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모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두리e Oct 31. 2023

나의 시그니처는 2인자

정확히 오전 10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숨이 막힌다. 머리도 띵하다. 기가 죽고 얼간이가 된 것 같다. 동시에 얼굴은 붉은색, 주홍색, 진홍색으로 변해 간다. 진땀이 흐르고 맥이 빠지고 집을 나서야 하는데 발걸음이 무거운 것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매주 화요일은 성당 레지오를 가는 날이다. 성당의 기도 모임으로 우리는 8명의 단원이 있고 단장, 부단장 등, 4명의 간부단원이 있으며 단장의 리드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기도 회합을 가진다. 레지오에서 부단장의 역할을 맡은 지 1년 6개월이 되어 간다. 단장을 보좌하고 단원들을 보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다. 문제는 단장의 부재 시 단장의 역할을 하며 주회합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장을 맡은 분이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레지오에 공석 일 때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나는 마음의 문제가 서서히 생겼다. 단장을 보좌하고 단원들을 살피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주회합을 앞장서서 리드하는 것은 어깨를 누르는 엄청난 압력이 되어 왔다. 한마디로 리더 공포증이다. 부단장이라는 2인자의 자리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



현대 경영학에서 '리더십'은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이다. 여러 강좌에서 개설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검색을 하면 리더십에 관련된 수많은 책이 등장한다. 탁월한 성과를 낸 팀을 생각해 보면, 훌륭한 리더나 실력 있는 팀원들이 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훌륭한 2인자가 있겠거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뭄 뒤 콩의 운명처럼 웬만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다.


생각해 보면, 2인자들은 수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주회에서 리더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력을 하고, 그녀를 대신해 결석한 단원들을 챙겨 전화를 걸고, 먼 곳으로 이동할 때는 운전을 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때로는 단원과 팀원들의 원활한 소통이라든지, 회합이나 행사에서 의기소침한 단원을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 세우는 등 머릿속은 쉴 새 없이 회전하고 가동된다.


​쉽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게 리더와 팀을 강하게 만드는 2인자의 가치란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나는 2인자로서의 부드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모임원들을 원활하게 소통시키며 중재를 할 때, 안정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내 시그니처는 '빛나는 2인자'이다.


​리더가 되는 자리도 마다 하지만, 2인자 아래의 위치에 있게 된다면 그 모임은 애초에 참여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스정류장에서 용서를 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