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211124)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신문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그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내 소년기와 정확히 겹친다. 그 시기 동안 삼성 라이온즈는 OB베어스에게 막혀 원년 우승에 실패했고 이후로도 매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 시절 최강팀은 해태 타이거즈였다. 타이거즈는 프로야구 초창기 15년 동안 무려 9번의 우승을 일궈냈다.
그 즈음에 우리 집은 열여섯 번째 이사를 했고 나는 세번째 국민학교로 옮겼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교도 바뀌었다. 신문을 읽다 보니 조금 친근한(?) 이름이 등장했다. 허문도, 5공화국의 실세 3인방 삼'허' 중에 한 명 ‘국풍 81’을 기획한 사람이 바로 허문도 비서관이었단다. 그가 '국풍 81'에 김민기와 김지하를 영입하려고 했다고 한다.
물론 허문도 씨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의 이름도 얼굴도 모두 친근하다.
우리 반에 한국말이 좀 서툰 학생이 일본에서 전학을 왔다. 그의 한국어는 제일교포들의 그것처럼 어눌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가 바로 허문도 씨의 아들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담임 선생님이 조금 어려워 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의 남편이 당시 유력한 여당 국회의원의 보좌관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이리라. 선생님이 그를 특별하게 대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반에 허문도 씨의 아들 외에도 전현직 정치인들 자녀가 몇 명 더 있었던 걸 보면 어쩌면 그냥 우연히 우리 반에 배정된 게 아니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걍 우연히 그 반 학생이 된 거지만.
우리집은 반 년이 채 못 돼서 열일곱번 째 이사를 했고, 나는 학년이 바뀌기 한 달 전에 네번째 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리곤 다시 그를 보진 못했다. 오늘 신문을 보니 문득 그가 생각났다. 허문도 씨를 검색해보니 그의 사진에서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그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이상하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들으니 내 기억 속의 한 시절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정치적인 목적이야 뭐였든 간에 프로야구 초기에 해태타이거즈 팬이었던 건 신나는 일이었고, <애마부인>시리즈 포스터는 은근한 눈길이 갔고, 통금이 없는 밤거리는 활기찼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던 것 같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광주 '사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됐고, 두산 베어즈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신생팀 KT 위즈가 2021 한국 시리즈 챔피언이 됐고, 김민기는 오랫동안 검열을 통과했지 못했던 락오페라<개똥이>를 무대에 올렸다. 5공 시절에는 개똥벌레가 세상을 뒤집는 이야기로 해석해서 공연이 금지 됐다고 한다. 지금보면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는데, 예나 지금이나 도둑이 제발 저리는 법이다.
내 소년시대가 기억과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중이다. 사실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그의 사망 소식을 들으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26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