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아들은 한국사를 이미 정복하고 세계사 과외를 받고 있다는데..
박물관만 그저 열심히 데리고 다녔을 뿐인데 9살이 벌써 한국사를 다 정복했다면? 더 이상 부모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역사 선생님을 과외로 붙여주고 있다면? 이미 6살에 두꺼운 역사책을 읽어서 한글 독해력이 이미 월등하다면? 아직 영어를 안 시켜도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영어로 완벽하게 발음할 줄 안다면?
당신은 이래도 아이와 박물관을 안 가시겠습니까?
오늘은 내가 아이와 박물관에 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한 ‘언니’와의 만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소위 ‘박물관을 다니면 좋다’라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5년 차 육아에 접어드니 일상의 타성에 젖어 애기들을 이끌고 가는 것이 귀찮아져 있었다.
그리고 애들보다 내가 더 많이 알고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지식의 압박감이 있었다. 결국 나의 다소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은 아예 어려워 시작조차 못하겠다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날 알에서 깨준 언니가 있다. 그동안 9살 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녀의 인스타 스토리를 염탐하곤 했다. 언제 간 언니는 가족과 대만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 눈에 담긴 사진은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아들과 함께 도슨트를 듣는 장면이었다.
충격이었다.
뭐라고? 여길 9살이 이해한다고?
국립고궁박물원은 전 세계 3번째로 큰 박물관으로 내 기억 속에 그곳은 아주 광활하고 넓었다. 1948년 국민당 지도자였던 장제스 총통은 국공내전 패배로 대만으로 정부를 옮겼다. 그러면서 중국으로부터 약 60만 점의 유물을 가져왔다. (공산당 싫어하는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었음)
전시해설을 듣는다는 것은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말로 이해한다는 것일 텐데, 난 동아시아권 특히 대만과 중국 사이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해서 해설사의 농담에만 헤헤거리며 웃기만 했었다.
9살짜리 꼬마가 같이 듣는 게 신기해서. 무려 10년 만에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의 근황이 궁금해서 만나고 싶다고.
아침 일찍 아이들을 보내고 영종도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부랴부랴 안국역에 도착했다. 나는 요즘 빠져있는 핑크색 셔츠와 슬리브리스를 입고 파마머리를 풀었다. 반면 언니는 블랙 점프슈트를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로우번을 하고, 실버 물방울 링과 목걸이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날 비가 와서 언니는 스트링으로 된 샌들을 신었는데 적당한 캐주얼함을 주는 모습이었다. 나는 단정한 언니의 모습에 감탄하며, 속으로 ‘다음번에 나도 저런 스타일 한번 시도해 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북촌에 있는 “가회동백인제가옥”에서 만났다. 그날은 비가 왔고, 언니의 취향과 안목을 따라가고 싶어서 장소도 맛집도 언니에게 부탁했다.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평일 오전. 푸르른 여름의 기운과 청량함이 가득한 고급 정원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북촌의 한옥에서 관람해설을 듣기 전에 언니와 대마루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 오늘 온 게 정말 행운 같아요.”
“그러게요. 마침 비도 오고 운치도 있어서 너무 좋다.”
나는 어서 본심이 드러난 질문을 했다.
“언니. 어떻게 아이가 역사를 좋아하게 만들었어요?”
“나는 내가 역사를 좋아했어요. 아이를 낳고 지방에서 한 5년 살았나..? 서울로 남편이 다시 발령이 나서 그동안의 한을 풀다시피 아이를 데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박물관, 미술관에 데리고 다녔어요.”
언니는 서울이 고향이었다.
“그런데 5살, 6살에 박물관을 다닌다고 해서 무얼 알까요?”
“어휴. 처음엔 당연히 모르죠. 그냥 박물관 가면 잠깐 둘러보고, 어린이 박물관 프로그램 있으면 체험도 하다가. 지루해할 때쯤.. 승원아.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줄까? 하면서 박물관에 안에 있는 카페도 가고. 그렇게 가는 걸 좋아하게 만든 거 같아요.”
11시가 되었다. 백인제가옥 관람해설서비스를 듣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영화 <암살>에서 이정재가 숨어있던 친일파의 호화저택으로 나오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 가옥은 세 사람의 소유를 거쳤다. 1913년에 처음 이 가옥을 지은자는 한상룡(당시 한성은행 경성지점장)이었으나 고위 금융인이었을 뿐 친일행적은 없었다. 그 후 최선익(1928-1935년에 소유)은 그 유명한 친일파 이완용의 사위였기에 친일 성향이 가득한 상류층 저택으로 리모델링을 했을터. 마지막 소유자는 백인제. 의사이자 서울 백병원 설립자이다.
마룻바닥은 일본에서 잘 쓰는 장마루와 우리나라 전통의 우물마루가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 건축의 발전이 있었다고 했다. 그 주변 정원과 돌계단이 박찬욱의 <아가씨> 영화에서 보던 부유층의 자연이었다. 뼈아픈 역사 속에서 부유층이 이렇게 산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양가적인 감정이 들 것 같다. 이런 멋들어진 가옥을 보니 일제강점기와 개화기 당시의 건축의 발전 양상이 더욱 궁금해졌다.
해설사 분은 비 오는 날 우리 둘 뿐이라며, 곳곳에서 인생샷을 남기게 해 주셨다. (원래는 좀 어려움)
즐겁게 둘러보고 우리는 ‘소금집’에 도착했다. 맨날 컬리로만 먹던 신선한 잠봉뵈르를 맛있게 먹었다.
“언니는 육아의 원칙 이런 게 있어요?”
“나는 그냥 우리 아이가 좋아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편인 거 같아요. 9살에 주변에서는 다들 왜 영어, 수학학원 안 보내냐고 아우성인데 우리 아이는 아직 관심이 없는듯해서..”
“어? 그럼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태권도랑.. 굳이 하는 게 있으면 역사 과외?”
“역사과외요?”
“5살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서울에 있는 박물관은 다 돌아다녔어요. 뭐 수십 번 간 곳도 있을 거야. 그러다가 한국사는 거진 다 뗐나? 더 이상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방과 후 선생님을 알아보다가 아예 세계사를 알려줄 수 있는 과외를 찾아서 붙여줬어요. 애가 너무 좋아해.
“대단하네요. 정말. 그럼 언니는 영어나 다른 건 안 불안해요?”
“글쎄.. 세계사의 인물들 장소들이 다 영어여서 그런지 자연스레 읽으면서 파닉스를 떼고 있는가 싶더라고요. 자연스레 역사에 관한 원서책을 읽고 싶어 지게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그럼 그때 가서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지 않을까?”
“그럼 언니는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기 전까지는 기다려주는 건가요?”
“내가 지금 당장 이게 필요하다고 해도 아이가 관심이 없으면 지속하기 어려우니깐.”
“언니의 교육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둘 다 육아맘이라 1시에 땡 하면서 헤어졌다.
책 <아비투스>에 따르면 가장 갖기 어려운 자본이 문화자본이라고 한다. 일상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소비재에 투자하는 것은 쉽지만 매너와 예술적 감각, 시야를 넓혀주는 역사의식은 부유층이 갖는 우월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부유층은 아니나 아이들에게 그러한 문화자본을 갖게 하고 싶다. 분명 하루아침에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니의 아이가 유아기 3년을 꼬박 문화자본을 쌓는 데에 투자하고, 그 위에 교육관을 얹으니 더없이 멋있어 보인다.
박물관 방문은 아이에게 단지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지적 호기심을 키우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다.
당장 '영어단어 외워. 수학 문제 풀어.’가 아닌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고 스스로 알고 싶게 만드는 그 의지와 열정을 심어주는 것. 내가 바라는 교육관이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