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학에서 변곡점은 그래프가 위로 볼록인 상태에서 아래로 볼록인 상태로 변하거나 아래로 볼록인 상태에서 위로 볼록인 상태로 변하는 점을 말한다. 또한 미적분학에서 극대점은 그래프가 증가에서 감소로 바뀌는 점, 극솟값은 감소에서 증가로 바뀌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변곡점은 상승 곡선이나 하강 곡선에서 잠시의 '멈칫'하는 순간이다. 극대점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점, 극소점은 정점을 찍고 올라가는 점이다. 인생의 그래프에서는 수많은 극대와 극소와 변곡을 만날 것이다. 그래프가 요동칠 수도 있고 잔잔한 물결 모양일 수도 있다.
인생 그래프 상승 곡선의 변곡점은 '기도의 순간'이었다. 둘째 아들로 인해 알게 된 인연은 성당으로 이어졌고 6개월의 시간을 거쳐 세례를 받았다. 주일 미사를 다니면서 찬송가를 부르는 한 달 내내 눈물이 났다. 목구멍 깊숙이 무엇인가가 꽈리를 틀고 들어앉아 소리를 삼켜버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목소리 대신 얕은 흐느낌만 뱉어냈다. 누가 볼세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에 바빴다. 한 달을 그랬다.
다니던 학교를 퇴직하고 시작했던 수학 과외는 점차 꼬리에 꼬리에 무는 입소개로 아이들이 꽤 모여들었다.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아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지는 대로, 작아지면 작은 대로 생업이란 만만찮은 걱정과 고민거리를 준다. 아이들의 수와 비례하여 성적을 올려주어야겠다는 욕망은 커지고, 욕심은 불타올라 분노로 바뀌고 화를 폭발시키다 보면 그 기운은 아들들에게로, 남편에게로 옮아가며 집안은 무거운 회색 기운으로 잠식되었다. 회색 기운은 다시 내게 죄책감으로 돌아왔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 발버둥의 결과가 내심 못마땅하여 분노로 휩싸일 때도 있었다.
그 상승 곡선의 잠시 멈춤이 '성당'이었다. 내가 어쩌지도 못한 한 달 동안의 흐느낌은 이상하리만치 위로를 받았다. 신부님의 진심 어린 좋은 말씀들은 안식을 선물했고 위안이 되었으며, 나를 파고드는 묵상을 통해 스스로가 짊어졌던 무게를 걷어냈다. 고생했어.. 잘 살아왔어.. 최선을 다 한 너를 위로해 ..그때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있는 가 보다.
마흔아홉이 되면 어떨까. 나이 오십이 되는 그 순간보다 마흔의 아홉수는 더 생각이 많아진다. 100세 인생에,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산다는데, 남은 시간은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이며, 지금의 생업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50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위해 준비하는 나이다. 50세에서 70세가 제2의 황금기이고 이 순간을 잘 준비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야 한다는데, 인생은 이리도 바쁜가. 큰 아들의 수능을 마무리하고 인생에서 뭔가 하나를 끝냈다는 느낌은 중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울림으로 바뀌어 내 등짝을 후려치는 느낌이었다. 누가 내 등짝을 후려치는 거야!!
인생의 첫 하향 곡선을 잘 내려오고 싶었다. 우아하게 날갯짓 하며, 덧붙여 소소한 행복까지 누린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 하향 곡선의 잠시 멈춤은 '책과 글쓰기'였다. 읽고 쓰고 사색하는 삶. 우연히 접하게 된 네이버 우리 동네 광고에서 본 글쓰기는 홀린 듯 전화기를 들게 했고, 6개월 동안 글쓰기라는 마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문학 다이어트'라는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문 작가님과 함께 한 인다 3기의 시간은 우아하게 하강 곡선을 내려갈 수 있는 변곡의 지점이 되어줬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느껴보기를 원한다면 꼭 글쓰기를 하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5년 동안의 블로그는 내 기억과 수고와 성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때로는 힘들다. 글태기도 수시로 찾아온다. 힘든데, 분명 힘든데, 또 쓰고 있다. 나는 왜 이리 쓰고 싶어 하는가를 자문한 적도 수십 번이다. 어느새, 쓰는 인간이 되었나 보다.
글쓰기의 유전자는 책이라는 동력과 함께 새로운 인연의 기회를 주었고 건네준 손길을 잡았더니 공저 책을 출간하는 결과물을 주기도 했다. 에니어그램이라는 상담사의 길을 열어 주기도 했으니, 글은 또 다른 상승 곡선을 펼치게 해 줄지도 모른다.
넬슨 만델라는 1955년을 전후하여 마르크스 - 레닌 주의에 몰두하여 폭력 혁명을 통한 남아프리가 흑인 해방을 지지했지만 테러 활동을 계획한 것이 탄로나 리보니아 재판을 받고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40대 중반에 20여 년간의 수감 생활을 했다. 그 수감생활은 그를 변화시켰다. 절망하여 자포자기하거나 복수심을 불태운 것이 아니라 흑백 화합의 남아프리카의 미래를 구상하며 보냈다. 그가 세상으로 걸어나왔을때 국민 통합을 실천하는 정치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만델라의 체포, 리보니아 재판, 감옥 수감 등의 인생의 변곡은 그에게 남아프리카의 긴 역사와 미래를 위한 신의 한 수였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변곡을 잘 겪는다면 수직 상승을 경계하고 수직 하강이 아닌, 인생의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