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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Mar 07. 2023

퇴사

개원했습니다

퇴사   


내가 용촌 병원에 처음 오게 된 것은 2015년 병원 가에 불어닥친 때아닌 중동 붐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한국의 의사들 사이에서는 중동 국가로 진출을 하는 게 유행이었다. 두 세배 정도 되는 높은 연봉, 삐까뻔쩍한 외제차, 수영장이 딸린 호화 저택, 그리고 유럽 선진국 수준의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까지. 그곳에서는 한국의 상류층이 꿈꾸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 같았다. 진짜 ‘지니’라도 키우는 건가?


당시 이사장의 계획은 이랬다, 아니 이랬던 것 같다. 의사 둘 간호사 일곱을 뽑아서 외상 환자 전문 치료 인력으로 사우디로 보낸다. 거기서 받는 연봉의 일부를 자신이 챙기고 자체 개발한 전자처방시스템을 그쪽 사우디 병원에 판다. 그렇게 해서 이 년 혹은 그 이상 유지하면 챙길 수 있는 돈이 연 10~15억 정도. 생각만 해도 군침이 질질 흐르는 제안이었다. 부랴부랴 전산팀을 급조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우디 파견 모집공고를 올렸다. 최종적으로 모인 인원은 병원에서 차출한 의사 둘(용촌병원에서 차출된 두 명을 충원하기 위해 내가 오게 된 것이다)과 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간호사 일곱.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눈치챌 수 있었던 건 사우디 왕족이 생각했던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사우디 병원의 경영진 또한 그냥 호구들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회의에 참석했던 외과의에 따르면 전산팀장은 회의 내내 사우디 경영진들의 날카로운 질문 공세에 진땀을 뺐다고 했다. 하긴 정작 우리 병원도 안 쓰는 엉성하고 조잡한 처방전달시스템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냉큼 계약해 줄 호구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들은 이미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병원 시스템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다. 비록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을지 몰라도 보는 눈은 높고 정확했다.   


사우디 프로젝트는 시종일관 출발하네 마네 어쩌네 하며 계속 삐걱거렸고 이 년 정도를 질질 끌다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용촌병원에서는 애꿎은 환송회만 두 번이나 했다.

요즘 병원이 무지 잘 되나 봐, 사정을 알 리 없는 병원 앞 삼겹살집 사장님은 잦은 전체 회식에 반색을 했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이사장은 사우디 놈들과 에이전시에게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사장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속은 게 아니라 속일 수 없었던 거였다.   

사우디가 물 건너가면서 이래저래 투자금 오 억이 날아갔고 두 명의 의사와 용촌 병원 외래와 수술방에서 트레이닝을 받던 일곱 명의 간호사가 잉여 인력이 됐다. 잉여 인력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청송과 서울로 뿔뿔이 흩어졌다.  


몇 년 동안 용촌 병원에 코빼기도 안 비치던 이사장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병원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말로는 용촌 병원 이전 계획 때문이라고 했지만 병원 직원 중에 누구도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바보는 없었다.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면서 청송병원은 코로나 거점병원이 됐다. 중증외상센터로 개원한 내내 적자로 곤두박질치던 매출이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입원 환자는 급증하는데 간호인력이 부족해서 병동을 늘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비록 청송이 외진 곳이긴 했지만 자원자들이 많기 때문에 간호사를 구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원자들은 돈을 많이 줘야 하고, 근무시간과 연차를 원칙대로 챙겨 줘야 하기 때문에 맘대로 부려 먹을 수 없었다.

그게 이사장이 용촌 병원에 출몰하기 시작한 ‘진짜’ 이유였다. 네 개 병원 중에 경험이 많은 간호사들이 남아 있는 곳이 용촌 병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사장은 간호사들을 회의실에 불러놓고 ‘병원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 세워 청송 병원 코로나 병동 파견이 꼭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현재 새로운 장소를 물색 중이니 해가 바뀌면 새 장소에 다시 모여서 용촌 병원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사장이 방문한 지 한 달 뒤 진료부장 강대준이 나를 만나자고 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만나서 얘기하겠다고 했다. 청송 병원 파견을 가라는 거겠지.  

술잔이 몇 순배 돈 후에 대준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병원 못 옮긴다. 문 닫는 걸로 결론 났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정지화면처럼 모두 나를 쳐다봤다. 대준이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 이렇게 짤리는 거구나. 십 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제때 월급이 나온 적이 단 일 년도 안 되는 극도로 불안정한 직장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평생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반년 동안 월급이 밀리고 있을 때 나갈걸.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사직하나 해고당하나 어차피 나가는 거지만 그때 사직서를 들고 이사장에게 휙 던져놓고 나갔어야 했는데, 그게 좀 아쉽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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