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닌데(25-1)

연습일지

by 생각의 변화

0308 카이로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결코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모스크바의 신사> 중에서-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지난 주에 한국에 잠깐 들른 동기를 만났는데 3학년 때 축제 기간에 분극의 밤에 <오유란전>을 연습하던 얘기를 했다. 당시에 임상순이 연출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대사를 잘 외우는데 본인만 못 외워서 엄청 구박을 받았다고. 왠지 안봐도 비디오일 것같은 임상순의 스파르타식 연기 지도 장면이 눈에 선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 단톡방에서 은하가 내게 분극의 밤 때 <오유란전>을 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왜 묻는지가 궁금했다. 은하와 워크샵을 같이 하는 동료 정신과 의사가 너무 연극배우처럼 하길래 물었더니 분극의밤 때 <오유란전>을 해서 조연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임상순이 연출이었다는 얘기를 하니 은하도 뭔가 상황 파악이 완전히 된 것 같았다.


K선배가 자신의 병원 건물 지하를 공연 장소로 흔쾌히 빌려주겠다고 했다. 80석 정도이고 무대도 우리 공연을 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K 선배는 정신과 의사이다. 한때 그는 꽤 유명한 뮤지션이었다. 아마도 8,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듣는 순간 고개가 주억거려질 정도로 유명한 가수였다. 개인적으로 그를 가까이서 처음 본 건,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건 대학교 1학년때 연극반 서클룸에서였다. 군의관이었던 그가 휴가를 나와서 서클룸에 들렀다.

“신입생? 같이 나가서 점심이나 먹을까?”

지하 카페(아마도 여우사이였을 듯)에 들어가서 밥과 병맥주를 시켰다. K는 어딘가로 전화(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다)해서 자신의 친구를 불렀고 내게는 독다방에 메모를 남기라고 했다. 금세 임상순이 합류했고, 우린 5명이, 곧 6, 7명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먹은 그렘린처럼 맥주 2병은 4병이 되고, 4병은 10병이 됐다. 우린 카페에서 식당으로 장소를 옮겼고 어느새 마른안주 대신 찌개와 소주가 등장했다. K선배는 일성집이 없어진 걸 무척 아쉬워했고(일성집 이모 얘기로는 K선배가 졸업식 때도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새로 나온 앨범 얘길했다. 저녁이 됐고 우린 한때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의 촬영지로 유명했던 ‘올드저머니’에 자리를 잡았다. 어쩌다보니 나와 K선배는 10시간 넘게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고 있었고 나와 K선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시간대별로 조금씩 바뀌었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그 시기에는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서 아무 때나 차고 넘실댔다. 당시에 휴학을 하면서 작곡을 하던 배짱이(별명) 선배 한 명이 기타를 가지고 왔고 K선배는 쑥스러워하며 모든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며 노래를 불렀다.

“누구세요” K선배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나를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연극반 후밴데요. 공연장소를 보러……” 선규와 통화를 하고 있던 내가 약간 당황하며 얼버무린다.

“아~” 나를 알아본 K선배의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선규에게 내가 둘러본 소감을 얘기했다. 객석이 부족하고, 객석 높이 차가 없어서 관객이 제대로 관람하기 어렵고, 객석 사이에 기둥이 있어서 그나마 부족한 객석의 일부는 관객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공연 장소로는 부적격. 역시 계획은 계획일뿐. 다른 장소를 알아봐야 한다.


25년 전에 대관을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당시에 강남에 있던 극장 대관료는 하루에 거의 2백만 원에 육박했다. 2주 정도를 빌려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언감생심. 당시에 소극장은 하루 3~40만원 정도 였는데 지금도 그 가격인 걸 보면 아마도 대관을 하려는 수요에 비해서 극장 공급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대학로에서 건물에 극장을 만들 경우 건물주에게 세금혜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극장이 많은 게 아닐까.

의대강당을 포함해서 여러 극장들이 후보에 올라왔다. 내 생각에는 우선 배우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2주 이상 빌려서 무대 올리고 자주 리허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엔 관객들 입장에서 접근성이 좋고 관객석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은 대관료가 적당해야 한다. 하루 30-40만원 정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의미있는 장소이면 좋을 것 같았다. 낙근과 준용이 인맥을 이용해서 몇 군데 극장을 추천받았고 그중 하나를 일요일에 보기로 했다.


한성대 입구 역에서 나와서 4백미터 정도를 걸어야 하는 극장이었다. 접근성이 아주 좋지는 않지만 큰 길가여서 찾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극장입구 계단이 조금 가파르긴 했지만 극장 자체는 맘에 들었다. 무대 나무 바닥이 만들어져 있었고 뒤쪽 포켓과 분장실이 우리 연극의 무대와 잘 맞아떨어졌다. 객석은 80석(겨울엔 70석)이어서 약간 아쉬웠지만 높이차가 있어서 관람객들이 보는데 불편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무대 앞쪽으로 너무 나오지만 않으면 맨 뒷줄에서도 배우의 발까지 보인다고 했다. 조명은 현재 있는 조명을 LED 조명으로 모두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 연극 규모면 충분한 수준의 조명이었고 조명 설치 작업은 극장주와 상의를 해서 하면 될 것 같았다. 이 극장에서 제일 맘에 드는 건 극장주의 인상이었다. 회색패딩의 2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오기 전까지 상상하고 있던 술과 담배에 쩔어있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도 어디 극단 소속의 배우라고 했다. 아는 교수님이 하던 극장이었는데 교수님이 공직으로 가시면서 겸직이 안 돼서 자신에게 양도한 거라고 했다. 잘 되냐고 농담처럼 물으니 너무 만족한다고 하면서 활짝 웃었다. 괜히 상대방도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이었다. 극장을 나와서 대학로 쪽으로 걸어갔다. 낙근은 삐걱거리는 무대 바닥이 우리 연극과 어울린다면서 좋아했다. 은하는 조금 애매한 표정이었고 예전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면서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해봤던 성복은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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