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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Nov 15. 2023

90만원 짜리 암체어는

쓸모와 쓰임


오후 3시의 에세이



"아빠, 엄마가 90만 원짜리 의자 샀어"

슬쩍 내가 있는 쪽으로 눈을 흘기며 아빠에게 고자질하는 폼새다. 고작 의자 한 개를 아주 비싼 돈을 주어가며 사는지 알 수 없다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의 얼굴은 귀엽기까지 했다.


8년 전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근사한 암체어를 하나 사고 싶었다. 연갈색 나무로 둘러싼 등받이에 베이지색 바탕, 연두색과 옅은 빨간색, 노란색 선이 엇갈리며 세로로 배열되어 있는 암체어는, 진열되어 있는 가구들 속에서 한눈에 들어왔고, 무엇보다 의자 하나로 거실이 환해질 것 같았다. 짙은 베이지색 망사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올 때면 아끼는 나의 가구는 더 찬란한 빛을 내며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비록 의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는 기쁨이고 흐뭇함을 주는 마음의 정화 장소였다. 의자라는 쓸모를 안고 기쁨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가구 이상의 쓰임이었다.



거실을 빛냈던 사랑스러운 의자가 이제는 방 한구석만을 차지하게 되어버렸다. 몇 년 전 3인용 초록색 면 소파를 샀다. 8년 동안 함께 한 회색 면 소파가 지겹기도 하고 낡았다고 생각해서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회색 소파를 침대로 쓰고 있던 남편이 버리는 것을 고사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덩치가 커서 버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도 한몫을 했지만 말이다. 새것도 품고 낡은 것도 품어버린 거실은 이미 3인용 소파 2개로 제 역할을 다 해버렸다. 남편과 나는 3인용 소파 하나씩을 꽤 차고 있는 셈이다. 참 넓고 좋긴 하지만 사랑하는 암체어를 둘 곳이 없다. 자연적으로 방 한구석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사랑스러운 암체어는 이제 아무도 앉지 않는다. 아무도 봐 주지 않는다. 바라봐 주고 앉아야 하는 것이 암체어의 쓸모인데 그 쓰임을 다했다. 지금은 쓰임을 다 했지만 절대 버릴 수 없는 물건이다.


암체어는 가구로서의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우리 집 거실의 변화된 필요와 욕구에 의해 제대로 된 쓰임을 못하고 있다. 쓸모와 쓰임의 차이에 대해 되새겨보았다. 본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쓸모를 결정짓는다 하더라도 쓰임의 여부와는 다르다. 쓰임은 변화된 환경과 흐름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쓸모와 쓰임이 늘 함께 공존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쓰임의 기회가 언제, 어떤 계기로 올지 모르지만 쓸모를 만들고 키워나가야 함을 느낀다. 쓰임을 다하고 방 한구석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내는 나의 암체어처럼 쓰임을 다했을 때 아름다운 마무리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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