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211022)
1987년 5월 16일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두 투수 선동열과 최동원의 맞대결이 있었다.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지면서 15이닝동안 두 점을 실점했고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던지면서 두 점을 실점했다. 결과는 2:2 무승부. 한국 프로야구에서 전무후무한 경기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대 야구는 선발투수의 경우 투구수 100개 정도를 한계 투구수로 본다.
언젠가 김성근 감독이 한화 감독시절 투수는 공을 많이 던질수록 어깨가 단련된다는 얘기를 했다가 여기저기서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비과학적인 믿음이 비단 김성근 감독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1998년 고시엔 야구대회 8강에서 연장 17회까지 250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튿날 준결승전에서는 구원승, 다음 날 결승전에서는 노히트노런(완투를 하면서 안타와 점수를 허용하지 않는것)를 기록했다. 모든 경기를 내일이 없는 것처럼 던지는 세기말의 완투형 투수.
마쓰자카 기사를 읽다가 2011년 9월 14일 영면한 최동원 선수가 떠올랐다. 최동원도 마쓰자카에 못지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시리즈 4승.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놀랍다. 1, 3차전은 완투승, 5차전은 완투패, 6차전은 구원승, 7차전 완투승. 5번의 등판, 4번의 완투. 여기서 더욱 더 놀라운 점은 1984년 한국시리즈 MVP가 최동원이 아니었다는 것. 7차전에서 역전 3점홈런을 친 무시무시한(?) 1할타자 유두열이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완투형의, '한계 투구수는 개나 줘버려!' 라는 각오로 죽을 힘을 다해서 던지는 투수. 비록 어깨는 쓸 수록 소모되는 것이고(마쓰자카의 마지막 공은 시속 118킬로미터였다), 죽음은 화려했던 이들에게도 무차별적이었지만 이들의 패기만큼은 그들의 광속구만큼이나 짧지만 눈부시게 빛났다.
하나 더, 최동원은 1988년 선수협의회를 결성하는 문제로 구단에 찍혀서 삼성라이온즈로 전격 트레이드 됐다. 이미 스타가 된 선수가 어렵고 힘든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한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안경을 쓴 차가운 이미지와 정치적인 야망이 있다는 세간의 평과는 달리 따뜻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남을 위해서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믿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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