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으로 백숙을 먹고 있었다.
아버님과 어머님 사이에 앉아 있는 산이. 산이를 보는 눈에서는 이 세상 어떤 꿀보다도 더 달콤한 꿀이 뚝뚝 떨어지고 계셨다.
아버님이 말했다.
“자, 산아. 닭고기 소금에 찍어줄게. 한번 먹어봐. 자. 아”
산이는 입을 벌리며,
“소금은 바다에서 나와요.” 하며 우걱우걱 씹었다.
“어이구! 우리 산이가 그런 것도 아네.”
마음속에서 울리는 나의 뿌듯함을 뒤로한 채 내가 답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령 본인에 대한 칭찬만큼(받을 일도 현저히 줄었지만) 자식에 대한 칭찬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엄마의 방정맞은 입술은 또 가만히 있지 못하고 그들의 손주 사랑에 배를 더하고 싶어 입을 뗐다.
"며칠 전에 영종역사관에 갔었거든요. 영종도가 조선시대부터 염전으로 유명해서 소금을 어떻게 채취하는지 모형으로 보여주더라고요. 산이랑 매년 한 두 번씩 갔던 곳인데 무엇이 있는지는 이제야 눈에 들어오나 봐요."
사실 산이가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다. 영종역사관을 3살 때부터 1년에 한두 번씩 왔어도 아이는 이제야 눈을 떴다. 어쩌면 아이는 그동안 눈에 하나하나 담아 두었고, 내가 그 장면을 크게 받아들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산이는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위치한 어린이 체험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자체적으로 만든 두꺼운 체험활동북을 비치해 두어서 아이들이 색칠도 하고, 퍼즐조각도 맞추고, 책도 있는 곳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고철로 된 판에 종이를 올려놓고 색칠하면 아래 있는 그림이 나타나는 것을 산이는 좋아했다. 산이의 약간의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에 그림이 다 안 나온다며 짜증을 내는데 받아주기가 참 어려워 “너 자꾸 그렇게 짜증내면 집에 간다!”라고 엄포하고 울고 또 한바탕을 잠깐 했다.
충분히 손으로 사부작 놀이를 하고, 1층, 2층을 둘러보았다. 1층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UX적인 체험. 2층은 6세에게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영종도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 그 자체였다. 특히 염전의 역사를 모형으로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산아! 옛날에 영종도에서 소금을 만들었었나 봐. 너무 신기하다 그렇지?”
“엄마. 저게 어떻게 소금이 돼?”
“영종도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잖아. 바닷물은 무슨 맛이야?
“짜.”
“맞아. 짜지? 그 바닷물을 말려서 소금만 남기는 거지. 옛날엔 소금이 정말 비쌌어.”
아들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도 영종도가 염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연남동까지 진출한 ‘자연도 소금빵’ 가게의 유래도 이해하게 되었다.
(영종도(永宗島)의 본래 이름은 제비가 많은 섬이라 하여 자연도(자색 자 紫 제비 연 燕 섬 도島), 조선 초기에 변경)
2층에서는 겨우 5분 남짓 있었나. 배고프다는 아이의 원성에 못 이겨 간식을 먹으러 갔다. 산이는 이미 여러 번 와본 이곳 근처에 소금빵을 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오면서 박물관 입구 근처에 커다란 빗살무늬 토기가 있는 것을 보고 산이가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 했다. 그 가녀린 팔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산이가 좋아하는 ‘자연도소금빵’ 집은 박물관에서 5분 떨어진 곳에 있다. 4개에 12000원인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2개를 우걱우걱 맛있게 먹는 산이였기에 아깝지가 않았다. 산이는 남은 두 개 소금빵은 아빠랑 동생을 줄 거라며 우린 집으로 향했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산이가 최대한 박물관을 싫어하지 않게끔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은 재밌는 곳, 엄마랑 데이트하며 맛있는 간식도 먹을 수 있는 곳, 뛰어놀 수 있는 곳.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기억하게 만들려면 예의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아이 수준의 적절한 짜증은 잘 타이르며 받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다음에 또 간다고 해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할 수 있으니깐.
그동안 나는 박물관을 데려간 사실 만으로 얼마나 만족해 있었는가. 사전 조사는 미리 해봤는지,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녀들에게 눈에 띄는 모든 것들에 관해서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내가 먼저 영종도 역사(역사적인 인물, 시대, 사건 등)를 잘 알아야 재미있고 생동감 있게 말해 줄 수 있는 것도. 그동안 매우 무지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원동력으로 성인이 돼서도 살아간다. 나의 경우 9살 때 처음 시작했던 발레가 작품 활동의 4-500만 원이 든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부모님으로 인해 2년 남짓 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발레에 대한 애정은 남아 있었고, 공연을 보거나 취미운동으로써 발레를 선택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어릴 적 경험이 추후 문화자본이 된 것이다.
오늘 박물관에서의 짧은 경험이 아이의 삶에 어떻게 각인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생각과 사유에 대한 선택지를 넗혀주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역사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나의 신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해박한 지식은 주로 구전으로 전해짐을 믿는다. 물론 책으로써 기억하는 사실도 있겠지만, 그 시절을 직접 겪은 이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생동감은 영화의 인상 깊은 한 장면과 같다.
아이에게 우리는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할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아이들은 우리로부터 어떤 것을 영향을 받을까? 내 유전자는 특별하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서 양육환경은 후천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인 나 스스로 역사를 읽고 쓰고, 이를 생활화해야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의식이 인생 지표가 되지 않을까?
지금은 나의 역사에 관한 스토리텔링 실력이 저조하듯 아이 역시도 박물관보다 소금빵을 먼저 찾겠지만, 내 궁극적인 육아 목표는 결국엔 소금빵보다 기억에 남는 박물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