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기계가 되라고 자극적으로 용쓰는 세상

show me the money _ 2

by youtoo

“저희 커플은 기념일도 소박하게 지내요.”

“돈 많이 못벌어도 우린 행복해요.”

“딸내미한테 잘해 주고 싶은데, 내가 못나서 미안할 따름이죠.”

“아픈 노모, 병원비가 없어 병원도 못 보내드리고, 자식으로서 불합격이죠.”

안다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으랴만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30여년을 살다보니, 이제는 인정해야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

물론 끝없는 게 사람 욕심이니 그 또한 완벽하다 말할 수 없지만 항상 많은 부분에서 귀결점은 ‘돈’이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위해 돈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라고, 그렇지 않고 천박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돈’만을 좇다 보면 결국 불행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늘 배워왔다.


그렇지만 학교나 윗어른들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현대 사회는 점점 오로지 ‘돈’만 있으면 모든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세상처럼 그려지고 있다.

자극 경쟁

하루 24시간 중 깨어있는 시간이 평균 15시간 정도라 가정할 때, 그 안에 사람들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컨텐츠에 노출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업무, 공부, 혹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사색 시간 등을 제외하면 현대인들은 아마도 깨어있는 시간의 모든 공백을 컨텐츠로 메우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게임, 인터넷, 영화, 드라마, 뉴스, 스포츠 중계...


컨텐츠의 제작자들의 목표는 당연히 자기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요, [ 여가 ]의 하나로서 습관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방식에 의해 세뇌 당해버리기 이른다.

모든 경제원리가 수요와 공급이라는 과정에서 발생하듯, 컨텐츠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다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자연히 자신들의 인지도(수익)를 올리기 위해 경쟁하고, 그 가운데 다소 비겁한, 해서는 안될 법한 자극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상위권을 선점 하려한다.


2등 3등조차 기억해주지 않는, 그 어느 때보다 자극적으로 변해버린 이 나라에서 컨텐츠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이미 선점한 소수자들 이외에 후발주자들이 ‘정당한 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란 그리 흔치 않은게 사실이니.


그렇게 스리슬쩍, 자극의 덩어리로 만들어진 컨텐츠의 소재와 전달 방식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이를 소비하고 있는 이들을 세뇌해 간다.


세뇌는 생각보다 무섭다.

사람들의 일상으로 자연스레 파고들어 오랜시간 노출되는 만큼 그들의 사상과 가치관 마저도 변화를 줄 수 있을 컨텐츠들.


이래서 컨텐츠의 검열이 더욱 더 강하게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 인지 모르겠지만, 노출된 자극의 정도가 세어지면 세어질수록 ‘통제’를 하려는 움직임조차도 우습게 여기는 자극 경시 현상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자극은 더 센 자극을 양산할테니, 결국 끝은 보이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이미 백신없는 자극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있는 셈이다.

인터넷이라는 1년 365일 내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매체가 발명되어 그 안에 담기는 무수한 컨텐츠가 개발, 노출 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확실히 이 전과 달라졌다.


장단점을 수반한 변화이기에 전과 후 어느 쪽의 편을 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서로의 경쟁이 만들어 낸 [자극]이 결국 [돈]이라는 가치를 점점 극상시키기에 이르렀다는 명백한 사실.

[돈을 밝히는 자]와 [돈을 밝히지 않는 자] 를 양분해서 생각한다면 당연히 돈 밝히는 자가 속물이며 악한으로 취급받겠지만, 아쉽게도 이 사회에서 두 부류는 그렇게 편하게 양분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인간적으로 누려야만 하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 돈이 필요하다 ]라고 밝히는 것을 과연 속물 근성으로 보아야 할까.

결국 자신이 능력껏 가지게 된 돈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며, 경제적으로 자신보다 나은 이들을 바라볼 때 부러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능이다.


부러움을 억누르며 ‘나는 행복하다’ 며 자기최면을 걸기는 하지만, 조금 솔직해지자.

‘나만의 행복을 찾으라’ 고?

주변에 아무도 없어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나 혼자 살아갈 수는 없는 세상 아닌가.


이 역시 인간의 본능인 지 까지는 알 수 없지만, SNS라는 자기홍보 매체가 생겨난 후 사람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너도나도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다.


어디 갔다 / 뭐 먹었다 / 뭐 샀다 / 내 애인이다 / 나 예쁘지? ... 가 남발되는 SNS.


물론 그것을 작성 할 때에는 순수한 마음에 그저 순간을 남겨두고픈 ‘기록’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치 일기처럼, 시간이 지난 후에 자신의 과거 기록을 확인해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주변인들이 자신을 보아주었으면, 알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에서 올리게 되는 게시물들.


사람들은 이런 지인의 게시물들을 보고 예의상 [좋아요]라는 뉘앙스의 버튼을 눌러준다.

솔직한 용어를 좀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


[좋겠다] 나 [좋덴다], [작작해라] 정도?


뭐가 그렇게 꼬였냐, 좋은 건 그저 좋게 보아주면 안되는 것인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모든 인간은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상대평가 하기 마련이라는 개념을 이야기 하고싶다.

우정

학창시절에 친했던 두 친구가 있다고 하자.


이제 사회인이 되어서 한쪽은 밤 낮 잔업에 어렵게 생활비 벌어 겨우겨우 먹고 사는 친구가, 원래부터 잘 살아 놀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여행다니며 외제 차 끌고 이성들하고 놀러다니는 다른 한 친구를 어떻게 볼까.

둘 다 누구한테 피해주지 않는 자기 인생을 사는 모습이지만, 두 사람의 시각 차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왜? 상대적이니까.


환경을 결정짓는 ‘경제적인’ 부분의 차는 결국 두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갈라놓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부러움의 감정은 자책으로 이어지고, 자책은 결국 스트레스를 유발할테니,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그 친구와는 서서히 멀어지게 될 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경제수준의 친구들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고, 외부에서는 경제적으로 차이가 있는 이 친구들 사이를 잔인하게도 서열을 매겨 바라볼 가능성이 짙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지금 자리에 없는, 조금 잘나간다고 하는 다른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좋게만 거론되지 않기 마련이다.


친구들과의 가벼운 만남자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이 무언가를 하며 노는 데에 있어서도 당연히 돈이 들게 마련일텐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친구의 사정에 맞추어 만남 장소나 내용을 결정하게 되다보면, 결국 어느 한 쪽의 양보나 배려가 있어야만 무리없이 만남이 진행될 수 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이더라도 최소한의 배려와 양보는 필수이거늘.

문제는 형평성이다.

사람은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에게 무한정 배려만을 베풀수 없기에, 기분에 따라 자신만 뭔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관계는 어그러지기 십상이다.


연인, 친구, 부모...누가 되었건 [타인]을 대할 때에 이러한 세심한 배려를 가져야만 한다.

모든 관점을 기브 엔 테이크로 보면

안된다 말하지만 그 매체가 꼭 돈이 아니더라도 관계를 맺음에 그런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그렇지만 결국 또 대부분 큰 문제의 원인으로 ‘돈’이 거론되곤 한다.

연애

누군가

[ 저는 외모나 조건 같은 건 보지 않고 사람 됨됨이를 보는 편이에요 ] 라고 말한다면

얼마 전까지는 꽤나 괜찮은 사람처럼 인정받았었다.


근데 지금은 그 [판에 박힌 멘트]를 이용해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속물 취급을 받기 일쑤.


왜? 솔직히 사회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돈과 외모 없이 어떻게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지...


그것이 그 사람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해줄 수도 있는 부분인 것을...


대상이 자신과 사귀게 될, 혹은 동반자가 될지도 모를 [연인]이라면 그것은 더욱 극명해진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밝히면 빼도 박도 못하는 속물 취급당하고 말테니, 지금의 사회에 적용한 정답은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얼버무리는 거'다.


먼저 외모에 대한 생각으로

현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시대이다.


방송가, 연예계 등에서 의도를 했건 하지 않았건 외모지상주의는 그 어느 것보다도 세뇌가 잘된 케이스라 하겠다.


특히 ‘여자의 외모는 경쟁력이다’란 말은 이제 기정사실화 되어, 그들 스스로도 그 가치를 알고 있는 듯하다.

천박한 비유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들은 어디에서도 인정을 받을 기회가 늘어나곤 한다.


사회적인 자기 커리어와 함께 자기관리가 필수인 시대. 그러니, 뷰티산업이니, 성형산업이 성행 할 수밖에 없다.


화장품, 헤어, 피부, 맛사지, 패션, 악세서리... 예뻐지기 위해서 절대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관련 산업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필자가 성장하던 시절보다 놀란 것은 요즘은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부터 그런 자극이 뼛속까지 세뇌된 친구들이 성인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쭉 끌어올린 여자들은 대부분 '자기애'나 '자존감'이 올라가 있기 마련이니, 주로 남자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얻곤 한다.


남자는 남자대로 그 가치가 올라가있는 여성들을 차지하기 위해 과시를 시작한다.


자신이 가진 경제력과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스케일에 대해.

대부분의 연애는 남자의 구애와 여자의 간택으로 시작되곤 하지만, 그 과정 역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남성으로선 선택받기 불리한 고지에 놓이게 됨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정글과도 같은 필드 속,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선, <정성><마음>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무언가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승자로 남긴 어려우니까.


경제적 여건이 그렇지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부터 만나와 커플이 된 케이스가 가장 이상적이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결국 시작되는 연애의 패턴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우여곡절 끝에 연애가 시작되었다.


연애란 건 결국 ‘놀이’다.

이성 만나러 데이트 나가서 자기 계발한답시고 돈 아끼며 같이 한 장소에서만 미래 설계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던가.

한 광고에서 드러난 현대인들의 연애패턴을 한번 살펴보자.


*실제로 극장에서 보여 졌던 한 카드회사의 광고*


화면에는 멋지게 잘 생긴 '공유'와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면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한 젊은 여성이 보인다.


“오빠, 우리 오늘 뭐 할까요? 영화 볼까요? 어디 무슨 영화가 재미있다던데, 영화보고나선 맛있는 거 먹을래요? 어디어디가 맛있데요. 그리곤 어디 가서 분위기 있게 와인한잔 어때요? 그럼 내일은 뮤지컬 봐요. 다음 달에 유럽여행은 어때요...”


광고는 호기심에 뭔가를 자꾸 하자고 제안하는, 아무 걱정 없어 뵈는 어린아이같은 여자 친구를 위해 가만히 뒤에서 미소 지으며 긍정해주는, 무려 외모가 ‘공유’인 어떤 남자가 항상 이 여자와 같이 있어 준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시 정신 차리고 보니,

이건 돈 쓰라는 카드 광고.


남녀의 잘생기고 예쁜 외모에 현혹되다보니 이게 카드광고인지, 일반 연애의 단편인지 조차 헷갈리게 만드려는 광고사의 계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비슷하지 않은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그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이 즐길 수 있는 것 모두 무언가를 할 때의 대가, 즉 돈 없으면 간소한 수준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우린 우리 식의 분수에 맞는 연애를 할거야'


...라고 합의가 이루어진 커플이야 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같은 노선 연합군 끼리의 만남...


그렇지만 SNS에서는 이런 소박한 연애를 행하려는 연인들을 단속이라도 하듯, 돈 잘 쓰는 주변인들의 패턴을 가이드로 제시하곤 한다.


그리고 대부분 동성친구들과의 수다나 의미없는 자랑에 의해 '우리들만의 소박한 연애'는 까발려지고 비교되어지고 만다.


'걔네들은 연애할 때 이런데...'


사랑하는 애인에게 서로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남들처럼 받고싶은데 미안해서 말 안하고],

[남들처럼 해주고 싶은데 능력이 안되어 못해주고]

돈없는 커플의 비교연애는 이렇듯 스트레스를 키우기 마련이다.

가치있는 남녀 되기도 힘들고, 연애하기도 힘든데, 긴 연애 마치고, 나이도 들어찼으니 이제 결혼을 해볼까.


결혼. 여기까지 가면 정말 장난 아니다.


혹자는 부부가 되는 결혼을 [ 부[富]와 부[富]의 결합 ]이라고 표현할 만큼 현실적인 부분에 못을 박기도 했었는데,

그만큼 한 가정을 이루는 일에는 큰 경제적인 제약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부모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완전한 동거, 슬기로운 수입관리를 통한 미래계획...


이제부턴 온전하게 두 사람의 몫이다.


솔직히 집값이네 뭐네 어마어마한 불황 속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집 마련할 수 있는 커플이 얼마나 있을 지 부터가 의문이지만.


더 큰 문제는 결혼 이전부터 감염 되어있던 자극 바이러스이다.


결혼이 늦어지는 만큼, 즈음이 되면 거의 동등하게 경제력을 지니게 되는 현대의 남녀들.


남녀 할 것 없이 어떤 방면이건 자기가 번 돈을 온전히 자신에게 쓰고 갖은 즐거움을 찾아 다니던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 사람이라면,


큰 배려와 양보를 요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한 순간에 받아들이기 버거울 수 있다.


습관이란 건 원래 작정하지 않으면 한번에 바꾸기 어렵기 마련이니...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남자와 여자.


결혼이란 건 서로 믿고 아끼는 감정 이전에, 완전히 다른 두 사람간의 '동거'라는 점을 숙지해야만 발생할 트러블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러블이 생기는 커플들의 일례는 아마도 혼자 있을 때 누리던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릴수 없게 되었다는 부당함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있다.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정립되니, 책임져야 할 의무들이 생겨나게 마련인데,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은연 중에 솔로일 때에 누려왔던 권리만을 연장하겠다는 욕심은 아닌 지.


결혼이야 말로 [돈] 의 이동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하객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남자 뭐한데? 여자 뭐한데?

신혼집은 어디서 시작한데? 하객들 몇 명 왔데?

예식장은 어디래? 신혼 여행 어디로 간데? 며칠 갔다온데?


흔하디 흔한 결혼 관련 질문들 아닌가?


그런데 마치 [매직아이]처럼, 저 질문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모든 질문에 [돈]이 눈앞에 떠오른다.

왜 부부(夫婦)를 부(富)와 부(富)의 결합이라 칭하는 지 짐작이 간다.

결혼을 했으니 언젠간 아이가 생기겠지?


[아이와 함께한 단란한 가족사진 한 컷]


그 사진 한장을 남기는 데까지 얼마나 힘이 들까.


아무 것도 아니었던 한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나 남편이 되고 아이를 낳으니 아빠가 된다.


그리고 '남편'과 '아빠'라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명찰을 달자, 가볍기만 했던 걸음걸이는 한없는 중량에 한발짝 두발짝 겨우 내딛을 정도가 된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는 결국 필요한 것을 제 때에 공수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에


상냥함과 자상함이라는 포장지까지도 씌워져야 그제야 인정받을 가장으로서의 최소 조건이 갖추어 지는 모양이다.


가족이라는 공장의 운영을 시작했으니 가장은 돈버는 기계로서 끊임없이 생산물을 내어 놓지 않으면 라인에 차질이 생기게 마련...


필자 역시도 그렇게 자라왔듯, 자신들의 아이를 한명의 인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내기 위해, 부모는 합심하여 전력을 다한다.


그것도 '남'보다 '더 나은' 아이로 성장시키기 위해 교육비를 포함, 어마어마한 희생이 요구된다.


아직 실체를 마주하지 못했어도 예상이 되는 그 고생문으로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어찌보면 그만큼 심해진 경쟁 속에 참가할 준비가 되어 있지않은 이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너도 부모로부터 그렇게 크지 않았느냐, 왜 받기만 할 생각인거냐?'


이렇게 이기적인 고집 문제로만 봐야할까?


물가나 사회적 분위기도 그러했지만, 과거는 이렇게까지 남의 얘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지 못해 비교대상이 많지 않으니


'내가 행하는 것이 정답'이라 말 할 수 있었다.


이제와 자기 부모의 교육방식이나 자라온 환경들을 원망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 때는 그것이 정답인 줄 알고 커온 세대들.


그러나 문두에 밝혔듯 네트워크가 통용되어 무수한 정보가 넘치는 지금 세상에선 정답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저렇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거야?'

'저렇게 못하면 욕먹는 거야?'


전보다 더 극렬하게 이곳저곳에서 교육을 받게 될 아이들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가며 자신의 처지를 비교한다.

당연히 자신의 부모들을 저울질 할 테고 자극이 깃든 컨텐츠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접해왔을 어린 친구들은 언행 역시 자극적으로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책임감과 능력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일수록 걱정이 많고 모든 일에 조심스러울 수 있다.


'좋은 가족,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책임감있는 가장'


...을 꿈꾸면 꿈꿀수록 현실은 어렵다.


결혼을 겁내고 새 가정의 출발을 망설이는 젊은이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욕심쟁이라기보다


내 욕심만으로 가정을 꾸렸다가 사랑하는 이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진 이들이 훨씬 많다고 믿고싶다.

육아예능, 부부예능, 여행예능...

무수하게도 만들어져오는 관찰형태의 방송들은 환타지를 넘어서서 현대인들의 이 불안감을 훨씬 중폭시켰다고 본다.


어마어마한 집에서, 생각하면 어디든 갈 수있고 뭐든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고...


생계에 가장 중요한 [돈] 걱정 없이, 그저 자상하고 배려감 넘치는 모습으로 내 사람을 챙기는 [포장] 만을 보여주는 방송 예능들.


사람들은 호기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늘 하고싶었고 살고 싶었던 현실 환타지를 리얼로 공개 하는 셈이니.


이 시대에 정말 조준이 명확한 [자극] 화살인 셈이다.


어느 순간부터 불기 시작했던 이 방송 포멧의 열기는 점점 변형 발전되어 이제는 거의 자극의 정점을 찍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점점 세뇌되어가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것과 비교한 자신의 비루한 일상이 미워지며 덧없는 환타지를 꿈꾸고 심하게는 자괴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아이도 낳고 훌륭한 가정 이루느라 힘들지만, 윗어른 공경하는 마음도 잊어서는 안되겠지.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그것을 갚아드릴 수 있는 방법이란 어떤 게 있을까?


[정성이 담긴 편지 한통?]

[마음을 전달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면 이런 생각은 접는 편이 좋을 듯하다. 부모님들의 혀차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연로하신 할머님을 위한 바디프렌드 안마의자, 불편하게 요리하시던 어머님을 위한 얼음물 나오는 정수기가 달린 냉장고 및 주방 세트. 늘 자식들 잘되라 본인을 희생하셨던 아버지를 위해 야구실황 중계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와일드 벽걸이 티브이, 고생하신 장인장모를 위한 일본 온천여행 비, 칠순을 맞이한 부모님께 근사한 호텔뷔페 외식...


현대사회에서 마음을 전하는 효도 방법 역시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돈’의 형태 이다.


돈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며 모두들 원하지만, 그 실체를 드러내면 천박한 것으로 취급받는 이상한

현상.


받는 쪽 역시 이것은 돈이 아닌, 마음을 받은 것이며, 마음을 돈으로서 드리지만 돈이 마음으로만 받아들여지는 희안한 장면을 목격한다.


드러나면 천박하니 돈은 실체를 보이지 않은 채, 살포시 이체되거나 실물로 대체되어진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마음의 선물.


그것 역시 경제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자신이 인간구실을 하게 된 데까지 수고해주신 부모님께 '나 이제 어른 인간 됐습니다'를 증명하는 방법은 명료하다.



돈, 자극, 힘든 인생 살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어 언급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이지만,


과연 이렇게 더더욱 각박하게 변화해 가는 환경이 옳은 방향인가 한번쯤은 되짚어 보고팠다.

삶이라는 데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사는 나라 사람들은 이런 한국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또한 돈많은 선진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걸까.

스스로 헬조선 헬조선 외치면서도 국적자이기에 끝까지 버텨내야만 하는 운명.

비판이라기보단 푸념에 가까운 분노의 옹알이를 힘껏 읊조려 본다.


결국 다시 외칠 수밖에 없는...

에효... 돈 많이 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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