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짜리 주택들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쭈욱 늘어서 있다. 짙은 나무 대문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 깔끔한 양옥집, 사각형모양의 반듯한 건물에 창문 몇 쪽만 골목길을 바라보고 있는 시멘트 집, 다양한 모양의 집들이 골목길을 둘러싸고 있는 거리의 풍경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동네 풍경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사과나무가 빽빽하게 배수진을 치고 있던 어귀의 조그마한 초가집에서 살았다. 집안의 첫째 였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집은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사과나무, 초가집, 동네 어귀를 흐르던 개울물, 논과 밭의 이미지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엄마가 '그랬단다'라고 되뇌던 말속에 기억은 봉인된 것만 같다.
이사 온 도시의 동네, 그 골목길 초입에, 초록색 양철 대문이 우리 집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마당 한가운데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나와 있는 한 그루 나무를 툭 치고, 냉큼 신발을 벗어던지면서 마룻바닥의 거실로 올라가면, 왼쪽에 큰방, 오른쪽에 작은 방이 있는 아담한 한옥집이었다. 다섯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잠을 잤던 큰방은, 밤이 되면 천장을 운동장 삼아 경주를 일삼는 쥐들의 달리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대문 옆, 푸세식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머리맡에 요강 단지를 놓고 자던 기억부터 떠오른다.
초록색 우리 집 건너편에는 사각형 반듯한 시멘트 양옥집이 있었다. 그 양옥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3학년 무렵 친해진 친구 때문이었다. 안소영... 나의 첫 친구. 키가 크고 눈망울이 왕방울만 했으며 부러워 마지않던 '언니'를 두었던 친구.
등교를 함께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을이 골목길을 뒤덮어 그 어스름한 그림자를 드리울 때까지, 초록 한옥집과 반듯한 양옥집을 왔다 갔다 하며 골목을 뛰어다녔다.
소영에게서 사실 제일 부러운 것은 수세식 화장실과 양변기였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집안에 들어가 있다 것이 놀라웠다. 소영이는 요강 단지도 필요 없을 것이다. 대문을 열면 바로 집 현관문이 나타나고, 집 안에 화장실과 부엌과 거실과 방들이 오밀조밀 모여 맨발로 모든 곳을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우리 집처럼 괜히 마당만 넓게 차지하고 화장실은 멀리 떨어져 있고, 부엌으로 가려고 해도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 그 양옥집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골목길 건너편으로 얼마나 이사를 가고 싶었던가. 나의 첫 기억은 인생에서 처음 사귄 친구의 '수세식 화장실'과 '양변기'였다.
그로부터, 6년 뒤 우리도 양옥집으로 이사를 갔고 꿈에 그리던 양변기를 가졌다. 그 후 주택집을 옮겨 다니면서 살았던 나는 친구의 아파트를 방문하면서 아파트에 대한 꿈을 또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아파트는 무엇보다 윗공기가 따뜻했고 바람이 슝슝 스며들어오던 화장실이 아닌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아파트에 살기를 고대하던 나는 결혼을 하면서 드디어 아파트에서 신혼집을 시작했다. 신혼 초의 아파트는 거실 바닥이 흰색 타일이었는데 그 흰색 타일이 눈에 거슬려 나무 바닥의 아파트로 옮기고 싶은 열망을 또 불태웠다.
골목길 건너편 양옥집을 동경하던 어릴 적 나는, 양옥집에서 아파트로, 그 아파트에서 좀 더 인테리어가 잘 된 곳으로, 조금 더 넓은 평수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욕망을 키워 갔다. 어릴 적 첫 기억은 내 욕망의 시작을 마주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하나를 얻어내기 위해 사다리를 올라가면 또 다른 것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안 보이는 사다리를 탔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