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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Nov 17. 2023

틈 ,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 만큼만

틈과 사이

학교로 출발하기 전 책가방의 지퍼를 다시 내렸다. 시간표마다 교과서와 필통, 과제는 있었는지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책가방을 매고 집을 나섰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공부도 잘하고 싶었고 야단도 맞기 싫었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완벽함으로 나를 칭칭 둘러 싸게 만들었다. 물론 공부를 하는 데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그런 완벽이 통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말도 많지 않았고 숫기도 없었으며  얌전하고 평범한 내게 먼저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친구가 추천한 부반장 선거에 어쩔 수 없이 수줍음을 안고 교탁 앞에 서게 되었고,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한 100개가 넘는 눈동자들을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저를 뽑아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판에 박힌 말만 투척하고 황급히 자리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삶의 반경이 점차 넓어졌다. 삶의 풍파 속에 관계도 넓어지고 수줍음은 조금씩 극복되어 갔다. 하지만 여전히 평범하다고 생각한 나는 항상 먼저 다가가려고 애썼다. 그것이 조금씩 천천히  다가간 것이 아니라 성큼 성큼 크게 한 발을 내디뎠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했고,  그 친절에 빨리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이상하다고 여겼다. 사람과의 관계에 속도가 있게 마련인데, 그 속도를 무시하고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했다. 조금의 틈을 주지않고 완벽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관계에 서툴렀던 나는 그 틈이 조금이라도 벌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어느덧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인간관계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먼저 다가가지 않고 '잠시 멈춤'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행 밴드를 통해 만난 동갑내기 친구는 사는 지역이 달라 일 년에 4번을 만나면 정말 살갑게 만난 횟수이다. 어릴 적 친구도 아닌데 옛날의 나 같으면 이런 만남이 유지가 된다는 것이 신기할 법도 하다.  3~4 달에 한 번을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더욱 진한 친밀감이 느껴졌다. 우리 사이 조금의 틈이 더욱 친해지고 진심을 나눌 수 있게 만든 것이 아닐까.  틈이 주는 관계의 오묘함이 있다. 이제 이런 틈이 있는 인연들이 주위에 많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연락해야 하고 가까이 있지 않으면 나를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내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 소유욕과 이기심 때문이라는 깨달음도 반백살을 넘기고 나니 겨우 찾아왔다.


팔짱보다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다.  어깨는 부딪치지 않게, 그녀의 혹은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살짝 때릴 수 있게, 그러다 돌아보면 언제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만큼만, 틈을 두고 싶다.

 

관계의 아름다움은  적당한 '틈'으로 건강한 '사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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