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 4기, 만대의 작가
3. 셰익스피어의 극작 활동
셰익스피어의 극작 활동은 크게 4기로 나뉜다. 첫 시기는 그가 런던에 온 것으로 추정되는 1587년 무렵에서 1595년까지이다. 이 시기를 초기 실험의 시기라 부르는데 젊음의 활력과 넘치는 상상력으로 가득했고, 언어적 표현도 과할 만큼 현란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작품은 ‘사랑은 헛수고’(Love's Labour's Lost), ‘베로나의 두 신사’(Two Gentlemen of Verona), ‘리처드 3세’(Richard III) 등이 있다. 두 번째 시기는 극작가로서 급속히 성장하고 발전했던 1595년에서 1600년까지의 기간이다.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보다 예술적인 작품들을 내놓았는데, 구성도 더욱 좋아졌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한층 풍부해진 시기였다.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한 여름밤의 꿈’(Midsummer Night's Dream),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헨리 4세’(Henry IV)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세 번째 시기는 1600년부터 1607년까지로 셰익스피어가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였다.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그의 후원자들이었던 귀족들이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아픔을 겪었던 것이다. 이 우울함과 절망의 시기는 역설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최절정에 달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비극은 ‘고통을 통해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개인적 어려움이 정신적, 예술적 성숙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소네트 모음집’(Sonnets)을 비롯해 이른바 그의 4대 비극 ‘햄릿’(Hamlet), ‘리어왕’(Lear), ‘맥베드’(Macbeth), ‘오델로’(Othello)와 그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높이 평가되는 ‘줄리우스 시저’(Julius Caesar)가 공연된다. 마지막 시기는 폭풍우 뒤의 고요함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시기이다. 1613년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시기로 '겨울이야기’(Winter's Tale), ‘폭풍’(Tempest)이 이 기간 중에 쓴 작품이다. ‘폭풍’의 주인공 프로스페로가 마법의 책과 지팡이를 버리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하듯이 셰익스피어는 극작가의 붓을 꺾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대가의 모습이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4.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위치와 영향
셰익스피어에 대한 표현 가운데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가 말한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이란 것이 있다. 사실 셰익스피어는 어떤 특정 이념이나 사상의 영역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는 가부장제와 효도의 미덕을 강조하면서도 페미니즘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고, 타 인종에 대한 유럽적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도주의의 미덕을 강조하기도 한다. ‘부정적 능력’에서 능력이라는 말은 이렇듯 모든 이념에 대한 흡수력을 의미한다. 그의 마음속에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이 담겨 있었고 그것들에 대해 그는 제한 없이 작품에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중 상충되는 요소들에 대해 옳고 그름, 높고 낮음의 구분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이러한 셰익스피어의 특징은 '실현의 유보'
(suspension of fulfillment)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어떤 이념에 대해서도 판단을 마지막까지 유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셰익스피어의 능력 때문인지 그는 흔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만대의 작가’(a writer of all ages)라고 묘사된다. 어느 시대, 어떤 장소에서도 받아들여지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그는 세계문학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고, 그 압도적인 위대성으로 인해 그의 작품을 비판하거나 찬양하는 것 모두가 마치 금기처럼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비평’(criticism)이라는 용어 대신 ‘논평’(review)이라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도 그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일 것이다. 그는 흔히 일리아드(Iliad), 오디세이(Odyssey)를 저술한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머(Homer)나 14세기 초에 나온 신곡(Divine Comedy)의 저자 단테(Dante)에 비견된다. 하지만 두 시인의 시가 영웅적 서사, 종교적 서사에 국한되었다면 셰익스피어는 인간과 자연 전반에 걸친 포용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더 큰 위대성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의 시성이라고 불리는 괴테(Goethe)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만큼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어떤 책, 어떤 인간, 어떤 사건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