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
당당하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다반사니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도 어렵다. 이 세상엔 왜 그렇게 잘난 사람이 많은지. 돈 많은 사람도 많고 똑똑한 사람도 너무 많다. 재산도 없고, 지위도 없고, 잘나지도 못했으니 당당할 리가 없다. 사람을 커 보이게 하는 것은 높은 굽이 아니라 자신감과 당당함이라는데... 점점 작아지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여러 해 전 ‘마스터 클래스’라는 미국 희곡을 번역한 적이 있다.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돌아가신 강유정 선생님이 연출하고, 배우 윤석화가 출연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었었다. 내 기억으로는 관객의 호응이 컸던 작품이었다. 그때 나는 작은 체구의 윤석화가 무대 위에서 아주 커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말하고 움직이는 순간 넓은 극장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아! 저것이 배우로구나. 난 그때 처음으로 자신감과 당당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했다. 그것은 익숙함이었다. 연극을 사랑하고, 연기를 사랑한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무대였을 테니까. 생각해보니 내게 가장 익숙한 곳은 강의실이었다. 그래서 그나마도 그곳에서는 조금 당당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 옆에서는 주눅이 든다. 강의실에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남들과 비교되기 싫어서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어든다. 그래도 선생 노릇 하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자신감을 잃을 때 숨어들 연구실까지 있으니.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부조리 극작가 아다모프의 ‘타란느 교수’라는 희곡 속에서 교수는 어린 여자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벗은 몸을 드러내고, 호텔 탈의실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이 유명한 타란느 교수라고 주장한다. 그 이상한 교수는 마침내 교탁 앞에 서지만 빈 노트를 뒤적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다만 의미 없는 중얼거림만 계속할 뿐이다. 이 괴상한 작품 속의 그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위선, 권위의식, 그리고 껍데기뿐인 지식인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당당하지 못한 상황에서 초라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만다. 문제에 맞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눈을 감고 회피해버린다. 그렇게 패배자가 된다. 그러면서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언젠가는 다 지나갈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하지만 그런 삶의 태도는 습관이 된다. 왜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인들 날 믿어줄 리가 없다. 인생에 해답은 없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걱정이 없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무언가 답을 찾으려 하고, 지고 가는 삶의 짐을 자꾸 내려놓으려고 한다.
당당함은 익숙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으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석화는 배우로서의 열정에 더해 스스로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소나기를 피해 처마 밑으로 숨은 어린아이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익숙한 것에 기대어 소심하게 우쭐했던 것은 아닌지. 학생들에게 읽어주었던 키플링의 시는 타란느 교수의 중얼거림처럼 의미 없이 허공을 맴돌았던 모양이다.
만약 네 주변의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것을 잃고
그것을 너의 탓으로 돌릴 때에도
고개를 치켜세울 수 있다면...
만약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의심할 때에도
너 자신을 믿고
그들의 의심마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당당함과 자신감은 나를 믿고 나를 바꾸려는 노력 속에서 조금씩 내 속에서 묻어 나오는 것 아닐까? 그리고 한 발 떨어져 주변을 살피는 여유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삶을 바꾸기가 두렵다.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디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에머슨의 말처럼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적”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의 꽃향기에 나를 맡겨야겠다. 그리고 키플링의 시 마지막 부분을 떠올린다.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