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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Apr 10. 2023

개원

개원했습니다

개원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후 소방 점검을 받고 보건소로부터 요양기관개설 허가를 받았다. 담당 보건소 직원이 주변 세입자들에게 공용면적 사용에 관한 동의서를 받으라는 둥 신고 면적과 도면의 면적이 안 맞는다는 둥 도면의 숫자가 작아서 안 보인다는 둥(혹시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해서 보는 걸 모르는 건가?) 별거 아닌 이유로 차일피일 미적거리면서 며칠 허비했던 걸 제외하면 비교적 순조로웠다. 

삼 주 동안 사무용 가구와 크고 작은 의료기구와 컴퓨터 티브이 세탁기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들을 들여놓았다. 인터넷을 계약하고 전화기를 연결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보안카메라를 설치하고 처방전달 프로그램을 깔았다. 약속 처방과 코드를 만들고 심평원에 치료재료를 등록했다. 이 많은 일들을 적절히 배분해서 하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부분 개원 일주일 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시기에 나는 매일 아침에 출근해서 전화하고 주문하고 결재하고 물건을 받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진짜 돈을 물 쓰듯 쓰던 시절이었다. 오후 네 시 정도가 되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황우영 말로는 개원을 세 번이나 한 사람도 있다는데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는 이런 정신없는 과정을 다시 반복하고 싶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카드 단말기를 연결하던 날 오후에, 정확히 말하면 4월 22일 오후 두 시에 드디어 병원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 한 명의 환자가 왔다. 손에 화상을 입은 남자 아이였다. 미리 어딘가에 공지를 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대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신기했다. 물어보니 근처 소아과에 화상 때문에 갔다가 그곳 원장님이 건너편 건물에 있는 의원에서 화상을 보는 것 같으니 가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개원을 한 후에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블로그를 제작하고 그 외에 홍보할 방법도 생각해야 했다. 네이버에 병원 위치를 등록하고 티맵과 카카오맵에서도 검색이 되도록 해야 했다. ‘이 많은 걸 진료를 하면서 어떻게 다 하지?’ 라는 걱정을 했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다.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봉직의 시절에는 오전 외래에 보던 환자를 일주일에 나눠서 보는 수준으로 환자가 왔으니, 시간이 펑펑 남아돌았다. 


근처 떡집에 주문해서 개업 기념 팥시루떡을 돌렸다. 포장 박스를 여니 막 해온 떡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훅 풍겼다. 떡을 가지고 한 지붕 아래 입주해 있는 세입자들을 찾아갔다. 1층과 2층의 일부 구역 그리고 3층부터 7층까지를 입원실로 사용하고 있는 마인솔 병원의 원장을 찾아갔다. 외래를 보는 중이어서 그를 만나지는 못했고 대신 사십 대로 보이는 여자 행정부원장이 나와서 떡을 받았다. 

포장 비닐에 물방울이 송송 맺힌 따끈한 떡 세 팩을 건넸더니 너무 많다면서 하나를 돌려줬다. 쌍꺼풀이 짙게 진 큰 눈과 각진 턱 때문에 강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무례한 건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1층에 있는 또 다른 세입자인 자동차 대리점에 들렀다. 신차를 홍보하는 배너광고가 차와 함께 매장 입구와 차 옆에 세워져 있었다. 사장은 오십 대로 보였고 키가 크고 살집이 꽤 있고 어깨가 넓은 건장한 체격이었다. 둥근 얼굴과 웃을 때 처지는 눈썹 때문에 부드러운 인상이었는데 떡을 받을 때 보니 손바닥과 손목에 서너 군데 흉터가 있었다. 사장이 대뜸 왼손으로 오른쪽 팔의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올렸다. 오른쪽 팔뚝에 푸른색 잉크로 장미꽃 문신이 투박하게 새겨져 있었다.

“원장님, 이거 레이저 같은 걸로 못 없앱니까? 그냥 마취 좀 하고 포 뜨듯이 살짝 사사삭 걷어내면 될 것 같은데.”   

 사장이 오른손 날로 포를 뜨는 시늉을 하면서 싱겁게 웃었다. 요즘 세상에 팔뚝에 문신이 있는 게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건장한 체격과 팔뚝의 흉터와 푸르스름한 단색 문신이 왠지 모르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저희는 화상 환자 보는 병원이라서요.” 내가 얼버무리듯이 말끝을 흐렸다. 

“나중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만나려는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신차 홍보를 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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