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했습니다.
“아이구, 아버님 너무 걱정마세요. 한때 그러다가 다 좋아집니다. 누리 같은 애들은 형이 잘 보살피면 훨씬 더 좋아질 겁니다. 참, 누리가 영어 잘하나 봐요. 원어민 선생님하고 얘기 많이 하던데요. 마이클(원어민 영어 선생님)이 누리에 대해서 많이 물어봐요.”
담임이 면담을 끝내고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굳은살이 박힌 그의 손이 두툼하게 만져졌다.
당시에 우주는 사춘기의 폭풍 속을 지나는 중이었다. 자신의 충동조차 감당할 수 없어서 좌충우돌하는 중3짜리가 어떻게 누군가를 보살핀단 말인가. 더군다나 둘은 서로 다른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가 누리의 학교생활에 ‘보이지 않는 손’을 뻗친 적이 있긴 했다. 그걸 보살핌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누리가 중1, 우주가 중3 때였다.
“아빠, 동수 알지?” 보조석에 앉아 있던 우주가 신호 대기를 하는 중에 내게 말했다. 당시에 누리는 아침마다 축구 연습을 하기 위해서 내 차를 타고 일찍 등교했다.
“어, 알지. 왜?” 내가 대답했다.
“며칠 전에 동수 만났는데 3학년 수돗가에 와서 물을 먹는 1학년 짜식이 있어서 벼르고 있대.”
“그래도 때리면 안 되지. 너도 그러지마라.”
“동수 우리 중학교 아니야.”
“근데 왜 너한테 얘기했대?”
“그 1학년 짜식이 누리거든. 동수도 나한테 들어서 누리가 같은 중학교인지 알고 있거든. 혼 좀 내줄까 하다가 갑자기 내 동생일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더래나 뭐래나.”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우주가 고3 때의 일이다. 우주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누리에게 좀 더 살가워졌다.
“아빠, 누리 지갑에 원래 얼마 있었는지 모르지?” 우주가 물었다.
“몰라.”
“돈이 많이 비는 것 같지는 않던데. 그럼 내 얘기가 전달이 잘 된 건가?” 우주가 뒷좌석에서 혼잣말하듯 얘기했다.
“누리한테 돈 빌렸니?”
“아빠는 내가 다른 사람 전자담배를 쓰다가 잃어버렸다면 얼마를 물어줘야 한다고 생각해?”
“전자담배 가격만큼 물어주면 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 거 잃어버렸니?”
“아니. 그건 아니고. 그 새끼 생각할수록 완전 쌩 양아치 새끼네.”
우주가 들은 바에 의하면 누리가 교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선생님에게 드렸는데 그게 하필 전자담배 기계였고 그 소식을 들은 주인이 완전 빡 돌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누리는 그게 전자담배라는 걸 전혀 몰랐을 것이다. ‘빡 돌은’ 그 아이가 누리에게 전자담배값의 네 배가 넘는 금액인 25만 원을 요구했다고 했다.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 새끼랑 내 친구랑 아는 사인데, 나는 친구한테 들었지. 기계값 육만 원 정도 달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25만 원이라니. 아, 양아치 새끼! 누리 형이 우주라는 걸 꼭 얘기해주라고 했으니까 알아처먹었겠지.”
담임은 무관심한 건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이었고 누리의 병에 대해서도 학교 생활에 대해서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선생님에게 어떤 역할(꼼꼼한 관찰자)을 맡겨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체육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교과목 수업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알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여행 편에 새로 추가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