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오전 10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숨이 막힌다. 머리도 띵하다. 기가 죽고 얼간이가 된 것 같다. 동시에 얼굴은 붉은색, 주홍색, 진홍색으로 변해 간다. 진땀이 흐르고 맥이 빠지고 집을 나서야 하는데 발걸음이 무거운 것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매주 화요일은 성당 레지오를 가는 날이다. 성당의 기도 모임으로 우리는 8명의 단원이 있고 단장, 부단장 등, 4명의 간부단원이 있으며 단장의 리드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기도 회합을 가진다. 레지오에서 부단장의 역할을 맡은 지 1년 6개월이 되어 간다. 단장을 보좌하고 단원들을 보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다. 문제는 단장의 부재 시 단장의 역할을 하며 주회합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장을 맡은 분이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레지오에 공석 일 때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나는 마음의 문제가 서서히 생겼다. 단장을 보좌하고 단원들을 살피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주회합을 앞장서서 리드하는 것은 어깨를 누르는 엄청난 압력이 되어 왔다. 한마디로 리더 공포증이다. 부단장이라는 2인자의 자리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
현대 경영학에서 '리더십'은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이다. 여러 강좌에서 개설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검색을 하면 리더십에 관련된 수많은 책이 등장한다. 탁월한 성과를 낸 팀을 생각해 보면, 훌륭한 리더나 실력 있는 팀원들이 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훌륭한 2인자가 있겠거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뭄 뒤 콩의 운명처럼 웬만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다.
생각해 보면, 2인자들은 수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주회에서 리더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력을 하고, 그녀를 대신해 결석한 단원들을 챙겨 전화를 걸고, 먼 곳으로 이동할 때는 운전을 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때로는 단원과 팀원들의 원활한 소통이라든지, 회합이나 행사에서 의기소침한 단원을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 세우는 등 머릿속은 쉴 새 없이 회전하고 가동된다.
쉽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게 리더와 팀을 강하게 만드는 2인자의 가치란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나는 2인자로서의 부드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모임원들을 원활하게 소통시키며 중재를 할 때, 안정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내 시그니처는 '빛나는 2인자'이다.
리더가 되는 자리도 마다 하지만, 2인자 아래의 위치에 있게 된다면 그 모임은 애초에 참여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