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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Nov 08. 2023

어느 날, 내게 너가 왔다

만남에 대해


사촌 언니가 내민 알약은 희고 작았다. 잠 안 오는 약이라는 것을 먹고 나니 희한하게 졸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그 약을 먹고 새벽녘까지 공부를 했더니 시험 점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엇을 모른다는 것은 창피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공부를 잘해야겠다고 자각한 순간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학은 달랐다. 백분율, 그것이 인생 최대의 난제였다. 처음 보는 기호 % 는 암흑 속에 빠지게 했고 교과서와 전과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급기야 풀이를 모조리 외워 버렸다. 그렇게 외운 지식으로 시험을 치니 점수가 좋을 리 없었다. ​​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텔레비전 옆, 조그마한 좌식 책상에 놓인 스탠드를 조용히 켰다. 아버지, 엄마, 동생들이 곤히 자고 있는 방은 한쪽 벽면은 작은 다락으로 연결된 문이 있고, 그 옆으로 아버지 옷이 주로 걸려있는 벽장이 있다. 벽장 옆에는 부엌과 통하는 작은 문이 있으며 한 번씩 천장에서 '다다다' 쥐들이 서로 경주를 하던, 기억 속 그 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튼,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난 이유는 수학 문제를 풀고 싶어서였다. 중학교 2학년 연립방정식 숙제를 끝내고 누웠는데 그다음 내용이 궁금해진 것이다. 가감법, 대입법을 이용해 푸는데, 답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내 입가에 미소가 슬쩍 지나갔다. 모두가 잠든 밤, 조그마한 스탠드를 켜고 식구들이 깰까 봐 조용조용 연필을 사각거렸던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없다. 내게 중학교 수학은 기호와 싸우고 , 이해하고, 받아들인 역사였다. 집합의 기호에서 시작해서 삼각비까지 기호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사라지며 따귀를 때려댔다.




수학은 기호 그 자체이다. 기호는 세상 모든 것을 다룬다. 곧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다. 수학의 기호는 세계 어디를 가나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이다. 그때의 작은 꼬마 수학도는 기호의 심오한 진리를 어떻게 알겠는가.


수학에 대한 흥미는 다행히 쭈욱 이어져서 대학의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대학 수학은 더 많은 기호들이 태풍처럼 들이닥쳤다. 특히, 대학 미적분학에 처음 등장하는 '엡실론'의 기호는 적잖이 충격이었고 칠판 빽빽이 적어 내려가는 교수님의 'Theorem'은 당혹스러웠다. 우리는 그 Theorem을 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달 외워서 시험을 치러냈고 시험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머리에서 삭제시켰다. 어디에도 써먹지 못하는 이것을 왜 이리 달달달 외우고 있으며 그 많은 증명을 외우고도 막상 문제는 풀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이것은 흡사 고등학교 1학년 때 '홍성대'님의 수학의 정석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수학의 정석' 그것은 혼란이었다. 친절히 설명되어 있는 예제를 차근차근 풀어 나가서 마침내 도달한 연습문제는 손을 대기가 녹록지 않았고 배심감 마저 느끼게 했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 옆부분은 집합 부분만 시커먼 자국을 남겼고 그 책의 주인이 끝까지 진격을 했는지, 중도 포기를 했는지, 책장의 한 장식품이었는지, 책상에 쓰러져 잘 때마다 알맞은 베개 역할을 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던 바로 그 책이 아닌가.



수학책을 펼치며 공부했던 그 시절들, 수많은 공식과 개념으로 둘러싸여 씨름했다. 세상 살아가는데 미적분, 이차방정식 근의 공식 등이 무슨 소용이 그리 있겠는가. 하지만 미적분의 내용은 사라지고 없겠지만, 그것을 사고한 과정은 남는다. 내가 던진 '왜'라는 수많은 질문들, 논리적 맥락을 생각한 순간들, 의심하며 회의한 시간, 나를 좌절하게 만든 수많은 문제들, 다시 도전하게 만든 인내력과 열정, 그것들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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