 염려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왜 인간에게 불을 훔쳐주었을까?

불화가 아니라 충돌일세. 발화의 원리가 무엇인가? 충돌일세. 나는 인간에게 불을 줌으로써 발화의 원리를 숙명으로 안겨준 것이네. [이윤기 그리스로마신화]


발화의 원리, 충돌을 인간에게 숙명으로 안겨주었다. 무슨 뜻일까? 인간이란 존재는 작고 큰 다양한 충돌 속에서 성장해 가는 존재란 뜻일까? 그것을 제우스는 불화의 발단이라 보았고 프로메테우스는 충돌을 통해 새로운 성장으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보았다. 이후 인간은 불을 통해 많은 성장을 한다. 추위를 막을 수 있었고,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날 것의 음식이 아니라 익혀먹게 되었으며, 무기를 만들 수 있는 큰 발전을 한다.


인간에게 지혜를 주기 위해 주신을 거역한 프로메테우스는 절대자에게 대항하는 이미지를 주기도 했으며, 제우스가 내린 벌로 인해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 희생의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


인간을 다루는 두 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연 아들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프로메테우스일까? 제우스 일까?


인간을 믿지 못하고 불을 가진 인간이 오만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절대 불을 줄 수 없다는 제우스처럼, 미리 앞서서 판단하고 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했던 내 모습이 어쩔 수 없이 겹쳐진다. 정해놓은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질문 공세를 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을 겪고 싶지 않아, 후회와 자책을 하고 싶지 않아, 팔 걷어붙인 헬리콥터 엄마가 되어 전두 지휘를 했던 모습은 올림포스 신들의 세상을 주무르던 제우스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상적인 모습, 상처 나고 긁히지 않은 모습만을 바랬고 회피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들들이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가지며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 한 곳의 오만함과 두려움을 묵도한 순간이었다.


인간들이 불을 가지게 되고 성장하였지만 충돌은 불가피했다. 충돌이 있어야 고통을 겪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때로는 불행 속에 휩싸이더라도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가 드러내준 그 '희망'으로 '용기', '지혜'라는 것을 진흙 속에서 건져낼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보다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나 자신의 치열한 생각에 갇혀 스스로 제우스가 되지 말자. 아들들이 뒤뚱거리다 웅덩이에 넘어져 허우적대더라도 스스로를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자. 그것이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준 숙명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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