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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Nov 02. 2023

치유받는 길은 마음의 편견을 없애는 것 부터

영화 [보살핌의 정석]

아들과 함께 오래간만에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팔십은 족히 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 두 분이 열심히 마라탕을 먹고 계셨다. " 음 .. 저 연세의 두 분이 이런 마라탕을 좋아하실 리가 없는데, 분명 가게 사장일 거야. " 맞은편에서 코를 박고 마라탕을 먹고 있던 아들이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노인들은 마라탕을 못 먹는다는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그런 편견 좀 버려"


앞에 차가 없는데도 천천히 가는 도로의 운전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7~80대 분들이었다. 얼마 전 알고리즘에 걸려 보게 된 영상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벌어진 대치 상황이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우 앞을 할아버지 한 분이 가로막고 계셨다. 휠체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면 너무 비좁으니 할아버지는 장애우 분에게 함께 타지 못하겠다고 엘리베이터를 못 타게 시위를 하고 있었다. 집에 있을 것이지. 왜 밖으로 나와가지고서는.. 영상을 통해 들린 이 말은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편견은 일방적 견해, 편향된 견해로서 충분한 근거 없이 타인을 나쁘게, 혹은 좋게 보는 생각이다. 충분한 근거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노년 세대는 자기만의 생각이 확고하여 고집 또는 아집, 일명 꼰대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친정어머니나 시댁 부모님도 이제 70~80 대이다. 아직 건강하셔서 그리 보살핌이 필요하신 것은 아니지만, 마냥 건강하시지는 못할 것이고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우리 어른들도 살아오신 세월만큼 당신의 가치관과 확고한 생각, 고집도 있다. 지금은 부딪치는 일이 그리 크게 없지만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면 그리 녹록지 않을 수 있다. ​​



​우연히 보게 된 넷플릭스 영화 [보살핌의 정석]은 보살핌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인 상처로 힘들어하다 절필을 하고 간병인이 된 작가 벤과 뒤센 근 디스트로피라는 유전적 질환으로 인해 집 안에 틀어박혀 사는 소년 트레버와의 만남을 그린 영화이다. 전신의 근육이 점점 약해지고 호흡까지도 약해진 상태라 트레버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대소변을 혼자 처리하기 힘들며 잘 때도 호흡을 도와주는 보조 기계를 착용하고 자야 한다. 벤은 트레버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여행을 제안하고, 트레버의 평생소원인 서서 오줌 누기를 위해 둘만의 공간 화장실에서 악전고투를 펼치기도 한다. 특히, 여행 중 만난 가출 소녀 도트는 트레버를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환자로 보거나 동정 하지 않는다. 어디가 아픈 지 서슴없이 묻는다거나 트레버의 데이트 신청에도 날 데리러 직접 방으로 오라고까지 한다. 그녀와의 데이트 날, 트레버는 기계의 도움 없이 거뜬히 잘 수 있게 된다.


​때로는 지나친 배려가 상처가 될 수 있고, 편견 없는 무례함이 치유가 되기도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 간병인이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ALOHA

Ask.Listen.Observe.Help.Ask again


'묻고, 듣고, 관찰하고, 돕고, 다시 묻는다'를 지켜라는 것이다. 또한, 남을 돌보기 전에 자신을 돌봐야 하며, 내가 바라는 것을 타인도 바라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내던지면서까지 하는 간병은 절대 배려가 아니며 진정한 배려는 자신부터 돌보는 것이 보살핌의 정석이라는 것이다.


영화 [보살핌의 정석]은 제목 그대로 보살핌을 주어야 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보다 편견 없는 마음을 가질 때 내가 가진 세계가 더욱 확장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사람은 사람에 의해 치유받는 것이며 그 첫걸음은 마음의 편견을 바라보고 올바로 바로잡는 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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