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플랫폼 (10)

1%의 행복

by 최용훈

나는 오늘 행복하기를 선택한다. 마음 깊이 행복하리라고 다짐한다. 아침에 눈을 떠 오늘도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느끼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설렘은 행복일 것이다. 은은한 커피 향을 맡으며 아름다운 음악에 몸을 맡기고 행복한 일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내게 행복해질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그렇게 나는 행복하기를 선택한다. 누군가 말했지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조차 감사하라.”


슬픈 이별을 예감하고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며 홀로 서성이는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리다. 하지만 그 슬픈 순간에 조차 행복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슬픔과 고통을 마주치는 그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행복하리라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같이 있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을 원할 때 언제든 볼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는 없지만 그와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일지 모른다. 언젠가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으니까. 꿈을 실현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 실현을 잠시 미루고 기다리는 순간도 행복한 것이다. 누군가 그것을 ‘실현의 보류’라고 불렀다.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잠시 미룸으로써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희망이 된다. 결국 행복은 기대이고 희망이니까.


행복은 내가 누리는 작은 것들에 조차 감사하는 마음속에 있다. 칼 힐티는 우리에게 세 가지 행복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그리워할 사람이 있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그 설렘 속에 그가 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가슴 아린 이별을 생각하는 순간에도 행복하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워하는 것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서로 미소를 띠고 바라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만 있다면! 그리워하고, 바라보고, 베푸는 것.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선택으로 행복해지고, 그 행복에 감사해야 한다.


이해인 수녀님의 ‘1%의 행복’이라는 시가 있다. 49%의 불행과 51%의 행복을 저울에 달면 행복으로 기운다. 그렇게 행복은 1%만 더 가지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1%를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기도 할 때의 평화로움

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

감미로운 음악

숲과 하늘과 안개와 별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행복을 선택한 사람이다. 아이의 미소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마음의 따스함,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설렘, 우연히 고개 들어 바라본 그 청명한 하늘, 가을밤의 풀벌레 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 그 무수한 행복의 조각들을 손에 쥐고 속삭여야지. 행복하게 해 주어 고맙다고 말이다.


행복을 목적으로 해서는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우리가 선택하는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그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평화. 내일의 행복을 꿈꾼다면 마음을 바꾸자.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가 행복을 즐길 시간은 지금이고 행복을 즐길 장소는 여기”이니까.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줘야지. 행복한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느끼는 그 따스함, 충족감 그리고 벅찬 환희. 그 작은 행복이 빛이 되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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