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_ 가출의 정석 ]
「이랏샤이마세~~!! 」
어느 번화가의 한 레스토랑.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화사한 내부 조명과 함께 선명한 후광이 비치는 한 남자가 손님을 맞이한다.
조명에 반사되어 다채로운 갈색 빛으로 반짝이는 깊은 눈빛은 손님의 얼굴을 살짝 응시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 분이신가요?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정갈한 복장에 큰 키. 긴 다리로 반듯하게 성큼성큼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진입한 손님의 보폭에 맞추어 적당한 속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테이블로 함께 이동한다.
손님을 향해 자세를 낮추고, 공손하게 메뉴판을 살포시 열어 오늘의 추천메뉴와 인기메뉴 등을 차근차근 짚어주기 시작한다.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그의 자그마한 얼굴.
이윽고 읊조려지는 나긋나긋한 저음의 목소리는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에게 부드러운 에피타이저가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주문 확인했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장난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며 메뉴판을 회수해 돌아선다. 그의 넓은 어깨 뒤로는 주문을 마친 손님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작게 속삭여도 뭐라고 얘기할지 짐작이 간다.
[ 아무나 ] 일 할 수 없다는 일본의 한 레스토랑. 이곳에는 특히 여성 고객들이 붐빈다.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한 세현은, 늘 흔들림 없이 누구에게나 변함없이 이같은 패턴을 유지했다.
“...지나쳐...! 항상...!! 오버라고, 오버.”
뒤쪽에서 이 광경을 빤히 지켜보던 아영이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했다.
“내, 이 생활 몇 년째지만 너 같은 과잉 친절 서비스는 참 성질난단 말야...”
“아니, 손님한테 친절한 게 어때서 또 시비야!? 늘 하던 대로 하는 거잖아!"
“참 나, 식당에서 웬 따뜻한 미소질이냐...! 넌 이런 거 말고 어디 가서 연기를 해라, 연기를... 이 요망한 것 같으니... 야, 저기 손님들 또 들어온다. 얼른 가서 웃음 팔고 와라.”
친절이 생명이라는 가게 방침대로, 최선을 다해 접객 잘하고 있는 세현에게 괜한 시비를 거는 아영.
무심하게 고무줄로 대충 올려 맨 듯한 헤어 스타일,
아무렇게나 걸치고 나온 듯 헐렁한 갈색 셔츠에 청바지, 여리 여리하니, 청초해 보이는 아영 역시도 이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였다.
다부진 표정에, 척척 진행시키는 일처리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
소위 외모가 좀 「되는」 사람만 일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었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자신을 꾸미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 세현씨, 아영씨, 창고에서 여기 체크된 항목들 좀 이쪽으로 옮겨줄래요? ]
점장의 지시대로 주방으로 식자재를 같이 운반하게 된 두 사람.
“으이구, 홀 서빙 하라고 뽑아놓고 맨날 노가다를 같이 시키고 난리지. 좌우지간 한국이나 일본이나 윗 놈들 갑질은 똑같다, 똑같아!”
상사의 지시에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아영은 늘 툴툴 댔다.
“나야 그렇다 쳐도, 넌 부잣집 도련님께서 왜 사서 고생이냐, 이런 거 안 해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면서... 있는 사람들 생각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알 수가...”
중얼대는 아영의 말에 잠시 상념에 잠긴 세현.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사서... 고생인건가..."
짧게 답하며 세현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 멋있는 척 웃지 말라니까! 인제 일 그만둘 때 다 됐다더니, 아주 신이 났어? 그나저나...너, 유럽에는 언제 간다고 했지?”
“음, 한 일주일 정도 후에 출발이야, 벌써 비행기 표는 사뒀지.”
“그래... 얼른 점장한테 얘기해야지, 고객들의 사랑, 이 레스토랑의 스마일 마스코트가 나간다면 큰 손실일 텐데...!”
“얘기는 해 놨지. 그래도 마성의 매력녀 아영님이 남아 있으니, 난 아무 걱정 안합니다.”
“훗, 그건 그래. 이놈의 일본 식당, 우리 한국 알바 생들이 다 먹여 살리는구만.”
1년여 동안 같은 곳에서 일을 해왔던 두 사람.
이들은 일본으로 건너 와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이 레스토랑에서 만난 사이였다.
타지에서 만난 동족애 때문일까. 두 사람은 점점 가족과도 같은 유대감으로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각자 이곳에서의 다른 사무 때문에 따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레스토랑에서의 업무시간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셈 이었다.
이곳 레스토랑에서의 일을 마치고, 바쁘게 다음 일터로 이동하려는 듯한 아영에게 세현이 말을 걸었다.
“서로 바쁘니 밥이라도 같이 먹을 시간이 안 나네, 언제 하루 시간 좀 내줘.”
“그래, 새삼스럽긴 하지만... 세현이 너 멀리 가버린다니 좀 서운하긴 하네.”
“그렇지, 아무래도... 너 지금은 바로 다음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거야?”
“아니, 오늘은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 해서 그 시간 알바 뺐어, 참 인기도 많아, 나란 여자...”
“한국에서? 누구?”
“훗, 말한다고 네가 아니? 갈께, 내일 봐.”
일본에서 일을 한지 3년이 넘은 아영과 이제 1년이 조금 넘어가는 세현. 짧지 않은 그 기간 동안 많은 일을 해왔다.
그리고 계획대로 한 주 후면 세현은 어떤 목적을 안고 유럽으로 넘어간다.
꾸준히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와 자신의 꿈을 위한 작업을 병행해가며 지내온 세현의 1년여 간의 일본생활이 이제 마감되어가고 있다.
***
“오, 다행이다. 간판에 한글도 적혀있네!”
일본 하네다 국제공항.
자기 몸만큼이나 큰 트렁크를 끌고, 짐 크기만큼이나 큰 어리바리함을 탑재한, 해인은 귀국 플랫폼을 통과했다.
한국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본인들의 인상.
나름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왔건만 이런 식의 홀로 해외여행은 처음인지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당장은 시내까지 가는 길이 막막할 따름.
“신주쿠! 신주쿠!”
해인은 다짜고짜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언니에게 무턱대고 목적지를 외쳐댔다.
인포메이션 직원은 늘 있어왔던 일 인양, 당황하지 않고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때..땡큐..! 아리가또!!”
어디서 주워들은 일본어 인사말을 남기는 해인. 그리고는 이내 휴대폰을 꺼내어 어딘 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아영아! 나 지금 일본 도착했어! 지금 공항이니까 거기까지 가면... 한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응, 그래, 그 역에서... 동쪽 문? 알았어. 좀 이따 봐!!”
시내로 들어오는 지하철에는 온통 일본말로 빼곡히 들어찬 광고판들이 가득했다.
빠르게도 지나가는 차창 밖의 낯선 풍경들, 지하철의 안에서 유난히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본인들의 틈새로 칭얼대는 한 어린 아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엄마 아빠 앞에서 응석을 부리며 시선을 이리 저리 돌려대다 해인과 눈이 마주쳤다.
해인이 외국인 인 것을 알고있기라도 한 듯, 신기하게 빤히 쳐다보는 이 아이.
단란한 이 일본 가족을 보고 자연스레 떠오른 한국 가족들의 마지막 모습,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은 억지로 소환되어 졌다.
**
“...나 이제, 할 만큼 했잖아!! 나 좀 놔주면 안돼?!"
해인은 상기된 얼굴로 날카롭게 눈을 부릅뜨며 대들었다.
“이제 와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니? 잘 살았잖아.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살면 어때서...”
“다른 사람? 이제까지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개고생이나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또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거야?!
왜!? 대체 왜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좋은 사람 만나서 앞으로 네 행복 찾으면 되는 거 아니니? 왜 안하던 짓을 하려는 건데!?”
살아오며 단 한 번도 가족을 상대로 이렇듯 자신의 주장을 펴 본적이 없었던 해인.
그러나 어렵게, 어렵게 단호한 결의가 생겨난 이 시기마저 놓쳐버리면 평생 후회할 거란 생각이 들었던 걸까.
마냥 착하고 돈도 잘 벌어다 주던 [ 자랑스런 딸내미 ]는 가족을 상대로 크나 큰 선포를 하는 중이었다.
“해연이도 이제 자기 앞가림 할 나이 됐고, 엄마도 혼자 지낼 수 있잖아!! 평생 떨어져 있자는 것도 아니고...
이제까지 언제 내가 하고 싶었던 거 하면서 산 적이 있기는 했어? 대학갈 때도, 취직할 때도...”
분함에 눈물이 그렁그렁, 희생하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들먹이는 해인.
어느 새인가부터, 가족이라는 이유로 막연하게 딸에게 기대어 왔을 뿐.
예상치 못했던, 그러나 한 마디 반박할 수 없는 딸의 갑작스런 폭발에 엄마는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그래서 어디, 나가기라도 하겠다는 거니?
위험하게 혼자 뭘 하려는 건데?”
“하도 걱정들 해줘서 위험하지 않게만 살아왔어. 시키는 데로만... 근데 이제까지 그렇게 살았던 게 나한텐 최고 위험이 돼버린 거 알아?
이대로는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도 못 잡겠다고... 뭘 해도, 어딜 가도 지금보다 더 위험해 지지는 않을 거야...!!”
울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한바탕 쏟아내고 집을 나온 해인.
사춘기 소녀들 투정하듯 하루 이틀 쌓여온 불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 일생일대의 가출선언.
지금이라도 시작한다면 늦지 않았다고 믿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새 출발 준비를 위해선 정신적으로 그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결심에 불을 붙인 장본인, 바로 천아영...!
**
공항에서 일본의 시내로 들어오는 길고도 긴 지하철 여행. 해인은 약속장소인 신주쿠 역에 도착했다.
무시무시한 역의 크기만큼이나 물밀 듯 밀려오는 사람들의 행렬. 무표정하게 각자 갈 길을 향하는 그들에게서 어떤 공포심마저 느껴졌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며 당당하던 자신감은 이내 낯선 장소에서의 이질감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지경이었다.
“해인아! 이쪽이야!”
여전히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즈음, 눈에 띄는 보라색의 큰 트렁크를 보고 알아낸 듯, 아영은 금새 해인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었다.
해인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 마냥 기쁨에 찬 얼굴을 하고 아영에게 다가갔다.
“아영아, 잘 있었어?”
“그럼, 나야 뭐 늘 똑같지, 기집애...! 오는 게 힘들긴 힘들었나보다. 이렇게 친한 척 하는 거 보니까. 풋, 얼른 어디 들어가자.”
마치 자기 동네인양 능숙한 길 안내로 해인을 리드하는 아영. 두 사람은 다양한 상가들로 즐비한 역 내의 어느 조용한 카페로 발을 옮겼다.
“그래, 그때 잠깐 얘기하긴 했었지만, 중요한 일이긴 한 모양이지, 이렇게 정말로 일본까지 찾아온 걸 보니... 무슨 일인데?”
아영은 해인에게 그 간의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목적을 쏘아 물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해인이 입을 열었다.
“얘기...해 줄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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