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등용하고 나랏 일을 보살피고 많은 일을 결정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을 한 나라의 임금에게는 하루 24시간도 짧았을 것이다.
그 중 성군 세종의 '사색훈'은 어떠했을까?
첫째, 세종의 '원칙'은 백성의 허락을 받지 못하는 법이란 시행할 수 없다.
둘째, 세종의'욕망 '은 정책에 대한 헛된 마음을 가지지 말 것이며, 지금의 평가가 아니라 후세가 평가하여 그 때 기쁨을 노래하게 하자.
세째, 세종의 '사람'은 인재를 선택하여 맡겼으면 조금도 의심하지말것이며 나중에 그르치는 일이 발생한다해도 나의 안목 없음을 탓해라.
네째, 세종의 '일'은 그 중심에 늘 백성이 있음을 잊지말고 능력에 맞게 사람을 써야한다.
다섯째, 세종의 '세상'은 백성을 위한 좋은 정치를 하려면 역사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제대로 정하고 살지 않으면, 무의식 중에 향하는 곳이 내 삶의 방향이 향하는 곳이라고 착각하며 살게 될 것이다. - 작가 김종원 -
결정장애자인 내가 보기에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결정을 내렸을 세종의 사색훈을 들여다보니, 과연 성군이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김종원 작가의 문장은 뒤통수를 치는 무언가가 있었다.내가 가고 있는 삶의 방향이 무의식 중에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식적으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나의 '사색훈'을 한 번 들여다 보자.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독서 낭독 모임을 간다. 나는 하루에 책 2 ~ 3권은 몇 페이지라도 읽으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문학책을 읽고 토론을 하기 위해 인상깊은 문장을 필사하고 단상을 적는다. 나는 매주 한 번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며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고 노력한다. 나의 벗들과의 만남도 포기할 수 없다. 오후에는 5~7시간 학생들을 가르친다. 적고 보니 일주일을 엄청나게 시간을 쪼개어 살고 있다.
나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이렇게 무던히도 노력하는 것이며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나의 도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글쓰기는 무수히 반복한 나의 흔적이다.
글쓰기는 내 삶의 소소한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서 쓰기 시작했다. 쓰다보니 좀 더 좋은 문장으로 만들어내고 싶었고 그런 욕망은 점점 커져 갔다.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싶은 유혹이 넘쳐날 때는 사색과 가진 지식의 짧음에 통회를 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들이 켜켜이 쌓여 흰 백지가 주는 공포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깜빡이는 커서 앞에 한 자도 쓸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쓰는 것을 그만두지 않은 내게 작은 화해의 악수를 청하고 싶다. 토닥이고 싶다. 돌아돌아 깨달은 것이 있다면 글은 '내 그릇'만큼이라는 것이다. 딱 그만큼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슨 일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있다. 욕심부리지 말고 딱 내 그릇 만큼 사색하고 상상 속에 있던 생각을 현실로 꺼집어 내어 그것이 무엇이었든 일단 쓰자.
얼마 전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르고 원정대를 이끌었던 '이아손'의 모험이 생각난다. 50여명의 영웅을 이끌고 '아르고 호'를 전두지휘하며 '쉼플레가데스(부딪치는 두 바위섬)'를 지나 흑해 너머 미지의 세계에 있는 '금양모피' (금을 두른 양가죽)를 찾아 모험을 떠난 이아손은 결국 금양모피를 손에 넣지만, 그가 얻은 것은 금양모피, 그 하나에 불과 했을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나 사색의 질은 낮고, 검푸른 흑해마냥 갈피가 없고 끝도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 없이 쉼플레가데스에 둘러싸여 두 바위에 부딪쳐 피투성이가 되는 날도 허다하지만, 그 어느날은 반복이라는 무기로 쉼플레가데스를 지나 넓은 대양 흑해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금양모피를 얻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정만은 내게 남을 것이다. 나는 성장할 것이다. 머물러 있지 않고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이것이 나 자신과의 아름다운 여행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다.
덧글 : 욕망에 대한 사색 - 글쓰기 능력은 신이 내게 준선물 같다, 언젠가는 꼭 세상을 위해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