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MONEY

by youtoo

이제까지 배워오고 쌓여 와 나의 머릿속에 가득 차 버린 지식들.


이 중 반 이상은 쓸데없는 잡(雜)지식임이 분명하다. 식자우환이라 했던가.


보통은 공부만을 해와 융통성 없이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미는 학자들에게 쓰여 지는, 다시 말하면 그다지 지식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쓸 수 없는 표현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를 거쳐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철없는’ 어린 시절을 지나 현실의 ‘성숙한’어른이라면 모두 이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질병에 빠져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를 통해, 발달되어온 학문을 통해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가게끔 하는 지식을 습득시켜준 윗세대들에게는 물론 감사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의 현재를 당연하게 보낼 수 있는 것 역시 그들의 덕임을,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여유조차도 그 모든 것들을 행하고 난 이후에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의 사치임을 인정한다.


언어, 각종 분야의 지식, 예술적인 감성, 기술... 우리는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익힌다. 그리고 그 식자우환이란 질병의 근간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이론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그러하다. 순서가 어떻게 되었건 한 부분을 좋아해서 찾아보다 보면 전체가 보이기 시작하고 전체를 알기 시작하면 부분을 더 많이 파게 되는 법. 그러면서 소위 매니아 적인 취미를 갖거나 그것이 자신의 업(業)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그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론은 어떠한 방향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질병의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혹은 장점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지식습득’의 과정이란 그것을 위해 당연히 자신의 즐길 시간과 돈을 양보해야만 하는 ‘인내’라는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얻게 된 결과물.

그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어떤 ‘자격증’이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형성되어졌다. 물리적인 의미의 ‘자격증’도 물론 존재하지만, 남보다 더한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물이라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어떤 감정적인 부분을 포함한 형태가 필요했다.


즐거움을 포기하고 그간 행했던 고생의 ‘대가’를 바라는 당연한 심리는, 부정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절대권력 “돈”과 결부되기에 이르렀다.


자격증들을 손에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더 많은 경제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그것이 ‘가능’한 어떤 집단에 소속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 단체 안에서 벌어지는, 역시 당연한 노동의 대가로서 지불되는 돈들은 결국 사람들을 중독 시켰다.


그도 그럴만한 것은 현대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매체을 행함에는 돈이 필요했다.




실제로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도,

어떤 레저나 취미활동을 함에 있어서도,

돈이 얼마만큼 투자되는 가에 따라 질적인 수준이 달라지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지 않은 가.


금전적인 부분의 가치를 높게 두지 말자고, 중요한 것은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물질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천박한 것이라고 외치는 무리들조차 돈의 노예가 ‘아닌 척’ 연기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이 세상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산업들과 그것의 기반이 되는 세분화된 여러 기업들.


그 모든 직업군들은 단지 각자 수익을 만들어 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집단의 이익을 늘 강조하지만 그 안에서 개인적인 손해가 발생할 경우, 매몰차게도 그곳을 떠나 다른 자신에게 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대가없이 어떤 대상을 위해 어떤 것을 해 줄 수 있는 관계? 그것은 ‘혈연’이 가장 가깝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뿐(그마저도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각종 자격증을 준비해 ‘돈’을 벌기 위해 들어온 개인이 그 집단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의 영역이 아님은 분명했기에.


그곳에서 우리는 무수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엄밀히 그것 역시도 돈을 위해 들어온 억지스런 관계에 익숙해져 가는 현상 일 뿐.


잔인하지만 사회에 나와 알게 된 인연들에게는 그 자연스럽지 않은 ‘익숙’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물질적인 것뿐이 아니라 정신적인 교류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도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명백히 노동의 대가를 크게 지급해주고 있는 대기업이나 전문직종 소속의 개인들을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이러니한 것은 그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고자 하면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간단히 말하면 자신은 돈 많이 받는 직업에 속하고 싶거나, 만나고자 하는 대상이 그런 곳에 소속되어 있길 바라면서, 남들에게서 자신과 같은 성향을 발견하면 부정해버리고 싶은 이중 잣대임이 분명하다.


현실적인 것으로만 보고 판단해보자.

돈을 많이 번다. 고정적으로 모아둔 돈도 많고, 생활이나 여가를 위한 가용범위가 넓다는 점을 활용해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무언가를 해줄 때에 질적으로 보다 나은 선물을 해줄 수 있다고 하자.


더 맛있어 보이는 비싼 밥을 먹고, 남들에게 보여 졌을 때 어깨가 으쓱해질 만한 알려진 브랜드의 선물을 받고, 만남에 있어서도 멋들어진데다 승차감까지 좋은 차량을 공수한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쪽에서 어떤가? 좋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이들은 단지 그렇게 까지 해주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


그것은 ‘자극’인 것이고, 자극을 한번 맛본 사람이란 더한 자극을 바라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의 본능이다.


그 한계치가 명확치 않은 만큼,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객관적으로 충분히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임에도 자신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이들을 동경하고 시기하고 질투한다.


중독이라는 표현조차 쓸 수 없다. 뼛속까지 파고들어 세포마저 물들어버린 그들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기에.


예전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것은 더 많은 금전적인 혜택을 부여받을 수 있는 집단에 들어가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며, 실제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기정사실이다.


고등학교까지는 기본 소양을 위해 일괄적으로 같은 교육을 받는다 할지라도 대학교육이라는 것에는 엄연히 전 분야가 있어 본인이 선택한, 파고들고 싶은 어느 한 쪽으로 특화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전공 선택에 있어서도 그 다음에 있을 취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선택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업체와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취업률’을 따질 뿐일지 모른다.


현재 돈을 많이 벌고 있어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 전공과 관련된, 혹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은 대우를 보고 들어가 ‘하다 보니’ 이것이 나의 ‘천직이어야만 해’ 라는 것을 억지로 강요받고 있는지 모른다.


무엇이 되었건 한 분야를 선택해 기간 안의 경력을 인정받아 더 많은 금전을 요구하며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렇기에 돈으로 시작한 업무는 나의 전공이 되어야만 했고, 어떤 분야에 있어서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사명감보다 대우를 따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신이 늘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정답처럼 여기게 된다는 사실 역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


우리는 실제로 여러 번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 인생에서의 정답을 남에게 강요하며 ‘너는 왜 그렇게 살지 않는 거냐며’ 호통을 치는 꼰대들을.


일찍이 예술의 한 장르로 분류되는 장르를 선택 한 나 역시 그 카테고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으리라.

특정 나이가 지나 별다른 인생의 낙도 없이 그저 받는 돈의 액수가 커지는 것이 인생의 낙인 돈의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루어질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항상 꿈을 정해두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며 살리라. 돈! 돈! 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장인정신을 잃지 않겠노라고.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좋은 작품을 만들어 작품성을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 좋은 스폰서에게 인정받아 큰돈을 버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인이 되고 싶은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바닥 역시 돈의 논리로 돌아가기 시작한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중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잘 팔리는, 상품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라는 말 이외에는 성립하지 않는 듯하다.

별 수 없지, 작품에는 돈이 든다.


생계를 위한 작업 중이라면 어딘가 스폰서가 나타났다 해도 투자한 만큼의 어떤 이익을 취하고자 함이 분명하기에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유명 인이 된 예술인들에게 기회는 비약적으로 많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대중의 기호를 맞추고자하는 것.

그것은 결국 자신과의 타협이다.


모든 게 상업적으로 귀결되는 결과만으로 교육을 받아왔다면 다행이겠지만 대중과는 어긋난 삐딱한 ‘비주류’의 작품을 추구한다면 아마 언젠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일이 생길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외쳐대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작품세계와 대중의 기호라는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교묘한 극적 타결로,

성공해 있는 아티스트들을 보고 ‘부러워 죽겠는’ 생각이 가득한 걸 보니 나도 장인정신 가진 예술가 되기는 틀린 모양이다. 오늘도 한탄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 중이다.









살아가며, 생각하며,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고싶어 이야기도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괜찮으신 분들 방문 부탁 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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