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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Nov 06. 2023

퍼펙트 게임(1)

2부 두 권의 책 

퍼펙트 게임      


‘오딧세이’를 타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JFK공항으로 가던 날, 우리 가족의 오딧세이가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딧세우스가 십 년 동안 고생을 하면서 도착한 최종목적지가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멜빌에서 보낸 일 년의 오딧세이를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했다. 우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부모로서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항해와 모험이 아닌 야구가 중심에 있었다는 것.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현실은 <오딧세이아>가 아니다. 현실 속의 인간인 나는 이타케가 아닌 대한민국 서울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당연하게도 예전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우주를 지지하고 응원했고 평범한 누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일 년이 지났고 또 일 년이 또 지났다. 초등학생이었던 우주는 중학생이 됐고 누리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지지와 응원은 불안과 초조가, 기다림은 체념이 됐다.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우주는 점점 더 반항적이 됐고 중학생이 됐을 무렵에는 야구도 학교도 모두 엉망진창이 돼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리 가족의 진정한 오딧세이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것을.  


미국 연수를 갈 때 들고 갔던 스마트폰은 갤럭시 S1이었다. 미국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도착한 지 이틀째부터 전화가 안 되기 시작했다. 화면이 흐려지고 액정이 켜지지 않았다. 서비스 센터에 갔더니 직원이 새 폰으로 바꾸는 걸 권했다. 현재의 업무량을 폰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굳이 액정을 바꿔서 쓰겠다고 결정했던 내 마음속에는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마치 갤럭시 S1이 멜빌의 삶을 통째로 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그게 나 자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주가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우주의 꿈이 실패할 거라는 불안과 위기를 딛고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공존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고 노력은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글쓰기는 행복의 부산물이 아니라 불안과 콤플렉스의 부산물이다. 카카오스토리에 포스팅했던 기록에 살을 붙여 미국에서 우주가 뛰었던 모든 경기를 묘사해 보고 싶었다. '야구가 가족을 위기에서 구하고 아들은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이고 유치했지만 내가 원하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도 우주는 점점 더 야구 선수가 되는 것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훈련을 빠졌고 집에 오면 불 꺼진 방 침대에서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방학 때 야구 캠프 갈래요.”

당시에 우주는 챔프 야구교실에서 레슨을 받고 있었다. 원래는 여름 방학이 끝난 후에 학교 야구부 트라이아웃에 참가해서 야구부원이 될 계획이었기 때문에 방학 동안 준비가 필요했다. 세종 캠프는 프로야구 2군 선수도 참가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인스트럭터들이 갈 것을 권유했다. 현직 선수와 같이 연습하면 우주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했다. 결구 문제는 우주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이미 떠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거의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였다. 하지만 여전히 우주의 표정은 어두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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