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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인용구

"인생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by 최용훈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

주어진 시간 동안 으스대고 안달하다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는.

인생은 이야기, 바보들의 이야기

아우성과 분노로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7)


멕베드는 권력에 대한 야심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장차 왕이 되실 분’(You shalt be the king hereafter!)이라는 마녀의 예언에 야욕의 씨앗이 뿌려져 마침내 그는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된다. 그러나 그릇된 욕망의 끝은 파멸. 그는 잠 못 이루는 고통 속에서 자멸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그리고 그 삶의 끝이 보이는 자리에 서서 외친다. 차라리 이 짧은 생명의 촛불을 꺼버리라고. 잠을 죽여 버리고("Macbeth murdered sleep"), 몸에 맞지 않는 의상을 걸친 어색함은 작품 속의 이미저리를 넘어서 지고 가야 할 우리 모두의 삶의 무게 일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삶 가운데 가장 어둡고 우울한 날들에 이 극을 썼다. 삶의 허무함을 이 짧은 독백보다 더 절실하게 묘사한 작품이 있을까. 순간 타고 사라지는 촛불, 그리고 무대 위에 서서 관객을 향해 빈 소리만을 외쳐대는 가련한 배우. 그 그림자 같은 삶의 뒤에 의미 없는 이야기들만 남게 되는 건 아닐까?



인간은 얼마나 멋진 작품인가!

그 이성은 얼마나 고귀한지! 능력은 얼마나 무한한지!

모습과 동작은 얼마나 명료하며 훌륭한가!

행동은 얼마나 천사와도 같은지! 지혜는 참으로 신과 같도다!

세상의 아름다움이여!

만물의 영장이여! (8)


중세는 신 중심의 사회였다. 신이 만든 우주에서 인간은 창조물로써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였다. 신이 정한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죄였고, 세상은 엄격한 존재의 사슬(Chain of Being)로 위계가 정해지고 그에 상응하는 평면(corresponding plane)과의 연관성으로 이루어졌다는 믿음이 지배했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표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이성과 예술적 본성에 대한 억압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중세가 르네상스의 발현으로 마감되면서 인간은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가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르네상스가 뜻하는 ‘재생’은 결국 인간의 이성과 예술적 본성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햄릿의 입을 통해 인간의 우수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찬양한다. 중세기적 질서관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존엄성을 아울러 발견하였고 그를 신과 견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신이 만든 우주 속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 그것이 르네상스의 인간관이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아 내는 것이

더 고귀한 정신이냐

아니면 조수처럼 밀려드는 환난에 대항해

그것을 끝장내버리는 것이 더 고귀한 것인가? (9)


'To be, or not to be'에 대해서는 그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즉 햄릿의 고민은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고 작품의 맥락에서 볼 때 운명에 순응하여 ‘참아내느냐’ 아니면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느냐’라는 결정의 문제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햄릿의 태도이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번민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삶에 대한 태도를 돈키호테적인 것과 햄릿적인 것으로 나누는 말도 있지만 그러한 단순한 이분법보다는 삶의 여정에서 부딪치는 갖가지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차피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운명의 비극’(tragedy of fortune)이라 불렸다. 한편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성격의 비극’(tragedy of character)이라 불리는데 그리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비극은 숙명적으로 맞이하는 것인 반면, 셰익스피어 주인공들의 고통은 그들이 지니는 성격적 결함(혹은 비극적 결함: tragic flaw, hamartia)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맥베드의 권력에 대한 욕심, 리어의 자만심, 오델로의 질투심 그리고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모두 비극의 나락으로 인도하는 결함들이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삶의 고통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삶의 진실을 드러내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결정 혹은 선택을 촉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속의 햄릿은 그래서 더욱 비극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이다.



한숨짓지 마시오 아가씨들, 한숨짓지 마시오.

남자들이란 영원히 사기꾼;

한 발은 물에 담그고 또 한 발은 땅에 걸치니

한 가지 것에 영원할 수 없으니까. (10)


남자의 마음에 사랑은 몇 개나 있을까? 몇 해 전 외국 잡지에 수컷 개미들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동성애 개미를 만든 실험 결과가 사진에 곁들여 나온 적이 있다. 그러한 실험 자체도 어처구니없었지만 암컷 개미는 유전자 조작으로도 성적 정체성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는 결과에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그러한 실험 결과가 아직도 유효한지는 알 수 없으나 본래 수컷이란 짐승들은 사랑에 관한 한 지조가 없어 보인다. 세상이 많이 변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깨어진 사랑에 한숨짓고 눈물 흘리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은 사랑 따위에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인간의 감정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임까지 부정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혼을

방해하지 않게 하소서. 구실을 찾았다고

변하는 사랑, 버릴 거리를 찾았다고 휘어지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을.


오, 아니지. 사랑은 폭풍우에 마주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히 고정된 표식;

사랑은 모든 표류하는 배들의 길잡이 별,

높이는 잴 수 있어도 그 가치는 측량할 길 없는.


장밋빛 입술과 뺨이 시간의 굽은 낫 앞에 사라진다 해도

사랑은 시간의 노리개가 아닌 것을.

사랑은 짧은 몇 시간 몇 주에 변하지 않고

운명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참아내는 것.


이것이 틀린 말이고 그렇게 증명된다면,

나는 결코 사랑의 글을 쓰지 않으리,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리. (셰익스피어 소네트 116) (11)


셰익스피어는 37편의 희곡과 더불어 장시와 154편에 이르는 사랑의 연작시 소네트(Sonnets)를 쓰기도 하였다. 그의 14행 소네트는 세 개의 4행 연구(quatrain)와 한 개의 2행 연구(couplet)로 이루어져 있다. 이태리의 단테(Dante)와 페트라르카(Petrarca)로부터 비롯된 소네트 양식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걸쳐 유럽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고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에 의해 꽃피게 된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해 볼까요?’(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라고 말하며 일시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사랑하는 연인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찬양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소네트는 사랑에 따르는 정신적인 고통과 감정의 소진을 아울러 다루고 있다. 자신의 예술적 후원자인 젊은 귀족과 검은 피부의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있는 그의 소네트들은 작가를 포함한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셰익스피어 개인의 성적 정체성과 기호에 대한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 불멸의 필력으로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기도 하다.


위의 소네트 116번은 사랑의 불변성과 사랑하는 이의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은 변하는가? 모든 것이 변화하는 그의 시대에 셰익스피어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가치를 찾고자 노력하였고 그것이 사랑임을 간절히 원하였다. 그러나 사랑마저 변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의 소네트가 그렇듯 억눌린 슬픔을 담고 있을 수 있었을까? 우리의 삶에 진정 영원히 변치 않을 무언가는 있는 것일까?


English Texts:

Out, out brief candle!

Life i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s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Life is a story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But signifying nothing. (7)

(Macbeth, Act V, Scene 5)

What a piece of work is a man!

How noble in reason! how infinite in faculty!

In form and moving how express and admirable!

In action how like an angel! in appearance how like a god!

The beauty of the world!

The paragon of animals! (8)

(Hamlet, Act II, Scene 2)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9)

(Hamlet, Act III, Scene 1)

Sigh no more, ladies, sigh no more.

Men were deceivers ever;

One foot in sea, and one on shore.

To one thing constant never. (10)

(Much Ado about Nothing, Act II, Scene 3)

Let me not to the marriage of true minds

Admit impediments. Love is not love

Which alters when it alteration finds,

Or bends with the remover to remove:

Oh, no! it is an ever-fixed mark,

That looks on tempests and is never shaken;

It is the star to every wandering bark.

Whose worth's unknown, although his height be taken.

Love's not Time's fool, though rosy lips and cheeks

Within his bending sickle's compass come;

Love alters not with his brief hours and weeks,

But bears it out even to the edge of doom.

If this be error and upon me proved,

I never writ, nor no man loved. (11)

(Sonnet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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