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빛의 속도로
전날 친구 집에서 잤던 우주는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야 머리를 깎고 나타났다. 그래도 입대 전날인데 저녁은 같이 먹자고 했다.
“야구부 들어간다고 했을 때 이후로는 처음이네.” 우주가 말했다. 짧게 자른 머리가 어색한지 손으로 앞머리를 계속 쓸어내렸다.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아내가 배달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의 뚜껑을 하나씩 열면서 대꾸했다.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머리 깎기 싫어서 야구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던 중학생 우주가 스쳐 지나갔다. 학교도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을 뚫어지게 노려보던 불안하고 반항적이었던 사춘기 소년 우주. 그리고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하루를 보내던 그 시절의 나와 아내도.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보니 우주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얌마! 형 군대 간다. 그동안 내 방 써.”
우주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옆에 앉아 있는 동생에게 애써 웃으며 말했다. 누리는 형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주는 저녁을 먹은 후에 친구를 만나러 다시 나갔다. 그리곤 오늘 새벽에 들어온 것이다. 침대 옆에는 지퍼가 열린 검은 백팩이 있고 그 속으로 잔뜩 쟁여 논 담뱃갑이 보인다. 다른 준비물은 제대로 챙긴 걸까.
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 함께 갈 우주의 친구가 도착한다.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갈 때까지 차 안은 조용하다. 나는 이십 년 전 영천행 기차를 탔던 날을 떠올린다. 우주와 나는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또 비슷하다.
“부모님께 편지 쓰는 시간이 있대요.” 우주가 말한다.
“아빠도 훈련받을 때 편지 많이 썼는데” 아내가 말한다.
3사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두 달 동안 딱 한 번 운 적이 있었다. 아내가 편지지에 붙인 초음파 사진에서 12주가 된 우주가 검은 양수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오십 킬로미터 정도를 남겨 놓고 정안 알밤 휴게소에 도착한다. 우주는 순두부를 나머지 세 명은 우동을 주문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후드티에 조거팬츠를 입은 짧은 머리를 한 앳된 청년들이 서너 명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후에 다시 출발한다.
“정안은 알겠는데 알밤은 뭘까?”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내가 묻는다.
“이 지역이 밤이 많이 나는 곳이어서 이거나 혹시…… ” 아내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웃는다. 백미러를 통해 우주의 머리가 보인다, 알밤 같은.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후에 우주는 다시 말이 없어진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군인이 되길 원하셨어.” 내가 말한다.
우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대답이 없다.
“아버님은 당신에 대해서 잘 모르셨던 것 같아.” 아내가 말한다.
“삼 형제 중에선 그나마 젤 어울려.” 우주가 말한다.
나는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성격과 가장 많이 닮았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우주에게도 나와 닮은 부분과 알 수 없는 심연(深淵)이 공존했다. 이십 년 넘게 우주의 부모로 지내면서 깨닫게 된 건 부모가 되는 과정은 심연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부정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입영심사대 근처에 오니 줄지어 선 차들과 안내하는 군인들이 보인다. 정문을 통과해서 안쪽 깊숙한 곳에 주차한다. 아직도 두 시간 가까이 남아 있다. 입영 행사장 위치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온다. 나올 때 입영 통지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없어도 된다던데?” 우주가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확인을 위해서 내가 안내하는 군인에게 묻는다.
“입영 통지서 없으면 안 됩니다. 카톡이나 핸드폰으로 접속한 것도 가능합니다.” 군인이 대답한다.
달랑 종이 한 장을 굳이 안 챙기는 우주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사소한 심연이니까. 친구는 잔뜩 날카로워진 우주를 다독인다. 나와 아내는 앉아 있을 카페를 주변에서 찾기로 한다. 우주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따라온다.
“안에서는 우표 안 팔아요. 저기서 사서 들어가세요.”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안내하는 남자가 왼편의 건물을 가리키며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우표는 있어요.” 우주가 대답한다.
입영 통지서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지만 이제 와 그걸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랴.
오 분 정도 거리에 적당한 카페를 발견한다. 철제 계단을 올라 2층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앉자마자 우주가 입영통지 카톡을 찾아서 보여준다. 얼그레이는 티백을 서너 번은 우려낸 것처럼 밍밍하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인가 없이 누런 직사각형의 밭만 펼쳐진 겨울 풍경 속에 띄엄띄엄 펜션 간판이 보인다. 주머니에 있던 펜션 홍보용 명함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는다. 5주 후 수료식 때 외출 나올 우주를 위해서 예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맞은편에 앉은 우주는 누군가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히죽거린다,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계속 쓸어내리며.
삼십 분 정도 남았을 때 카페를 나온다. 우주는 여전히 표정이 어둡지만 간간이 웃는다. 이십 년 전에 들었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수류탄 교관의 말이 떠오른다. 왔던 길을 되짚어 행사장으로 향한다. 플라스틱 의자가 줄지어 있는 계단식 좌석을 내려가 초록색 인조 잔디가 깔린 연병장을 가로지른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정면 맞은편 연단 양쪽으로 흰 케노피가 설치된 것이 보인다. 경례와 선서를 연습시키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연병장에 울려 퍼지고 기수단이 내려와서 운동장 가운데에 자리를 잡는다.
“입영장정 집합!”
옆에 서 있던 우주가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는다. 이어서 엄마도. 그리곤 잰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연병장 중앙을 가로질러 다른 훈련병들의 무리 속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행사는 십오 분 정도 걸려 끝난다. 그들이 연병장에서 모두 빠져나간 뒤 우리 셋은 주차장으로 향한다.
친구는 논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며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나와 아내는 이틀 후에 우주에게 전달될 편지를 쓰기 위해 훈련소 교회로 발길을 돌린다. 교회 정문의 테이블 위에 비치된 하얀 봉투와 일 센티미터 간격으로 가로줄이 그어진 편지지와 모나미 볼펜을 집어 든다. 나와 아내는 앞뒷면에 나누어 편지를 쓰고 우주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봉투에 적어 우편함에 넣는다.
훈련소를 빠져나오는 데는 오래 걸렸지만 이후에는 수월하게 집에 도착한다. 집 앞 마트에서 삼겹살을 산다. 아내는 잔뜩 어질러진 우주의 방을 정리한다. 술병과 쓰레기를 치우고 옷을 걸고 침대보를 교체한다. 저녁을 먹는다. 평소처럼 샀는데 고기가 많이 남는다. 우주가 수험생이었던 시절 저녁마다 세렝게티의 사자만큼 고기를 먹어 치우던 게 생각난다.
“거기선 덤덤했는데 집에 오니까 보고 싶네.” 남은 고기를 냉장고에 넣으며 아내가 말한다.
저녁 열 시 무렵에 우주로부터 카톡이 온다. 엄마와 아빠와 누리랑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없어서 슬프다는 얘기와 가족을 사랑한다는 내용이 첫사랑의 서툰 고백처럼 이모티콘과 함께 어지럽게 적혀 있다. 아내가 곧바로 답장하지만 귀퉁이에 달린 숫자 ‘1’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상관없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빛의 속도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정안 알밤 휴게소에 머물렀다가 어느새 연병장을 빙그르르 돌아서 싱숭생숭한 심정으로 첫날을 보낼 우주의 마음에 결국 닿고야 말테니까. 진짜 그렇게 될 것만 같다. 다만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이 모든 과정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듯 얼음이 녹고 꽃이 피듯 그저 무탈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