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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Feb 06. 2018

우연히, 그곳에서...<94화>

[ 제94화 _ 걷잡을 수 없는 폭주의 끝 ]


"당신 말야, 내가 뭘했든, 이거 좀 심한 거 아냐?! 아닌 말로 내가 친구 좀 깎아내리기로 서니,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 이렇게 협박질이야?!"

기태는 계속되는 상대 여성의 강공에 기어이 분노가 폭발하기라도 한듯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여전히 별다른 변화 없이, 당당하게 대응 하는 여성.

"말하는 거 보니 찔러놓고 아니면 말고... 같은 식으로 넘어갈 모양이었나 봅니다? 당신의 그 발언 때문에 출판사에서 받은 경제적 타격 및 임세현씨가 감내해야만 하는 정신적 타격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자신이 가장 동경하고, 평생의 목적이라고 까지 말해오던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에 본의 아니게 타격을 주게 된 부분.

사실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사건을 저질렀던 자신 역시도 눈 감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미디어가 만들어 낸 후폭풍은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했기에.

그렇지만 사건의 진위여부에만 포커스가 맞추어졌음인지, 그 폭풍의 시작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부분은 이미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불을 질러놓고, 불구경하는 군중 속으로 들어가 누가 불 질렀냐고 같이 수근 대는 모양새.


기태는 오로지 빨리 이 사건이 잦아들어, 바라던 대로 세현의 수상에 이상이 있었음이 발견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걸...무...무슨 근거로 제가 제보를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내가 했다고 누가 그래요?!"

분한 마음에 '그래! 내가 범인이오'라고, 거의 밝히는 듯한 이야기를 본인 먼저 쏟아놓고도 발뺌을 시작한 기태.

"저희 쪽에서 어떻게 알았는지는 한기태씨가 알아야 할 문제가 아니고요, 문제는 본인이 먼저 밝히는 편이 가장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란 겁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점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쏘아 붙이는 겁니까?! 당신... 진짜 누구냐고...!!"

분함에 울분까지 섞여 들어간 듯한 기태의 외침.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한기태씨가 제보했던 부분이 절대 사실이 아니며...! 그저 질투에 눈이 먼 한 순간의 열폭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는...!"

"뭐, 뭐요? 열폭??!!"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허위사실 유포 죄로 출판사측에서는 한기태씨에게 고소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가까운 시일 안으로 다시 연락드릴 테니,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두시죠...!"

출판사에서 고소라고...? 자신에 대한 이런 정보를 알 수 있는 대상이 '소현'이라고만 여겼었건만, 그녀가 소속되어 있는 출판사에서의 고소라면... 

기자들에게 익명을 요구하며 제보를 주었지만, 기사 자체의 힘이 떨어진 지금에 와선, 제보 당시의 기자들 중 누군가에 의해 정체가 탄로났을 수도 있었다. 

기태는 덜컥 겁먹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상대 여성에게 외쳐댔다.

"이거 봐요, 지금 나를 어떻...?!'

[ 뚝! ]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협박전화.
제보 당시에 생각했던 것보다 크게 일이 번져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어도, 제보자로서 정체가 탄로 나게 된다는 건 예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노을 출판사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택했다는 기쁨 따위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알지도 못하는 한 낯선 여성의 전화가 끊긴 후에는 오로지 초조함만이 남겨졌다.

기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걸려왔던 전화번호를 확인해 다시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
 

 

"후아...! 이거 진짜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지지 않기 위해 준비된 팩트와 가진 깡을 모두 소진한 이 여성. 기태의 당돌한 전화 상대는 다름 아닌 아영이었다.

야마다가 준비해 준 각종 자료들과, 소설과 만화에서 자주 쓰인다는 스킬들을 전달받아 이용해 자신의 연기에 묻어냈다.

"잘했어, 아영씨...! 뭐라고 했는 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쳇,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잘하긴 뭘 잘했데...?"
 
"다는 몰라도 딱 느껴지는 그 톤이 있잖아, 내가 말한 대로 연기 잘 했어...!"

‘노을 출판사로부터의 제의’를 미끼로 기태에게 접근했었지만 두 번 이상으로 기태를 속이는 건 어렵겠다고 예상했던 두 사람.

늘어지면 오히려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고 판단해 어느 정도 들어맞는 부분만을 추려, 걸어본 도박이었다.

결과는 성공적. 
겁에 질린 듯한 기태의 목소리만으로도 세현의 복수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듯 했다.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음...겁주고 초조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뭐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히겠지... 조금 텀을 두고 이제 슬슬 목적을 말해야지.”

아영은 조금은 주눅이 든 표정으로 야마다를 쳐다보았다.

“벌써 목적을...?”

"일단 공포심을 심어 준 셈이니, 다음 연락까지는 시간을 좀 끄는 거야...! 안달이 나게끔..."

"시간을...?"

"응, 어차피 시작된 도박이야,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죄책감을 가진 인간이라면 기다리다 못해 협상카드를 들고 나올 거야...!"

스릴러물의 범인을 만들어 가듯, 스토리텔링을 해 나가는 야마다. 

자신의 원수를 잡아준 세현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고자 시작했던 이 시나리오는 이제 정점을 맞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 노을 출판사네 어쩌네 하면서 속였던 건? 거짓이었다고 밝혀야 하나...?”

“그거야, 정보를 알아내기 위함 위장술 같은 거였고, 이제 확실해 졌으니 이쪽에선 더 독하게 밀어붙여야지...! 원래 그러려고 시작했던 거 아니였어? 따로 밝힐 필요는 없지, 그 쪽으로 연락을 다시 안하면 본인이 알아차리겠지.” 

정보 조사부터 연기지도, 진행까지도 코치해주고 있는 야마다는 이미 큰 그림까지도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두 사람은 뭔가 의무감까지 생기기 시작한 이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세부적으로 기획하기 시작했다.





***





“뭐야, 갑자기 해인씨는 뭐 때문에 작업실 나가버린 건데? 무슨 일 있었어? 이런 적 없었잖아...!”

“카와모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해인씨도 나가버린 마당에 우리 넷이서 그냥 가는 거야?”

레스토랑에서 작업실 복귀를 간곡히 부탁하다 해인, 세현, 아저씨의 협공에 창피만 당하고 작업실로 돌아온 카와모토. 
 
당연히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았던 작업실의 다른 화가들은 해인이 작업실과 멀어진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카와모토도 굳이 취해서 해인에게 추태를 부렸던 그 날의 에피소드를 동료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었기에, 동료들이 해인의 부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갤러리에서 말한 최소 인원이 5명인데, 이러다 갤러리하고도 문제생기는 거 아냐? 해인씨 만한 사람이 없는데, 좀 설득해 보지 않고...!“

“설득해봤는데, 안 된다는 걸 어떻게 해!!”

작업실을 개설해 지금까지 이끌어오던 리더로서 어느 정도 카와모토에의 편의를 봐주고 있던 화가들. 

각자 가정이 있고 나름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작업에 열중해야 했었기에 카와모토의 사생활에 대해 따로 문제를 삼은 적은 없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분명 뭔가 수상해 보였는지, 화가들은 카와모토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카와모토...! 너 분명 해인씨한테 뭐 이상한 거 한 거 아냐?”

“내...내가 하긴 뭘 해!! 지금 상황 어려워지니까 바로 나부터 공격하는 거야?!”

“아니, 해인씨는 지금 우리랑도 1년을 가까이 있어왔던 사람이라 우리도 알만큼 알잖아. 이렇게 말도 없이 작업실 관둔다고 얘기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잖아!”

“그...그건...!! 그...해인씨 남자...친구라는 놈...! 그 놈이 옆에서 쏘삭거린 모양...이야!!”

“임세현씨? 저번에...여기 와서 인사하고 그럴 때는 이 작업실에 그다지 나쁜 감정 없어보였는데...”

“아... 아무튼!! 갤러리하고는 내가 좀 얘기해 볼 테니까 쓸데없는 걱정들 말고 작업이나 해!!”

이 이상을 변명으로 일관하다간 말실수라도 하게 될까 우려되어 일단 말을 아끼는 카와모토.

은근슬쩍 해인이 나갔던 이유이기도 한, 자신이 또 다른 창구를 마련해두자며 만들어두었던
홈페이지를 열어보기 위해 사무실 컴퓨터 쪽으로 이동했다.
 
동료 화가들은 카와모토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볼륨으로 속삭였다.  

“근데... 해인 씨가 정말 여기 나가게 된 거면... 메인으로 세웠다는 저 사이트도... 닫아야 하는 거 아냐? 어차피 찬성하지도 않았었지만..."

“그러게... 저거...아마 사이트 때문에 해인씨랑 다퉜던 걸 수도 있어...!”

해인이 빠져 이제 작업실 인원이 4명으로 줄어버린 상황을 알아버린다면, 갤러리에서는 또다시 좋지 않은 조건으로 계약을 요청받게 될 것이 뻔한 상황.

카와모토는 그나마 몰래 준비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한 사이트를 열어 혹시나 그림 구매의사를 보이는 고객들이라도 있는지 체크했다.


“응??!!”

"어? 뭐야!? 뭐야!? 무슨 연락이라도 왔어?!“

 "아, 아니네...아냐, 아무 것도..."

사실 해인에게 제안을 하기 이 전부터 준비해 놓아 사이트는 벌써 올려놓은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공모전의 화제성으로 인해 해인의 일러스트를 찾는 이들이 많을 거란 예상했건만, 사이트 방문객이나  구매 희망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여의치 않은 작업실 상황 속, 혹시나 해서 열어본 사이트 게시판에는 의문의 메시지가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 너머로 다른 화가들의 동태를 살펴보는 카와모토.

아마 새로 온 메시지는 아직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듯 했다.

메시지를 열어 빠르게 복사해 자신의 메일로 옮겨 두고, 흔적이 남지 않게 게시 글을 삭제했다.

자신의 그림자리로 이동해 혼자 핸드폰 인터넷으로 확인해본 메일. 그것은 한 희망 고객으로부터 도착한 장문의 구매의뢰서였다.

카와모토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차근차근 이메일을  읽어갔다.


구매 의향서

- 그들만의 세상 이해인 화백님의 일러스트에 흥미가 있어 검색해 보던 중, 같이 작업 중이시라는 다른 화가님들의 그림도 같이 게시가 되어 있는 본 사이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초에는 이해인 화가의 공모전 출품작 외의 다른 그림을 구경하고 구매도 해 볼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만, 홈페이지에 적힌 내용대로 신인이신지라 아직 다른 완성작들이 많지 않으시네요.

같이 작업하시는 분들 실력도 상당해 보이는데, 특히 크리스라는 분의 그림이 신선하고 눈에 들어와 문의 메일 드립니다. 화가 본인과 직접 연락하고 싶은데 개인 이메일로 연락 드려도 괜찮을 까요? -

글 말미에 자신의 이메일을 남겨두고 구매하려는 작가와 개인적인 면담을 요청한 구매희망자.

카와모토는 즉시 답변을 보냈다.

[사이트 방문 감사드립니다. 흥미 있으시다는 그림의 화가 크리스라고 합니다. 사이트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그룹 리더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구매의향이나 다른 상담하실 부분은 이 연락처로 소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구매 희망자와의 연락을 시작한 카와모토.

의외로 카와모토가 보낸 메시지는 금방 답 메일이 도착했다.

“아... 나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 그리고 걱정들 하지 마... 내가 갤러리하고 잘 얘기 해 볼 테니까...!!”

걱정뿐인 동료 화가들을 달래는 척, 너스레를 떨어대며 작업실 공간을 벗어난 카와모토.

채 작업실을 벗어나지도 않은 계단에서 바로 답 메일을 확인했다.

[ 반갑습니다. 크리스 화백님. 이해인 화백님과 같은 그림 그룹이시고, 현재 계신 곳은 프랑스 아를이라고 하시던데, 그림 실물확인을 위한 다른 방법이 있을 지요. 저는 일본인이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도 일본입니다. 저는 미야비라고 합니다.]

“뭐?! 일본인??”

그저 메일내용을 확인한 것이건만, 타지에서 동포를 만나기라도 한 듯한 기쁨에 미소를 지어보이는 카와모토. 

[ 제가 그림 수집을 하는 사람인데, 크리스 화백님의 그림은 꽤나 잠재력이 보이는 그림 같습니다. 여러 점을 구입하고 싶은데, 실물을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선금은 입금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보통 실물을 보고나서 깊은 고민 끝에 구매가 이어지는 것이 통상적인데, 

웹상에 올려진 작은 이미지를 보고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니 조금 의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바로 선금을 입금하겠다는 말에 그 의심은 사라졌다. 뭔가 확신이 있는 구매자인 모양이었다.

“흥, 미친척하고 가격도 올려쳤는데, 몇 점이나 사겠다 이 말이지? 좋아...!!”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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