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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Mar 08. 2023

선택

개원했습니다

 선택     


기쁜 일도 있었다.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해줬던 야구로부터 출발해서 호르몬에 압도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거치며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사고를 치던 우주가 고2 2학기가 되자 갑자기 학원을 다니겠다고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복싱선수가 되겠다고 했기 때문에 조금 의외였지만 우리 부부는 우주가 원하는 게 불법이거나 너무 위험한 게 아니라면(예를 들면 오토바이 운전) 대부분 허락했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해보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저희 학원은 공부를 전혀 안 하다가 늦게 맘 잡고 시작해보려는 애들이 오기 때문에 별의별 애들 많이 옵니다. 근데 우주 보고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박원장이 말했다. 

아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2차 방정식을 풀어보라고 시키면서 봤는데, 세상에! 엑스를 그렇게 어색하게 쓰는 애는 첨 봤어요. 진짜 처음 써 본 애처럼 거의 그리는 수준이던데요.”

박원장이 짧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 예.”

아내가 멋쩍게 대답했다. 

“그래도 전 우주가 잘 해낼 것 같습니다. 그냥 듣기 좋으시라고 하는 얘기 아닙니다.”

사실 당시 우주의 성적은 전교 꼴찌에 수렴하고 있었으니 떨어지고 싶어도 딱히 더 떨어질 곳이 없기도 했지만 그는 단순한 ‘탈꼴찌’나 ‘하위권 탈출’이 아닌 훨씬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원장은 우주에 대해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얘기했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이 될 때까지도 2차 방정식의 해(解)는커녕 엑스를 제대로 그리지도 못하는 학생에게 그의 예상은 과분한 걸 넘어서 엽기적이기까지 했다. 

그가 자신이 제시한 목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유전자, 암기력, 운동. 유전자는 중요하긴 하지만 아무리 좋은 유전자도 책상 앞에 앉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이다. 암기력? 우주의 연극반 친구들 말에 따르면 우주가 대사를 외우는 속도가 남다르단다. 하지만 그 정도의 암기력을 가진 사람들은 흔하다. 

그의 얘기 중에서 가장 특이했던 부분은 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경험상 운동을 했던 아이들은 한계상황을 견디고 헤쳐나가는 능력이 책상물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박원장의 얘기에 대해서 나와 아내는 갸우뚱했지만 예전에 수시로 들었던 ‘왜 애가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셨어요?’ 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는 우주가 공부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우리가 만나 본 사람 중에서) 유일한 원장님이었다. 

“지원은 잘했어?”

정시 지원이 마감되던 날 우주에게 물었다. 

“당돌.”

“합격할 만한 대학을 지원한 거지?”

우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두 합격해도 모두 떨어져도 지원 잘못한 거임.”

“왜? 세 개 모두 합격하면 좋은 거 아니냐?” 내가 물었다. 

“그렇게 안전빵으로 할 거면 뭐 하러 세 군데나 지원해? 가군 배짱, 나군 소신, 다군은 안전이지.”

우주는 두 해 동안 초인적인 노력을 쏟아부어서 2022년 자신이 목표했던 대학에 합격했다. 마감 한 시간 전에 추가 합격 통보를 받았으니 심지어 극적이기까지 했다. 우주의 바람처럼 배짱은 꿈이었고 소신은 짜릿했고 안전은 편안했다. 신통하게도 그해 우주의 선택은 거의 적중했다. 우주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적 같은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호르몬에 압도돼 어둠 속을 질풍처럼 달리던 소년은 이제 사라졌다. 우주의 사춘기도 마침내 끝났다. 

우주는 항상 원하는 게 분명했다. 반면에 누리는 그렇지 않았다. 말이 없고 원하는 게 분명하지 않았다. 

누리의 고2 담임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누리가 영어 실력이 뛰어나니까 영문학과를 지원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당시 누리는 애니매이션 학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입시반은 아니었다. 내년이 고3이니 결정을 내려야 했지만 매번 물어보면 묵묵부답이었다.  

담임은 조심스럽게 누리의 그림실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굳이 애니매이션 학과를 고집할 필요가 있냐고 했다. 오히려 누리가 잘하는 영어를 전공으로 하고 애니매이션은 취미로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맞는 말 같은데?” 

내가 대답했다. 사실 나 역시도 담임 생각과 비슷했다. 

며칠 뒤 누리와 얘기했다. 이후에 누리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다른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완전히 잘못 판단했던 것 같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말했다. 

“뭘?”

“생각해보면 누리는 일관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얘기해왔어. 미술학원을 보내달라는 것도 누리였고, 애니매이션 학원으로 바꿔 달라는 것도 누리였잖아. 비록 지금 엄청나게 열심히 하거나 잘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앞장서서 누리의 선택을 부정하는 꼴이 돼버렸잖아.”

며칠 뒤 누리는 미술학원에서 입시반 수업을 받기로 결정했다. 영어가 아닌 애니매이션을 선택한 것이다.

우연이지만 퇴사 얘기를 들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나 또한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했다. 취직이냐 개업이냐, 혹은 응급의학과냐 화상외과냐. 마침 구인 중인 병원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봉직의 자리를 구하는 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개업을 하자니 신경 써야 할 일들과 위험부담이 많았다. 퇴사까지 시간이 빠듯한 건 아니었지만 경험상 이런 종류의 고민은 오래 한다고 묘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 십오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진료부장으로부터 자신과 같이 일하자는 전화를 받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당시 나는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혼란스럽고 다급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응급의학과가 멋지긴 하지만 오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전히 방전상태였다. 내겐 배운 걸 써먹고 새로운 걸 다시 배울 수 있는 새 직장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그곳이 중증외상센터의 화상외과였다. 응급 화상환자를 처치하고 중증 화상환자를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중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곳. 

비록 많은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응급의학과가 아닌 화상외과로부터 퇴사를 해야 할 시점이 됐지만, 선택의 기준은 달라지 않았다. 이전에 배운 걸 써먹고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곳. 그렇게 생각하면 응급의학과 봉직의는 적당하지 않았다.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건 이제껏 경험하고 쌓아왔던 과거를 부정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동시에 마침내 실패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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