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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Apr 18. 2023

개원(2)

개원했습니다

대리점을 빠져나와 2층으로 올라왔다. 우리 병원의 바로 옆은 조경학원이었다. 병원 자동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조경학원의 출입구였다. 출입구 앞에는 물레방아 모형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고 푸른 잎사귀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턱밑까지 자란 월계수와 야트막한 주홍색 군자란 화분이 놓여 있었다. 문은 잠겨있고 유리문 안쪽은 어두웠다.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점심 먹으러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에 블로그에 넣을 병원 외관 사진을 촬영했다. 병원 간판이 모두 나오도록 도로 건너편에서 촬영했다. 길옆 화단에 울타리처럼 심은 사철나무 사이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포플러 나무가 솟아 있고 더 위로는 전봇대를 연결하는 여러 가닥의 전선들이 높게 늘어져 있었다. 병원 옆에 나란히 있는 4층 높이의 고급 한식당 건물과 커다란 통유리창을 통해서 고급 승용차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시장 건물이 주는 현대적인 느낌에도 불구하고 병원 주변의 풍경이 구도심처럼 보이는 것은 전봇대와 늘어진 전선 때문인 것 같았다. 


포플러 나무의 가느다란 가지들 틈으로 병원 간판이 보였다. 병원 간판 아래 1층 자동차 대리점 문 앞에 파란 점퍼를 입은 서너 명의 남자가 모여 있었다. 사람들에 둘러싸인 흰색 셔츠를 입은 사장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길을 건너와 병원에 들어갈 때 보니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후에는 블로그에 올릴 글을 작성했다. 네이버에 노출되는 알고리듬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규칙적으로 꾸준히 올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용촌병원에서 일하던 초창기에 봤던 환자에 대해서 썼다.      


"이게 화상 맞나요?"

보호자가 아기의 오른쪽 다리 상처를 보여주며 내게 물었다. 상처를 보고 화상인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다친 경위를 듣고 나서 진단한다는 원칙적인 대답을 해줬다. 물론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 크기였고 화상처럼 보였다. 상처 바닥이 얼룩덜룩한 걸 봐서는 깊은 상처일 가능성이 많았다.

"화상처럼 보이네요. 뜨거운 게 닿은 적이 있나요?"

잠시 생각하더니 보호자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사흘 전에 아기를 업고 동네 분식집에서 오뎅을 산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일어나더니 어깨에 가방을 메는 시늉을 했다. 가방의 불룩한 바닥 부분이 아이 종아리에 닿았다. 

화상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온도와 시간이다. 두 요소와 화상 발생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유명한 그래프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 교과서에서는 빠졌다.)



설명을 해 보자면, 우선 X축은 접촉시간을, Y축은 물체의 온도를 나타낸다. 실선은 사람, 점선은 돼지의 것이다. 온도와 시간으로 정해진 좌표가 선의 위쪽 영역에 속하게 되면 화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프에 따르면 섭씨 60도의 물은 3초, 69도의 물은 1초가 지나면 흉터를 남기는 깊은 화상을 만들 수 있다. 물은 순식간에 흘러 내려가니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1초는 꽤 긴 시간이다. 또 하나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45도 미만의 물체는, 예를 들면 41도 정도의 목욕탕 물은 아무리 오랜 시간 접촉해도 화상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41도의 물은 아무리 오랫동안 닿아도 화상을 일으킬 수 없고 50도의 물체라도 10분 정도 닿으면 화상을 일으킬 수 있다. 


아마도 오뎅 국물 정도면 50에서 60도 사이였을 것이다. 가방에 음식을 넣었다면 업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닿아 있었을 것이다. 분식집에서 집으로 가는데 걸린 시간이 십 분 정도, 걸어가는 중에 식었다고 해도 화상을 입히기에는 충분했다. 아이는 두 달 넘게 치료해서 나았지만 상처 크기만큼의 흉터가 남았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면서 틈틈이 가뭄에 콩나듯이 세 명의 환자를 보고 나니 오후 다섯 시가 됐다. 오후가 다섯 시가 넘으면 2층 로비를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보였다. 같은 층에 있는 수학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교복을 입고 다크서클처럼 축 처진 커다란 백팩을 메고 무표정하게 병원 문 앞을 지나 좁고 기다란 복도를 따라서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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