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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Sep 27. 2023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가 가족이라면, 타인보다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영화[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프랑스 부르고뉴의 어느 가족 이야기이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성탄절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카메라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유연하게 앵글을 돌리며 가족들 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째 장 피에르는 아버지의 죽음 후 어머니를 돌보는 이 집의 가장이다. 자신감이 넘치고 직장 내에서도 인정 받으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그는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 그런 그에게 옛 연인 헬레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일상에서의 멈춤을 준다. 운전하다 멈추기도 하고 옛 연인의 모습이 담긴 잡지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멈추어 서게 된다. 헬레나를 다시 만난 피에르는 이제껏 외면해온 자신의 과거와 애써 마주한다. 능있던 연극을 포기하고 헬레나와 헤어진 피에르는 사실 앞만 보며 버티고 있는 거였다.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 날짜를 정하는 분주한 장면 뒤 2개월을 건너뛴다. 가족들은 서로가 모르는 사이 임신을 하고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노력 없이는 단절되고 마는 가족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가족의 일상을 나열하던 카메라가 피에르의 선택, 세상과의 단절을 보여주고 그가 떠난 빈자리를 가만히, 한참이나 비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피에르, 가족들은 모두 오열하며 슬픔에 잠긴다.


아낌없이 나눠주는 나무처럼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며 가족들에게 헌신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을 놓아버리고 빈 껍데기만을 부여잡고 살아왔다는 삶의 허무함을 느껴서 였을까.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가족이라고 해서, 그 내면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삶을 멈춤하기 전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지만 자신의 속내는 말하지 않는 피에르,  온전히 말로 뱉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이라고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보이게 마련이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진다면 가능할까


[너에게  가는 길]은 성적 소수 문화 인권 연대 연분홍치마의 작품으로 성소수자 부모들의 이야기이다.


예준은 스무 한 살이 되어서야 부모님에게 가슴 한켠 묻어두었던 마음을 고백 한다.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7년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예준의 엄마는 7년 동안 아들이 고민하는 사이, 눈치조차 못챘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야 할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비탄에 빠진다. 하지만 아들에게 더 상처가 될 것 같아 엄마는 3일 만에 "나는 괜찮다"고 모든 것을 이해한 다는 말을 하며,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 동행을 한다.


"저는 스물 한 살 게....으흑 으으으 흑흑흑흑흑"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며 오열하는 예준 엄마에게로 급히 휴지가 전달되고 점차적으로 더 많은 양의 휴지가 넘나들며 그곳은 곧 흐느낌이 가득한 울음바다가 되었다. 저는 게이 아들을 두었다는 말을 끝내 하지못한 예준 엄마는 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2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정체성을 고민하며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 7년, 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엄마가 견뎌냈을 2년,  숫자 9년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의 고통은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내 가족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며 그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다름을 받아들이려는 자세와 가족들의 몸부림에 주목하고 싶다. 어떻게, 비록 자식이라 하더라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 할 수 있을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둘 뿐이다.


두 아들은 스무살 성인이 되면서 고향을 떠나 생활한다. 학교의 학기가 진행되는 4개월 동안 고작 일주일도 채 못 본다.

경제적 독립은 아직 생각할 수 없지만 스무살의 독립은  무엇보다 대학교다. 학업으로 자연스럽게 멀어진 몸과 마음, 그 틈을 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나는 많은 질문을 아들들한테 쏟아내기 바쁘다. 일명 '맘충'이다.


"점심은 어디서 먹어? 기숙사 친구들은 성격이 어때? 이름은 뭐야?이번 전공 교수는 가르치는 실력이 좀 어떤가? 예쁜 여자애는 없어?"


나름 눈치 보면서  질문한다.   품에서 점점 떠나가고, 떠나가려는 그들이지만,  달라져가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나의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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