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열정과 혁명
1. 시대적 배경
1603년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가 45 년의 통치기간을 마치고 후사 없이 세상을 뜨자, 스코틀랜드에 살던 그녀의 먼 친척이 그녀의 뒤를 이어 제임스 1 세(James I)로 즉위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의 공고했던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 세력의 힘이 강화되면서 종교적 균형이 깨어지고 또다시 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박해와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신교의 일파인 퓨리턴(청교도)의 일단이 1620년 ‘메이 플라워’(The May Flower)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탈출하고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라는 국가의 시작이었다. 1625년 제임스 1세가 죽고 그의 뒤를 이어 찰스 1 세(Charles I)가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청교도에 대한 박해가 계속 도를 더해가자 마침내 1642년 청교도들에 의한 대규모의 혁명이 일어난다. 1649년 혁명군은 찰스 1 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정권을 잡게 된다. 이로써 영국에는 혁명군의 지도자였던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에 의해 청교도 공화국(Common Wealth)이 세워진다. 그러나 이 공화국은 크롬웰이 사망하자 급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고 1660년 처형되었던 찰스 1 세의 아들이 망명했던 프랑스로부터 돌아오면서 새로운 왕정이 시작된다.
2. 형이상학파 시(Metaphysical Poetry)와 존 던
청교도 시대에 유행했던 시는 형이상학적 시(metaphysical poetry)라고 불린다. ‘형이상학적’이란 말은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이 존 던(John Donne, 1573-1631)과 그의 동시대 몇몇 시인들의 시가 기이하고 현학적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형이상학파 시인’이라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 이들의 시는 논리적이고 지적이었으며 사랑과 종교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구어적인 표현을 주로 썼으며 지리학이나 천문학 같은 다양한 학문으로부터 가져온 독특한 이미지를 시 속에 형상화한다. 특히 전혀 유사성이 없는 이미지를 병치하여 시적 주제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형이상학적 기상(奇想, metaphysical conceit)이라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다음에 인용되는 존 던의 ‘벼룩’(Flea)이라는 시는 여인에게 함께 밤을 보내자고 구애하는 남성이 벼룩이라는 곤충의 모습을 묘사하며 애인을 설득하려 한다.
보세요, 이 벼룩을. 이 안을 보세요,
당신이 내게 주려고 하지 않는 그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먼저 나를 빨고, 이제 당신의 피를 빨고 있군요,
이 벼룩 안에서 우리 두 사람의 피가 섞이네요;
당신도 아시잖아요 이건 절대로
죄도, 수치도, 순결의 상실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벼룩은 구애도 하기 전에 즐기고
하나가 된 두 사람의 피로 흡족하게 부풀어 올랐죠,
아, 우리가 하려는 것은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12)
존 던은 남녀 간의 사랑과 연애를 그리는 시를 썼지만 그는 또한 깊은 종교적 시인이기도 하였다. 다음은 성공회 사제이기도 하였던 존 던이 쓴 사색의 시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도 혼자로 완전할 수 없다. 서로 기대고, 그리워하고,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소홀히 하고 자신만의 자만심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는 결국 나의 죽음을 알리는 것과도 같다는 존 던의 종교적 사색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주고 있다.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묵상 17, ‘기도문’ 중에서)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대양의 일부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건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고,
그대 친구의 영지나 그대의 영지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 하지 말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13)
English Texts:
Flea
by John Donne
Mark but this flea, and mark in this,
How little that which thou denies me is;
It sucked me first, and now sucks thee,
And in this flea, our two bloods mingled be;
Thou know'st that this cannot be said
A sin, nor shame, nor loss of maidenhead,
Yet this enjoys before it woos,
And pampered swells with one blood made of two,
And this, alas, is more than we would do. (12)
For Whom the Bell Tolls
from Devotions (Meditation 17) by John Donne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