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멈춘 곳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오은영... 당시 꽤 유명 프로그램이었는데, 생업을 하는 시간대여서 그전에는 한 번도 시청해 본 적이 없었다.
한 패널이 출연하여,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A는 어릴 때 아버지와 꽤 친한 사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고, A는 자연적으로 아버지를 만날 기회가 적어졌다. 한 번씩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서먹서먹하고 편하지 않았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날이 늘어만 갔고, 마음 따라 몸이 가듯이 몸도 쭈뼛쭈뼛, 아버지 앞에서는 꼭 로봇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게 쭉 뻗은 길의 양쪽으로, 하늘하늘한 코스모스와 들꽃들이 흔들흔들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들을 A는 열심히 눈으로 좇고 있었다. 그러다 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A는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도 못했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버렸다. 시선은 자연적으로 땅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었다. 멈춰 버린 몸, 사정없이 왔다 갔다 좌우로 움직이는 눈.
아빠가 저기 앞에 계신데 어떡하지... 아는 체를 해야 하나... 그냥 되돌아가버릴까.. 아빠가 나를 못 봤을 수도 있어...
A는 아버지를 훔쳐보기 위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코스모스와 들꽃들이 코 앞으로 냉큼 들어왔다. 아버지는 들꽃들을 한 아름 꺾어 나에게 쓱 내밀었다.
"아버지에게 아는 체를 하지 못했어요. 그 순간에 그냥 몸이 굳어버렸어요. 고개를 떨구어버려서 너무 죄송했어요. 그러고 있는 저에게 너무 죄책감이 느껴졌어요. "
"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
내게도 A와 같은 경험이 있었다. 대학교 때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릴 정류장이 되어 하차벨을 누르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몇 명의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는데 사람들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빠였다. 나는 그 순간 고개를 돌려 버렸다. 못 본 척했다. 고개를 숙이고, 단정하게 감겨 있는 신발 끈만 쳐다보았다.
아빠가 먼저 버스에서 내렸고 나는 일부러 제일 뒤 쪽으로 줄을 서며 아주 천천히 내렸다. 보폭을 작게,
느릿느릿 천천히 걸으면서 아빠와의 거리를 애써 점점 벌여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 까지는 200미터가량 걸어가야 했다. 그 길을 아빠와 함께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나누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번뜩이며 머릿속을 스친 그 생각은 나를 경직되게 만들었고 예기치 않은 행동을 하게 했다. 어릴 때와는 달리 대학생이 되니 아빠와 나눌 말도 없었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모녀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A에게 전하는 오은영 박사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내게 던지는 말 같았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버스 정류장 일이 있은 지, 1년 뒤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였다. 버스 정류장 일은 내게 큰 죄책감으로 줄곧 남았다. 아빠에게 그날의 일을 사과하지 못했다. 아빠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나는 죄책감을 가슴속에 박제해 버렸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오며 하염없이 울었다. 평소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그 프로그램이 어느 날 내게 '용서'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아빠가 '이제 괜찮다'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었을까. 30년 동안 박제해 버린 그 '죄책감'은 수면 위로 올라와 말을 건넸다. 우연이 만들어낸 것을 통해, 나는 나를 용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