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했습니다
위기
“아무 사건이 없네요.” 뿔테 안경을 쓴 강사가 대답을 들으려는 듯 수강생들을 천천히 둘러 봤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2019년 12월에 문정역 근처 출판사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소설창작강의를 들었다. 당시에 나는 천오백 매가 넘는 장편소설의 초고를 완성하고 글을 6개월 정도 고치다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등단 작가인 친구가 창작 강의를 들을 걸 추천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여덟 번의 강좌로 구성돼 있었고 수업시간에 다른 수강생이 쓴 단편소설들(대개에 대한 합평을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스무 명의 수강생이 대개 각각 두 번 정도 자신이 쓴 단편을 발표할 순서가 돌아왔다.
“사건이 꼭 필요한가요?”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르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수강생이 질문했다. 합평 작품의 저자였다.
“독자가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쇼우 돈 텔(Show, don’t tell). 설명하지 말고 보여줄 것. 보여주려면 사건이 반드시 필요해요. 사건이 없다면 등장 인물은 우리가 매일 지하철이나 마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랑 똑같아요. 그걸 기대하면서 작품을 읽는 독자는 없어요.”
사건이 없다면 영원히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그건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그랬다.
건물 임대계약을 할 무렵 강대준이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병원이 망해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냥 보내기는 미안했던 모양이다. 서울 병원은 새로운 인력을 뽑을 만한 여력이 없었고 청송 병원은 내가 가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같이 일할 수 없게 돼서 미안하다는 얘기와 함께 개업 준비는 잘 되는지 물었다. 용촌 병원 주변 건물에 임대계약을 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잘했다고 하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난 뒤 응급의학과 교수를 하고 있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설 좀 많이 팔았어?”
내 소설은 초고의 700매 분량을 없앴고 다시 400매 정도 분량을 새로 써서 완성했다. 비록 네 군데의 공모전에서 떨어졌고 세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출판에 성공했다.
“2쇄를 찍었으니 목표는 달성한 거지. 왜 사인 좀 해줄까?”
“어, 어떻게 알았어?”
후배가 짐짓 화들짝 놀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뭘?” 나는 약간 어리둥절한 말투로 대답했다.
“내 제자 중에 형 사인을 간절히 받고 싶어 하는 찐 팬이 한 명 있어. 소설을 너무 감동적으로 읽었대. 형이랑 아주 친한 사이라고 하니까 제발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데, 괜찮지?”
“완전 영광이지. 백수여서 한가하니까 날짜 잡아서 알려줘.”
후배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전화를 끊지 않고 있었다.
“그리구 형한테 할 말이 좀 있는데 ……” 후배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후배의 얘기는 이랬다. 사인을 받고 싶다는 제자는 원래 화상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데 우연히 응급의학회에서 글쓰기에 대한 내 강의를 듣고 소설을 읽게 됐고, 소설 마지막에 실린 감사의 글에서 후배의 이름을 발견했다.
나와 후배가 가까운 사이임을 알게 된 제자는 서울의 화상병원에 취직하면(내가 서울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도 만나고 화상도 배울 수 있겠다 싶어서 후배에게 서울 화상병원에 연결을 해달라고 했다.
“한 번 만나게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강대준 선배한테 연락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보자고 하더라구. 당연히 자리가 없다고 할 줄 알았어. 그런데 음.” 후배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날 그 자리에서 같이 일하자고 하더니만 급기야 이사장 면접 날짜를 잡았어.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 형이 그랬잖아? 병원이 빚도 많고 점점 인력도 줄여가는 과정에서 용촌 병원 문 닫으면서 형도 나가게 된 거라고. 근데 왜 새로운 사람을 또 뽑아? 일부러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형 나간 자리에 내 제자를 꽂아버린 셈이 돼 버려서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았어. 걔는 형이 당연히 서울 병원에서 일하는 줄 알았나 봐. 그날 형이 없으니까 꼭 한 번 따로 만나게 해달라고 해서 겸사겸사 연락하게 된 거야.”
날짜를 대충 맞춰보니 내가 임대계약을 했다고 했던 그즈음에 후배는 대준과 만났던 것 같다. 며칠 후에 내가 대준에게 전화로 따져 알게 된 정보(비밀이랍시고 가르쳐주지 않는 것도 있었다)와 그사이의 일들을 종합해보면, 이사회로부터 대준은 나를 퇴사시키고 신규 의사를 새로 채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 같다. 내게 용촌 병원이 문 닫을 거라는 얘기를 전달하는 날 그에게는 이미 나를 무조건 퇴사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었던 것이다. 바보같이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차라리 몰랐던 게 행복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임대계약 시점에 만나자고 했던 것도 혹시나 내가 마음을 바꿔 병원에 남아 있겠다고 할 수도 있으니 확인 차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랴. 이 모든, 내가 퇴사하고 새로운 과장을 뽑는, 과정의 최고의 도우미는 대준도 후배도 팬도 아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나는 개원을 하라는 권유를 선뜻 받아들였고 혹시나 궁금해할 것 같아서 진행 상황도 대준에게 얘기해줬다. 그만둘 거라는 메시지도 확실히 전달해 준 셈이 된 것이다. 게다가 내 소설을 읽은 팬이 후임으로 지원까지 해줬으니!
봄이 성큼 다가왔다. 아파트 화단의 목련꽃들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가지 위에 열렸고, 라일락이 담벼락을 타고 나뭇잎 사이에서 무리를 지어 매달렸다. 곳곳에서 산수유가 터지고 앵도나무가 아지랑이처럼 땅 위로 하얗게 피어올랐다. 어느새 봄이 길가를 따라서 화단을 건너서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임대계약을 한 후 이전 세입자였던 은행이 4주 동안 철거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곧바로 인테리어를 시작할 수 없었다. 개원까지 남아 있는 두 달 동안 건축사를 통해서 병원 시설로 용도 변경을 신청했고, 인테리어와 간판 디자이너와 미팅을 했고, 침대 소독기 진찰대와 같은 의료기기를 공급할 업체와 계약했다.
맹위를 떨치던 코로나 오미크론 덕분에 나는 퇴사 후에 코로나환자 비대면진료를 하는 병원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원래는 꼬박 한 달 동안 일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확진자가 돼버려서 결국 삼 주 조금 넘게 일하게 됐다.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확진이 됐다. 황우영도 (나랑은 상관없이) 확진자가 됐고, 거래업체 직원들도 절반 정도는 확진자였거나 확진자가 돼 버렸다. 문자 그대로 봄이 전염병처럼 번지던 시절이었다.
3월 말 즈음에 내가 확진돼서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었다. 그 시기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는 이러저러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 중에 하나는 이거였다.
나는 왜 짤렸을까?
새로운 직원을 뽑았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짤린’ 게 아니라 퇴사 ‘권고’를 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였지만 용촌 병원이 망했기 때문에 취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는 걸로 애써 합리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강대준은 나를 짤랐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마치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지만 음주운전을 한 건 아니라는 주장처럼 나를 퇴사시키고 새로운 과장을 뽑았지만 둘은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들었을 때는 궤변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대준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대준도 나랑 별반 다를 게 없는지도 모른다. 둘 모두 진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믿음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는 얘기다. 나는 짤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헛된) 믿음이 무너지는 게 두려웠다. 그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고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대준 역시 나를 해고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그가 더 이상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을 지켜줄 만큼의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준도 자신이 특별하다는 믿음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결국 이사장의 (꽤 오래된) 직원일 뿐 그 이상도 이하의 관계도 아니었다, 다른 모든 이들이 그런 것처럼.
가끔 책도 읽었다. 안방 책장에 꽂혀 있는 안데르센 동화집이 눈에 띄었다. 안데르센은 동화집을 출판하고 나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권선징악이 아닌 작품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평론가들은 애들이 교훈도 없는 이따위 동화를 읽어서는 배울 게 하나도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소심하고 예민했던 그가 열다섯 이후로 덴마크 땅을 밟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안데르센은 구전동화를 편집한 게 아니라 창작동화를 썼기 때문에 권선징악과 같은 뻔한 메시지를 거부했다. 창작을 하는 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이 나온 김에 적당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벌거벗은 임금님>은 어떻게 끝나는가. 아무도 볼 수 없는 옷의 진실이 드러나고 진실을 알게 된 임금님이 참회하면서 끝났던가. 그렇지 않다. 안데르센은 그런 클리셰를 믿지 않았다. 끝은 이렇다.
황제는 ‘이제 와서 어떻게 행진을 멈춘단 말이야?’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욱더 거드름을 피우며 걸었죠.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벌거벗은 임금님은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임금님 또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믿음을 지키고 싶었다, 나와 대준처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