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세속 : 까르피 다이엄 & 밀튼
이 시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는 사랑에 관한 시뿐만 아니라 종교시를 쓰기도 했던 존 던을 비롯해 세속의 삶과 종교적인 삶의 갈등, 진정한 구원의 의미 등을 시로 표현한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1593-1633), 물질과 정신의 관계, 자연과 인간 등 다양한 시적 주제를 다루었던 앤드루 마블(Andrew Marvell, 1621-1678) 등이 있다. 한편 퓨리턴 혁명기에 찰스 1세를 받들던 왕당파(royalists)로서 높은 지위와 교양을 가진 궁정 시인들(Cavalier Poets)이 있었는데. 이들은 유흥, 연애, 사냥 등에 관심을 가지고 시를 썼기 때문에 종교시인과 구별하여 세속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왕당파의 시는 대체로 그리스나 라틴의 고전에서 영향을 받아 교훈적인 주제와 풍자적인 가벼운 사랑을 주제로 다루었다. 이들은 왕에게 봉사한다는 것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희곡작가이기도 하였던 벤 존슨(Ben Jonson, 1572-1637)을 필두로 토머스 커루(Thomas Carew, 1598∼1639), 존 서클링(John Suckling, 1609∼1642), 리처드 러블레이스(Richard Lovelace, 1618∼1658),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 1591∼1674), 존 데넘(John Denham, 1615∼1669) 등이 그들이다.
왕당파 시인들의 배경이 되는 사상은 현실의 쾌락을 추구하는 ‘까르피 다이엄’(carpe diem)이었다.
‘까르피 다이엄!’ 영어로는 ‘그 날을 잡아라.’라는 뜻의 ‘Seize the day.’이다. 현재라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즐기라는 의미이다. 젊음과 세속적인 쾌락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지만 흘러가 버릴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역사 속의 그 많은 장엄한 건축물들도 결국은 폐허의 돌무덤으로 변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아름다움도 세월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어 선생님 존 키팅은 냉소적이고 산만한 학생들에게 한 편의 시를 읽게 한다.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모으세요.’라는 시의 첫 구절을 설명한다. 그는 학생들을 복도로 불러 모으고, 오래전 그들의 선배들의 사진 앞에 서게 한다. 한 때 그들과 똑 같이 활력에 넘치고 젊었던 그 사진 속의 인물들을 가리키며 그는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져 버린 그들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렇듯 시간은 무자비하게 흐르는 것이니 지금의 이 시절을 소중히 하라고 가르친다. 다음은 ‘처녀들에게, 시간을 소중히 하기를’이라는 제목의 왕당파 시인 로버트 헤릭의 시이다.
할 수 있을 동안, 장미 봉오리를 모으세요.
시간은 항상 흘러가는 것.
오늘 미소 머금고 있는 바로 이 꽃도
내일이면 지게 될 겁니다.
하늘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등불, 태양도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만큼 더 빨리 그의 운행은 진행이 되어
일몰에 더 가까워지지요.
처음에 오는 그 시절이 가장 좋은 것이에요,
젊음과 피가 한결 따뜻한 그때.
그러나 일단 소진되면, 더 나쁘고, 가장 나쁜
시절이 계속하여 잇따르게 되지요.
그러니 수줍어하지 말고, 시간을 소중히 하세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때, 결혼하세요.
왜냐하면 일단 한창때를 놓쳐버리게 되면,
영원히 지체하게 되기 때문이죠. (14)
왕당파 시인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벤 존슨이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었으며 극작가이기도 했었다. 그는 당시의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적 경향에 맞서 고전주의적 원칙을 지키려고 했던 작가였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영합하지 않았던 그의 고지식함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자만심에서 온 것은 아니었다. ‘고결한 품성’이라는 다음의 시를 보면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큰 명분이나 대단한 원칙이 아니라 작은 것조차 소중히 지켜내려 했던 고결한 품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끼게 된다.
고결한 품성
나무처럼 크게 자란다고
사람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참나무처럼 삼백 년을 버텨 서 있다
끝내 쓰러져 통나무로 말라빠져 시드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를 사는 오월의
백합이 훨씬 아름답다
비록 그날 밤 떨어져 죽는다 해도
그건 빛나는 식물이며 꽃이었으니
작은 것들에서 우리가 아름다움을 보면
조금씩이나마 삶은 완전해지지 않을까 (15)
청교도 시대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는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이었다. 그는 퓨리턴 공화국을 열렬히 지지하였는데 청교도적 기독교의 교리에 충실하면서도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있어서 그를 가리켜 자주 기독교적 인본주의자(Christian Humanist)라 부르기도 한다. 그의 대표작인 ‘실낙원’(Paradise Lost)는 12권의 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 방대한 대작이었다. 그는 신의 섭리에 대해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일 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고 그 가운데 인간은 왜 이렇듯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인간적인 고뇌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의 독자들은 주인공인 아담보다는 신에게 도전한 사탄에게 더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 사탄이 너무도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저항의 화신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밀턴의 취지와는 달리 사탄은 신의 정의와 처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의 자유로운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전원시인 L'Allegro(행복한 사람), Il Penseroso(우울한 사람)도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편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은 청교도 문학의 대표적인 산문작가로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의 저자이기도 하다. ‘천로역정’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1895년 캐나다 선교사이자 장로교 목사인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이 번역 당시 붙인 제목이다. 당시 외래 문학들은 중국어나 일본어 원고를 번역하여 소개되었지만 ‘천로역정’은 영어 원고를 번역했으며, 한국의 첫 번역 소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English Texts:
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
by Robert Herrick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Old Time is still a-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The glorious lamp of heaven, the sun, 5
The higher he's a-getting,
The sooner will his race be run,
And nearer he's to setting.
That age is best which is the first,
When youth and blood are warmer;
But being spent, the worse, and worst
Times still succeed the former.
Then be not coy, but use your time,
And while ye may, go marry:
For having lost but once your prime,
You may forever tarry. (14)
The Noble Nature
by Ben Johnson
It is not growing like a tree
In bulk, doth make man better be;
Or standing long an oak, three hundred year,
To fall a log at last, dry, bald, and sear:
A lily of a day
Is fairer far in May,
Although it fall and die that night,--
It was the plant and flower of Light.
In small proportions we just beauties see;
And in short measures life may perfect be.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