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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Oct 28. 2023

숫자 '3' 콤플렉스

콤플렉스에 대하여

밤새 잠을 뒤척였다. 오늘은 4인조 걸크러쉬들이 매 달 한번씩 여행가기로 한 날이다. 내가 운전 하기로 한 날이라 살짝 긴장이 되었다. '잠을 못자서 어쩌지. 거제도까지 왕복 5시간은 될텐데, ' 밤새 뒤척인 것이 신경이 좀 쓰였다. 좀 더 자볼까 어쩔까. 금방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눈을 뜬 것도 아니고 감은 것도 아니고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누워 있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린다. 받을까 말까. 목소리를 가다 듬었다.


"어 혜수야"

"일어났어?,"

"일어났지. 왜 무슨 일 있어? 좀 있다 만나는데 "

"윤정아 나 오늘 못 가겠어"

"왜? 무슨 일이야?"

"아침에 너무 어지러워 일어나지를 못하겠어. 오늘 거제는 안 가는게 좋을 것 같아. 고민하다 전화했어"

"이런, 같이 가면 좋을텐데, 어째 , 오늘 몸조리나 잘 해"


​전화 통화를 하는 내내 머리 속이 복잡하다. 혜수가 못 가면 남은 친구 3명이 가야한다. 짝수 멤버가 아니라 홀수 특히, 3명이 가는 여행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무언가를 내 앞에 드러냈다.


​​여자들간의 모임이란 3명 관계가 제​일 많다. 둘은 재미없고 다섯은 좀 많고, 그에 비해 넷은 다니기도 무난하고 짝수 조합이라 좋긴 하지만, 대충 모임이 만들어지면 셋인 경우가 허다했다. 셋이 만나면 그 관계에서 뒤쳐질까 두려웠다 . 나는 자신만 소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늘 있었고 그러니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았다.


​​아이들 육아 품앗이를 위해 만난 모임도 3명이 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머지 두 명의 엄마들이 자기들끼리 아이들을 데리고 문화 공연을 다니고 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내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친한 언니들과 함께한 3명의 제주도 여행 , 좋은 추억을 쌓고 싶고 모두를 다 포용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여행을 떠났지만, 서로의 생각은 달랐고, 여행의 온도마저 다르게 기억되었다. 한 번의 여행으로 3명의 관계는 유지되지 못했다.


​​나는 숫자 '3'이 싫다. 숫자 '3'은 관계에서 나를 막연하게 두렵게 만든다. 왜 일까? 가슴을 짓누르는 어떤 불쾌한 감정을 느끼며 생각에 잠겨 보았다.


​​우리 집은 삼남매였고 여름 방학이 되면 엄마를 따라 시골 외갓집을 가곤 했다. 시외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시멘트 바닥이 끝없이 이어지는 외갓집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그 시멘트 길바닥 주변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이어졌다. 엄마와 우리 삼남매가 외갓집까지 이어진 길을 걸어가다보면 그 옹기종기 집들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가 대문 문간으로 쑤욱 나오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다.


​"애들하고 친정에 다니러 왔구만"

"애들이 볼 때마다 자라 있네 "


​어르신들은 엄마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매번 누가 누군지 헷갈리기만 했던 나는 엄마 얼굴만을 쳐다보며 적당한 때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파란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늘 양갈래로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았던 외할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어느 날은 부엌 문에서 부터, 어느 날은 수돗가에서, 어느 날은 뒷 뜰에서, 넓다란 마당을 단숨에 가로질러 달려 나오셨다.


​​외갓집을 가게 되면 두 이모네도 사촌 동생들을 데리고 왔다. 여름 방학 외갓집은 사촌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 외갓집에는 중앙에 큰 대청 마루가 있었다. 여름이면 대청 마루에 큰 모기장을 치고 사촌들은 그 안에서 여름밤을 보냈다. 풀벌레 소리, 기와지붕 너머로 밤 하늘을 수 놓은 별들, 얼음 동동 커다란 수박 화채, 모기를 쫓아주던 할머니의 파리채 소리, 뒷 문까지 활짝 열어놓으면 앞 뒤로 바람도 잘 통해서 천연 에어컨이 따로 없었다. 한 낮에도 마루에 누워 있다보면 잠이 솔솔 왔다.


​​그 날도 여동생과 나란히 누워 있다 낮잠이 들었다. 얼마쯤 자다가 설풋 잠이 깼다. 마루 끝에서 두 이모와 엄마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으로 등을 돌리고 누운 상태라 이야기 소리만 들렸다. 여동생과 그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찰나라서 계속 자는 척을 했다.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진희가 싹싹하니 성격이 더 낫더라" 큰 이모의 목소리였다.

"그래? 나는 윤정이가 더 마음에 들던데" 뒤이어 작은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비교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 날 부터 작은 이모만 좋아하고 따랐던 것 같다. 친척들이 여동생과 나를 계속 비교하고 누가 더 자기 맘에 드는가를 생각하는 것일까에서 시작된 혼란은 누가 여동생을 칭찬하면 묘한 질투심이 일었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런 질투는 확대되어 엄마를 사이에 두고 느끼기도 했으니, 그 때 부터 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구나! 나는 동생을 빛나게 해 주는 들러리인가? , 동생을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번 방학에는 가지 말까? 아니, 차라리 동생이 안 갔으면 좋겠어. 엄마는 심부름을 동생한테만 시키는 것 같아. 나도 심부름을 잘 할 수 있는데 왜 나는 잘 시키지 않지? 내가 못 미더운건가? 나도 신뢰받고 싶어' ​



​어릴 때 가졌던 그 질문들을 마음 속으로 곱씹었다. 두려움과 이해 안 되는 모호한 감정은 의문과 의심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무엇이 날 괴롭히는 거지?' 어느 사이 사랑을 주리라 믿었던 대상에게 배신당했다는 느낌도 있었고 동생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두고 경쟁해야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어린시절 처음 느꼈던 3명의 경쟁 구도,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 공부에 열중했을 수도 있다. 숫자로 드러나는 확실한 성적들을 본다면 나를 칭찬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도, 이모도 늘 심부름 잘 하는 동생만 칭찬했다. 어느 순간부터 밖의 관계에 열중했던 것 같다. 그 관계에서도 스스로 눈치를 보거나 주목받지 못하고 들러리가 되었다고 느끼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통제 받는다고 느끼게 되었다. 나는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들러리인가? 그 주인공은 여동생이었다가 주위의 친구였다가.


​나는 일어나서 정수기 앞에 섰다. 미온수와 냉수를 반반씩 섞어 마셨다.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물길의 느낌이 짜릿했다.


​​늘 자신있고 활발했던 내면의 모습 뒤에는 상처받고 거부당한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약한 모습들을 한번도 드러내 보인 적은 없었다. 나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었고, 엄마도 내가 기분 안 좋을 때마다 들춰서 물어 본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이야기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내 감정을 보호해야 한다고 느꼈다. 잔소리가 없던 부모님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엄마도 나이가 드시고, 나에게 많이 의지하시니, 나도 조금은 유연해진것 같지만.


​​나는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감에 차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자신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받고 싶어했고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마냥 기쁘게 해 주려는 것은, 여전히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갑옷을 두르고 있는 연약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가슴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거울 속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나도 알고보면 섬세한 여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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