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변화 Mar 10. 2023

도움

개원했습니다

도움     


개업을 하기로 결정하니 괜히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대출도 받아야 하고, 장소도 알아봐야 하고, 인테리어도 만나야 하고, 의료기기나 기구들도 사야 하고 등등. 하지만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막상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비교적 최근에 개원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제일 중요한 건 입지야. 만약 적당한 자리가 없으면 당분간 봉직의로 일할 각오하고 기다려. 다 바꿀 수 있지만 입지는 진짜 바꾸기 힘들거든. 내가 아는 원장 중에는 삼 년 동안 자리만 보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병원 잘 된다고 백 미터 확장 이전했다가 매출이 반토막 난 사람도 있어. 같이 개업 준비를 도와 줄 사람 있어?”

“없는데.”


후배 말로는 개원을 준비하는 과정이 병원 생활만 해봤던 의사들에게는 생판 모르는 것투성이기 때문에 컨설턴트 업체를 통해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개원컨설턴트 업체에 대한 평판은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개업 후에도 다양한 종류의 강요와 압력을 행사하고 갑질 계약이 많아. 별로야. 그래도 혼자서 준비하는 것보다는 도와 줄 사람이 있으면  좋은데……” 뭔가 생각난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사람 한 명 소개시켜 줄 테니까 만나봐.” 후배가 그의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뭐 하는 사람인데?” 

“전화로 설명하긴 좀 그렇고, 나도 개업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

“이름이 뭔데?” 

“이름? 맨날 황가이버라고만 불러서.” 후배가 이름을 떠올리느라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잠시 후에 이름을 불러줬다. 

“결정할 일이 있을 때 무조건 이 사람이랑 상의해. 믿음직하고 유능한 사람이니까.” 


다음 날 전화를 했다. 당시 심정은 대박 날 자리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용촌 부동산 매물들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사흘 뒤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용촌은 조그만 도시여서 보러 갈 상가가 몇 군데 없었다. 우선 용촌 병원 주변에 나온 매물을 한 군데 보고 그 후에 용촌 중심가인 두 지역(원동과 신내동)을 둘러보기로 했다. 매번 비슷했는데, 그가 미리 연락한 공인중개사를 만나 매물로 나온 대여섯 곳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용촌 병원 근처는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쌌지만 주차장이 부족하고 대중교통이 애매했다. 중심가의 상가는 역세권이고 주차장이 충분했지만 임대료가 비쌌다. 


“어디가 맘에 드세요?” 

정해놓은 곳을 모두 보고 나서 네 번째 만났을 즈음에 황우영(a.k.a 황가이버)이 내게 물었다. 

후배가 내게 그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줄 때 가장 처음 얘기했던 것은 승려처럼 빡빡 깎은 그의 중머리였다. 그 때문에 처음 만날 때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부분은 굉장히 평범했다. 백 팔십 센티미터가 조금 안 되는 큰 키와 넓은 어깨 때문에 운동선수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대학교 다닐 때 농구반을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날렵한 가드나 길쭉한 센터가 아닌 몸싸움에 능한 파워포워드 같은 포지션을 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본 데가 제일 맘에 들어요. 면적이 넓긴 하지만 임대료도 면적에 비하면 저렴한 편인 것 같고.”

“제 생각도 비슷해요. 역세권, 썬팅이 빽빽한 고층의 빌딩과 널찍한 지하주차장, 중심가의 상가들은 왠지 모르게 좀 뻔해요.어차피 화상병원은 광역으로 생각하신다고 하셨으니까 너무 역세권만 생각하실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기계적으로 맞장구치는 뻔한 멘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은 진중한 조언처럼 들렸다. 서글서글한 인상 때문인지 아니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말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이후에 건물주를 만나 계약할 때도 인테리어 담당자를 만날 때도, 소모품 공급업자, 바이럴 마켓팅 업체, 간판 업자를 만날 때도 모두 그와 함께 만나러 갔다. 내 의도는,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의사 한 명이 아니라 역할을 알 수 없는 누군가와 같이 가는 게 상대방에게 어떤 심리적 압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몇 번 만나면서 든 생각인데 황우영의 의견을 듣고 있다 보면 마치 내 글을 읽고 조언해주는 것 편집자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몇 년 전에 장편소설을 출판한 적이 있었다. 소설을 쓰는 2년 반 동안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내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독자였다. 당시에는 아내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소설을 쓰던 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생각이 안 나고 잘 안 써지는 것이 아니라 내 소설이 재미없을 거라는 불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였다.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계속 써야 하나. 아, 진짜 재미없네. 이런 걸 꼭 출판을 해야 하나.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이런 불안이 찾아왔는데, 불안을 떨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자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정 분량을 쓰고나서 ‘독자’의 의견을 듣다 보면 불안은 잦아들고 계속 써야 할 동기가 생겼다. 어쩌면 소설가 역시 연시(戀詩)를 쓰는 시인처럼 수많은 독자가 아닌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 쓰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적어도 읽을 사람이 한 사람은 있네, 라는 안도감이었을 수도 있고.

비단 편집자라는 호사를 누릴 수 없는 나 같은 아마추어들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스티븐 킹의 첫 장편소설 <캐리>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원고를 아내 테비사가 되살려 출판 한 걸로 유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초고를 아내에게 보여주고 조언을 듣는 과정을 꼭 거친다고 했다. 


얘기하다 보니 ‘아내’에 방점이 있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건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아내라는 ‘독자’, 정확히 말하면 독자의 역할이다. 그 역할이란 작가의 생각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해 주는 것. 작가에게 진정한 ‘도움’이란 무조건적 응원이나 날 선 비판이 아닌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는 것이다. 비단 소설가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건,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개업을 준비하는 동안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닌가?’ 혹은 ‘속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황우영과 얘기를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아마도 그건 적어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은 아니구나, 라는 묘한 동지 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에게서 받은 진정한 도움은 개업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같이 가고 있는 동지가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느낌’이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