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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Mar 13. 2023

계약

개원했습니다

계약     


전에 일했던 용촌 화상센터 근처의 건물로 계약했다. 계약한 곳은 7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 2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마인솔(마인드와 소울을 합한 이름이라고 한다) 정신과 병원의 입원 병동이었다. 

화상 의원은 인근 동네가 아니라 도시 전체나 인근 도시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화상을 보는 병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상 환자가 고혈압이나 당뇨, 감기 환자만큼 많은 것은 아니므로 어느 정도 인구가 있는 도시여야 한다. 

민호는 인구가 백만이 넘는 도시면 개원할 만하다고 했다. 용촌은 도시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택시를 타고 가도 이만 원이 넘지 않고 지하철역 다섯 개를 지나면 도시가 끝나는,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도시이다.  


용촌에 살다 보면 도시가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아마도 그건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아파트와 상가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용촌은 숲이나 임야의 비율이 가장 적은 도시이기도 하다. 인구는 팔십만 정도인데, 여덟 배의 면적을 가진 용인시가 백만을 조금 넘는 것과 비교하면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은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백만이 넘는 것은 아니지만 화상 의원을 개업하기에 비교적 좋은 입지였다. 

용촌의 현재 중심가인 원동과 신내동은 지하철 7호선을 따라서 형성돼 있고 구 중심가는 서울에서 광천으로 연결되는 경천로를 따라서 있다. 내가 계약한 마인솔 병원은 용촌에서 광천으로 넘어가는 경계인 내동에 있는데, 구시가지를 관통하는 경천로가 병원 앞을 지나간다. 이 길의 동쪽으로는 서울, 서쪽으로는 광천 광역시로 연결된다. 좀 더 서쪽으로 가면 서해 바다와 섬들을 만나게 된다.


병원 주변은 조그만 아파트 단지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고 고만고만한 높이의 상가들이 크고 작은 차도를 따라서 모여 있다. 가끔 진료실에 앉아서 지하철 내동역이 있는 북쪽 고가도로 방향을 바라보다 보면 원동과 신내동에서 떠내려온 아파트와 부표처럼 십자가가 꼭대기에 달린 상가들이 그 곳으로부터 밀려 나와 이곳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은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고 한다.   


“원장님은 뭐 전공이세요.” 공인중개사가 내게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건네며 물었다. 오십 대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아토피가 있는 것처럼 피부가 꺼칠하고 얼굴색이 어두웠다.

“화상이요.”

“그걸로 유지가 돼요?” 그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해봐야죠”

문이 열리고 재단 사무국장이 들어왔다. 참고로 내가 입주할 건물의 주인은 마인솔 병원이 아니라 창명주얼리 재단이다. 사무국장은 조심스럽고 점잖아 보였다. 앉자마자 계약서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다. 

“주얼리 재단이면 보석을 파시는 건가요?”

내가 그에게서 받은 명함을 보고 나서 물었다. 

“창업자께서 원래 하셨던 일이 보석 세공이었고, 지금은 국가를 위해서 뜻한 바가 있어서 좋은 뜻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장학재단을 만든 겁니다” 

사무국장의 말이 귀에 쏙쏙 박히는 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서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다. 곧바로 사무국장의 예상치 못했던 발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복비 이거 다 받을 거요? 반만 받아요.”

“법으로 정해진 거여서 다 받아야 하는데……” 중개사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그거 다 주고 거래하는 사람이 어딨소?” 

나는 순간적으로 건물주와 한 편이 돼야 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전까지만 해도 부동산에서는 내 편에서 세를 깎아 달라는 요구를 포함한 이러저러한 요구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사무국장의 요구대로 복비는 반이 됐다.  

전에 민호가 그랬다. “무조건 깎아. 일단 절반으로 후려쳐. 들어주면 좋고 아님 말고. 형이 먼저 얘기 안 하면 절대 먼저 깎아주는 일은 없어.”


황우영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초원식당으로 내려오는 길에 용촌 병원 앞을 지났다. 흰색 타일이었던 병원 벽은 회색빛으로 우중충했고 병원 이름이 새겨진 간판 주변의 파란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일어나서 보기 흉했다.     

“원장님 병원도 무슨 재단 소속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황우영이 식당에서 숟가락을 놔주면서 물었다. 나는 설명 대신 ‘아.’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황우영은 영문을 모른 채 나를 잠시 쳐다봤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단에서 따로 세뇌교육이라도 시키나?       


사우디가 물거품이 된 후에 용촌 병원에서 가뭄에 콩 나듯 외래를 보며 눈칫밥을 먹던 민호는 대학병원 재난센터로 파견을 나가게 됐다. 청송 외상센터 개원기념행사로 기획한 재난시뮬레이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개원 기념으로 ‘재난’을 시뮬레이션 한다는 게 왠지 축하가 아닌 저주 같았지만 거창한 거 좋아하는 이사장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수술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 반대로 교실에 앉아 있는 거라면 질색하는 성격인 민호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재난 시뮬레이션의 총책임자가 됐다. 

재난 시뮬레이션을 포함한 모든 행사가 다 끝난 뒤에 나왔더니 민호가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건물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냐?” 내가 다가가 등을 툭 치며 물었다. 

“건물 크네요.” 민호가 들릴 듯 말듯 한숨을 쉬었다. “형은 무슨 생각 들어요?”

내가 잠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저 많은 병동을 언제 다 채우지?”

“사장님 마인드네요.”

“넌 무슨 생각하는데?”

“재난이요.”

“시뮬레이션 끝났잖아?” 

“꼴랑 의사 세 명으로 저 많은 병상을 다 채우면 완전 재난 리셋이죠"


‘중부 최대’라는 과분한 수식어와 허우대 멀쩡한 건물이 전부였던 청송 외상센터는 보건소 인가를 받지 못해 두 달 늦게 개원했다. 초기 적자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거였지만 두 달 동안 땡전 한 푼 수입이 없을 거라고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적자를 메꿔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우디 프로젝트마저 날아가 버렸으니, 진짜 ‘재난’ 상황이 된 것이었다. 직원들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하나둘 나가기 시작했고 다섯 명의 의사가 그만뒀다. 

최악의 시기를 넘기고 밀렸던 월급을 모두 줬을 시기에 이사장이 서울에 있는 재단 사무실로 의사들을 소집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얘기와 함께 월급 인상을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만둔 의사들이 두 배 가까운 월급을 받고 옮겼다는 얘기를 듣고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날 모두가 놀랐던 건 그 약속이 아니었다.  


2층 회의 장소에 모여 있던 의사들은 한 명씩 3층에 있는 이사장실에 들어가서 일 대 일 면담을 했다. 면담을 마친 모두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던 건 이사장의 ‘약속’이 아니라 ‘흉상’이었다. 3층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나오면서 발견했다. 

평범한 양복 자켓에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 셔츠, 거기에 넥타이를 맨 흔해 빠진 흉상의 모습이었다. 천정의 할로겐 조명 빛이 좁은 이마의 가운데 부분과 광대, 콧등에서 반사되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흉상의 시선이 약간 위쪽을 향하고 있어서 마치 멀리 빛나는 뭔가를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흉상을 받치고 있는 직육면체 돌기둥 위쪽에 이사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사실 실제 모습과 너무 달라서 누군가 가져가서 자기 이름을 붙여도 알아채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써먹을 데도 없고 무겁기만한 쇳덩어리를 누가 들고 갈 일도 없겠지만. 너무 웃겼지만 웃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면담을 마치고 2층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검지로 위를 가리키며) 풉. 동상, 봤어? 

회식 장소였던 근처 중국집에서 이사장이 떠날 때까지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놀란 백성들처럼, 임금님 귀가 당나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신하들처럼 뭔가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또는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말할 수 없는 상태를 꽤 오랫동안 버텼다. 이사장이 나가자마자 내가 대뜸 진료부장 대준에게 물었다. 

“푸하하하, 동상은 뭐예요. 이거 뭐 북한도 아니고.” 

이때다 싶었던지 다른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래도 북한(동상)은 죽은 사람 동상이잖아요.” “혹시 돌아가시면 피라미드라도 제작하시는 건가?” “저렇게 재밌는 걸 병원에 뒀어야죠” “그러게. 월급 안 나와서 우울할 때마다 봤으면 즐거웠을 것 같은데.” 

말없이 듣고 있던 대준이 타이르듯 한마디 했다. 

“야야, 그만해라. 국가를 위해서 뜻한 바가 있어서 좋은 뜻으로 후원 재단 만드셨잖냐. 외상 분야에 기여한 거 생각하면 동상 정도야 만들 수도 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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